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교수 허흥식

우리나라의 기원을 알려면 신화에 담겨있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민족의 기원은 국가의 기원과도 같다. 따라서 각 나라에는 그 민족의 신화나 전통종교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나라도 처음 하늘이 열린 날, 이 땅에 단군이 나라를 세우면서 생긴 신화와 종교가 있었다.

그러나 유교, 불교가 도입되면서 단군의 유적 터인 구월산의 삼성사를 비롯한 묘향산의 신사와 전국에 산재한 단묘, 산신각들이 모두 축소되어 불교 안으로 잠식되었다. 사찰의 산신각, 삼성각, 칠성각 등이 그 흔적들이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어디에도 국조의 신사(神祠) 신묘(神廟) 단묘(檀廟)에 대한 기록이 전무한 것이 안타깝다. 오히려 후대인 세종실록에 단묘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기록이 있다. 천왕단·대왕단·참성단 등 천제를 올리던 단이 지금까지 곳곳에 남아 있음은 조선 초기 불교와 유교의 영향력 아래서도 고유 신앙이 왕성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한웅이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되어 있으나, 묘향산 보현사 스님 설암추붕(雪巖秋鵬)이 제대조기를 인용하여 쓴 묘향산지(妙香山誌)에는 ‘桓仁의 아들 桓熊이 白虎와 교통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해석이 있다. 어느 기록에도 한웅이 흰 호랑이와 관계해서 단군을 출생했다는 내용은 없다. 직설적이고 외설적이기 때문이다.

고조선의 시조가 인간화되지 않은 백호에서 태어났다면 성리학을 존중하던 조선시대에는 금서(禁書)가 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동명신화가 해를 상징한 반면, 단군신화는 동물과의 관계이니 불교와 유교에서는 윤색되어야만 존속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기피되는 내용을 자신의 서명과 함께 전한 추붕의 의도가 의미심장하다.

이 사서는 건물이나 중요지명, 위치, 거리 등이 세밀하고 글자 수가 5,400자에 가까운 14장의 목판본도 있어 사료(史料)로서 가치가 높다. 특히 한인(桓因)을 한인(桓仁)으로 쓴 기록은 우리나라에서 확인되는 유일한 자료이다. 한웅(桓雄)도 한웅(桓熊)으로 쓰였다.
 
신화는 사실함축한 상징역사

한웅과 백호 사이에서 단군이 탄생했다면 곰을 상징하는 천신, 한웅에 대한 1차 신화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범과 곰이 지모신(地母神)으로 여성이라는 해석이었으나 제대조기는 곰(熊)을 한웅인 남성으로 서술하였다. 이는 오늘날 사원의 산신각이나 천왕당에 널리 보존된 산신도(山神圖)의 원초적인 신화 해석에 훨씬 더 가깝다. 산신각의 노인, 산신령은 곧 한웅이고 범은 백호로 환웅과 백호가 단군의 탄생을 준비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단군이 천신과 곰의 화신 사이에서 태어났느냐, 흰 범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느냐의 해석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오늘날 민속자료의 설화, 민담, 민속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신화와 연결시켜 해석하는 과정에 도움이 되느냐에 의미가 있다.

자기민족의 기원을 어느 특정동물에 비유하는 상징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오히려 그만큼 유서 깊은 내력을 입증하는 자랑이 된다. 시간과 공간이 구성된 지구상에 인간 출현은 5백만 년밖에 안 되고 문자를 만들어 기록한 연대는 몇 천 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범의 신화는 우리와 중국 서남쪽의 소수민족신화에서 많이 등장한다. 범만 존재하는 허저족과 곰 토템만 존재하는 어원커, 오로촌족이 있지만, 몽골과 만(만주)족은 곰과 범이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범과 곰이 모두 존재하는 토템민족은 우리나라뿐이다. 이는 다른 민족에서는 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그리고 묘향산지에서는 범 역할이 곰보다 우세할 뿐 아니라 범중에서도 흰 범을 명시하였다. 강한 민족의 후예나 그 민족과 관련 있는 이들도 범 토템이 우월하다.

동북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곰이 우세하거나 곰과 범 토템이 없는 이유는 고구려와 발해가 망한 후, 그 정통성을 고려가 계승하므로 주변민족들이 맹수인 범의 상징을 고려에 양보한 것으로 본다. 실제로 주변 민족들은 조선 초까지만 해도 고려나 조선을 부모 나라로 섬겼다. 물론 북쪽일수록 곰, 남으로 갈수록 범 토템이 많은 것은 서식지의 생태학적인 현실이 반영됐을 수도 있다. 어떻든 우리 민속에는 분명히 곰보다 범이 우월하다. 그럼에도 삼국유사에서 곰의 우월성을 강조한 까닭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신화를 배제하고 출발한 고대사는 고고학이 없는 상고사와 같다. 우리 역사고고학에 진력하여 우리 민족의 뿌리, 신화종교시대를 복원하고 제대로 된 유구한 역사도 되살릴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