1953년 마침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조국의 최동단에서는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말뚝 박기로 시작된 독도 영유권 다툼이었다. 1953년이 흘러가고 1954년이 시작되자 울릉도 주민들이 독도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1950년대 독도는 울릉도 주민들의 황금어장이었다. 이들은 문전옥답인 독도를 잃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1948년에 있었던 끔찍한 사고도 기억하고 있었다.

1948년 6월 8일은 아직 대한민국이 미군정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때였다. 일본은 1952년에야 미군정을 끝내니 역시 독립정부를 갖고 있지 못했다. 미군은 한국과 일본 모두를 통제하는 거대한 정치체였다. 이러한 때 미군은 독도를 해상 폭격연습지로 사용했다. 

그런데 이날 독도 인근에는 울릉도와 강원도 연안에서 나온 100여 척의 배가 조업하고 있었고. 30여명의 어민은 독도에 상륙해 채취한 수산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 하늘을 새까맣게 덮은 B-29 편대가 날아와 폭탄을 떨어뜨리자 독도는 한 순간에 지옥이 되었다. 6.9㎞ 상공에 있는 B-29 조종사의 눈에는 독도에 있는 사람과 배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 폭격으로 11척의 어선이 침몰하고 14명이 사망했다. 이 사실은 6월 14일 UPI 통신이 보도함으로써 국제문제가 됐다. 한국에서는 동아일보가 연일 우리의 영토를 왜 미군기가 무단으로 폭격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고는 미국이 사망자와 부상자에 대한 보상을 하고 관련자를 처벌함으로써 마무리됐다.

그러나 그 원성이 너무 컸기에 6·25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50년 6월 8일 조재천 경북도지사는 독도에 위령비를 세웠었다. 이러한 때 6·25전쟁에 참전했다 부상을 입어 정전 직전 상이용사가 돼 울릉도로 돌아온 한 젊은이가 분연히 일어섰다. 전상을 입고 특무상사로 전역한 24세의 홍순칠이라는 청년이 독도 의용수비대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홍씨는 울릉도로 돌아온 전역 군인들에게 다시 가짜 징집 영장을 보냈다. 울릉도의 제대군인들은 ‘제대 했는데 왜 또 군대에 오라는 거야’하면서도 가짜 영장에 쓰여 있는 집합소로 모여들었다. 홍씨를 포함해 모두 33명이었다. 홍씨는 “일본이 독도를 빼앗으려 하니 우리가 독도를 지켜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홍씨를 비롯해 모두가 밝고 강한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더 이상 알아보지도 않고 홍씨를 따라 독도로 들어갔다. 4월 20일의 일이었다.

홍씨는 그 직후 부산으로 달려가 이북이 고향인 양공주의 도움을 받아 미군 기지에서 무기를 빼내고 경북도경(道警)과 울릉경찰서의 간접적인 도움을 받아 이 무기를  독도로 보내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준비가 갖춰지자 그해 8월 그는 울릉도에 大韓民國 慶尙北道 鬱陵郡 南面 獨島 라고 쓴 영토석을 자갈마당에 세웠다. 그 전해 한국산악회가 세웠던 영토 표석은 일본 해상보안청 사람들이 상륙해 철거해버렸지만 이 영토 표석은 지금까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독도 의용수비대가 독도를 굳건히 지킨 탓이다.

독도에 무장한 세력이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는지 일본 해상보안청은 전처럼 독도에 상륙하지 못했다.
1954년 8월 14일 일본은 묘한 방법으로 도발, 시마네 현 오키 도에 있는 수산고등학교 학생들을 실습선에 태워 독도로 보낸 것이다. 독도 의용수비대는 이 배를 나포해 교사와 학생들로부터 ‘독도는 한국 땅이다’는 각서를 받고 대한민국 영토 표석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 후 풀어주었다.

이 사건은 일본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일본 조야가 다케시마에 들어와 있는 한국인들을 쫓아내라고 떠들자 10월 23일 아침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두 척이 독도에 상륙하기 위해 접근해 왔다. 이 무렵 독도 의용수비대는 경북도경으로부터 고물 박격포 한 정을 입수해 설치해 놓고 있었다.

일본 순시선이 다가오자 박격포 사수를 했던 서기종 대원이 정확히 방아쇠를 당겼다. 그 순간 한 척의 순시선 갑판에서 화염이 오르고 보안청 요원들이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자갈마당에 숨어 있던 의용대원들이 일제히 소총 사격에 들어갔다. 당황한 일본 보안청 배는 황급히 뱃머리를 돌려 동쪽으로 도주해 갔다.

다음날 의용수비대는 NHK 라디오 방송을 통해 ‘다케시마에 숨어 있는 해적들의 공격으로 보안청 요원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용수비대는 독도 정상에 나무로 깎은 대형포를 설치했는데 일본은 항공 정찰을 통해 이를 확인한 후 한국이 독도에 포를 설치했다고 떠들었다. 위장술의 성공이었다. 그래서 독도로는 더 이상 접근해오지 못했다.        <다음호에 계속>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