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감각이 포착하지 못했던 세계, 엔리코 엠브롤리 박동수 작가 2인전《추상의 공간》

스텔라갤러리, 8월 22일 ~ 9월 7일 개최

2025-08-25     정유철 기자

스텔라갤러리는 두 작가의 상이한 추상 언어를 한자리에 모은 엔리코 엠브롤리, 박동수 작가 2인전《추상의 공간》을 8월 22일 개막했다. 이 전시는 색과 시간, 물성과 구조라는 상이한 접근이 어떻게 동시대 관객의 감각을 확장하는지에 주목한다.

Enrico Embroli , BLUE AURA, 2024, Oil, Canvas on handmade stretcher bars, 32×32×4.5cm. 이미지 스텔라갤러리

엔리코 엠브롤리(Enrico Embroli)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물질의 질감과 밀도를 섬세하게 다루며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인다. 대표 연작인 <아우라(Aura)>는 ‘표면’ 너머에서 발현되는 빛의 파장을 포착함으로써 색을 하나의 ‘존재’로 체험하게 한다.

박동수(Park Dong-soo)는 오랜 시간 축적된 사유를 화면의 구조로 번역한다. 사각 프레임과 원형 궤적의 리듬, 먹의 농담이 이루는 중첩을 통해 우주적 형성 과정과 시간의 흔적을 장면화한다. 그의 작업은 관객에게 ‘직관의 문해력’—색과 형태로 읽는 감각—을 요구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던 장면들을 새롭게 인지하도록 이끈다.

Enrico Embroli, GREEN AURA, 2024, Oil, Canvas on handmade stretcher bars, 32×32×4.5cm. 이미지 스텔라갤러리

두 작가의 작업이 교차하는 전시장에서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현실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추상의 태도가 선명해진다. 색과 시간, 물질과 구조가 교차하며 관객은 느림의 리듬 속으로 진입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세계를 읽어내는 경험을 얻게 된다.

스텔라갤러리 최양원 큐레이터는 ‘전시 서문’에서 이번 전시를 이렇게 소개한다.

“《추상의 공간》에서 엔리코 엠브롤리와 박동수가 선사하는 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그들이 구축해 낸 것은 우리의 일상적 감각이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세계에 대한 증언이다. 이 작품들은 우리에게 ‘보는 것’이 얼마나 제한적인 행위였는지를 깨닫게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지하 작업실에서 가지고 놀던 나무와 공구, 작은 부속품들로부터 조형의 세계에 눈을 뜬 엠브롤리는 물질이 지닌 고유한 목소리를 듣는 법을 일찍이 터득했다. 그의 <Aura> 시리즈는 회화도 조각도 아닌, 그 경계에서 태어나는 제3의 언어이다. ‘BLUE Aura’의 깊고 푸른 표면 위로 스며드는 빛의 파장을 보고 있으면, 색채가 단순한 시각적 자극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임을 직감하게 된다.

◆스텔라 갤러리 내 박동수 작가 ‘시공 추상’ 연작 전시 모습

 

한편 박동수는 베르사이유와 서울을 오가며 전혀 다른 추상을 탐구해 왔다. 그의 <시공 추상>연작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시간의 물질화이다. 사각형의 프레임이 모여진 형태의 작품 안에 각각 다르게 분포된 먹의 흔적들은 우주의 형성 과정을 암시하며, 원형의 궤적과 사각형의 틀이 만들어내는 리듬 안에는 작가가 20년간 축적해 온 시간에 대한 사유가 직조되어 있다.

두 작가의 작품이 같은 공간에서 호흡할 때, 우리는 추상이 결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그것은 현실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방법이다. 엠브롤리의 폭발적인 색채와 박동수의 명상적인 격자는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는 것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전시장을 걸으며 우리는 점차 다른 종류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밖의 세계가 속도와 효율의 논리로 돌아간다면, 이곳은 질감과 농도의 시간이 흐른다. 추상은 우리에게 새로운 문해력을 요구한다. 문자 대신 색과 형태로, 논리 대신 직관으로 읽어내야 하는 언어인 것이다. 그리고 그 언어를 터득하는 순간,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방식을 획득하게 된다.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의 표정에서도, 비 내린 후 아스팔트 위에 맺힌 물방울에서도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엔리코 엠브롤리, 박동수 작가 2인전 "추상의 공간" 전시 모습(부분). 사진 스텔라갤러리

엔리코 엠브롤리는 1945년 미국 뉴욕주 바타비아에서 태어나 뉴욕주립대 버펄로 캠퍼스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학사·석사)했다. 12년간 미술교사로 활동한 후 전업 작가가 되었다.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위스, 남아공, 뉴질랜드, 한국 등에서 전시를 했다.

박동수(Park Dong-soo)는 1964년 충남 서산 해미에서 출생했다. 프랑스 베르사이유 보자르 시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과 학사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90부터 2008년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했다.

2023 Musée Guimet carte blanche 개인전(파리), 2019 갤러리 민스키 개인전(파리), 2018 갤러리 소헌 개인전(대구)을 열었다. 2020 ASIA NOW Paris Asia Art Fair(파리)에 참가했다.

엔리코 엠브롤리, 박동수 작가 2인전《추상의 공간》은 9월 7일까지 스텔라갤러리(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49길 17)에서 볼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후 1시부터 6시 30분까지. 월·화는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