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냉장고’ 풍혈지 일부 훼손…기후위기 속 생태피난처 보호 필요성 제기
국립수목원 풍혈지 조사 자생종 1,204종 확인,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지정 추진
한여름 열기로 헉헉대는 더위 속에서도 지하에서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오고 얼음까지 얼어 놀라움을 주는 독특한 지형 ‘풍혈지風穴地’.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풍혈지는 밀양 얼음골이다.
자연이 만든 냉장고인 풍혈지가 일반 산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특산식물과 기후 민감종이 살아가는 기후위기 시대 생물다양성 보전의 핵심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지난 8월 21일 국내 주요 풍혈지 내 생물상 조사와 생태 연구를 통해 현재까지 조사 결과 풍혈지 자생종 총 1,204종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 중에는 월귤, 흰인가목 등 희귀식물 82종, 병꽃나무, 백운산원추리 등 특산식물 61종, 그리고 돌단풍, 야광나무 등 북방계 식물 212종 등이 포함되었다.
옛부터 시례 빙곡으로 불렸던 대표 풍혈지인 밀양 얼음골은 3월 초순부터 7월 중순까지 얼음이 얼고 겨울철에는 오히려 잘 얼지 않는 신비한 곳으로, 여름철 한낮에 풍혈지 내부와 외부 온도 차가 20~30도까지 난다.
이곳에서 희귀식물 8종, 특산식물 13종, 북방계식물 37종 등 총 236종의 식물이 조사되었는데 이중 꼬리말발도리는 국내 희귀‧특산식물이면서 국가적색목록 취약종(VU)으로 등재되어 보호가 필요한 식물이다. 또한 주저리 고사리는 기후변화에 민감한 북방계 식물로 풍혈지 보전 필요성을 잘 나타낸다.
최근 풍혈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탐방객이 증가해 생태적 훼손 우려가 커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탐방로 붕괴, 무분별한 출입과 식물 채취 등으로 인해 식물군락이 실제 감소했다는 사례가 보고되었다. 특히 의성과 진안, 정선 등지에서는 풍혈지 생태계 퇴보가 나타나고 있다.
국립수목원은 풍혈지 훼손을 막기 위해 출입 제한 및 보호구역 설정, 정밀조사 및 모니터링 강화, 생태해설 프로그램 강화 등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풍혈지가 지닌 ‘생물서식지’와 ‘경관 자연’이라는 이중적 특성을 균형있게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국립수목원은 생태적 가치가 뛰어난 풍혈지를 대상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추진 중이며, 지역별 맞춤형 보전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조사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국립수목원 임영석 원장은 “풍혈지는 이상 고온 등 기후변화에서 생물다양성을 보전할 수 있는 중요한 생태적 피난처이자 아직 보고되지 않은 생물종들이 서식하는 생물다양성의 보고”라고 밝히고 “지속적인 연구와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미래세대를 위한 산림자원을 보전해 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