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기록한 드로잉 원작 전시, 정정엽 개인전 《콩은 어디든 굴러간다》

스텔라갤러리, 7월 12일 ~ 27일 개최 작가와 함께하는 오프닝 리셉션 및 출간기념회 7월 19일 오후 4시

2025-07-14     정유철 기자
정정엽 개인전 "콩은 어디든 굴러간다" 전시 작품. 이미지 스텔라갤러리

대표적인 여성주의 작가 정정엽의 여행드로잉 원작을 선보이는 개인전《콩은 어디든 굴러간다》이 7월 12일 스텔라갤러리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정정엽 작가가 수년간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기록한 드로잉 원작을 최초로 선보이며, 신간 여행기《콩은 어디든 굴러간다》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시 제목 “콩은 어디든 굴러간다”는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한 알의 콩이 자유롭게 굴러가는 모습에 비유하며, 인생과 예술이 어우러진 여정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정정엽 작가는 지구 곳곳을 여행하며 작은 스케치북을 펼치고, 사막의 모래알부터 이국 도시의 밤 풍경까지 다양한 순간을 빠르고 경쾌한 필치로 포착했다.

정정엽의 드로잉은 단지 풍경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여행지의 분위기와 작가가 체감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데스밸리의 광활한 풍경과 우즈베키스탄의 고요한 사막, 그리고 낯선 도시의 활력 넘치는 밤 풍경 등 여행의 다양한 순간들이 원작으로 소개한다.

정정엽 개인전 "콩은 어디든 굴러간다" 전시 작품. 이미지 스텔라갤러리

스텔라갤러리 최양원 큐레이터는 ‘전시 서문’에서 정정엽 작가의 전시를 이렇게 말한다.

“한 알의 콩이 사막을 건너고 바다를 만나 세계가 되었다.”
우리의 여정은 이처럼 뜻밖의 우연과 미미한 출발에서 비롯된다. 때로는 커다란 꿈이나 계획보다 아주 작은 충동 하나가 인생의 경로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정정엽 작가는 수년간 자신을 하나의 콩으로 여기며 지구 곳곳을 굴러다녔다. 먼지 낀 길가에서, 낯선 도시의 소란 속에서, 조용한 사막 한가운데서 작가는 작은 스케치북을 펼치고 삶이 지나가는 순간들을 기록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열 권의 스케치북이 이제 여행기 《콩은 어디든 굴러간다》로 출간되었고, 그 원작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관람객들과 만난다.

작가의 드로잉은 단순히 풍경을 담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순간을 포착해내는 작가의 예민한 관찰력과 세심한 태도에 대한 증언이다. 데스밸리의 모래와 사막의 공허함, 이국 도시의 번잡함과 밤의 활기, 그리고 어딘지 모를 낯선 골목의 신비로움이 작가의 펜끝에서 경쾌하게 춤추듯 펼쳐진다. 정정엽의 드로잉은 서두르지 않고 머물며 관찰할 때에만 발견할 수 있는 작은 기적과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조용히 일깨워준다.

오랫동안 곡식, 콩과 팥을 그려온 작가에게 이 작은 알맹이들은 평범한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커다란 가능성의 은유다. 이 전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일상과 예술이 만나는 시적 공간이다. 여행과 노동, 우연과 필연이 어우러져 형성된 그녀의 작품 세계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 역시 하나의 작은 여행이자 예술적 창조 행위임을 암시한다.

우리는 종종 여행이 먼 곳에서만 이루어지며 특별한 결단을 요구한다고 착각하지만, 작가는 가장 평범한 일상도 일종의 여행이며 매일의 삶 속에 무수한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이야기들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작가가 느꼈던 희열과 기쁨, 그리고 삶에 대한 다정한 호기심을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한 알의 콩이 굴러가듯, 작고 소소한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인생을 만들고, 우리는 그것을 따라가며 비로소 진정한 여행자가 된다. 이번 전시가 여러분 각자의 마음속에 놓인 작고 둥근 콩을 다시금 굴리고 싶은 충동을 일깨우기를 희망한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음을 떠올리며.

정정엽 작가 '드로잉' 전시 작품. 이미지 스텔라갤러리

스텔라갤러리 관계자는 “이번 전시가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관람객 각자의 마음속에 작고 소중한 여행의 동기를 불러일으키고, 일상에 숨어있는 예술적 가능성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또한, 전시와 함께 발간된 여행기 《콩은 어디든 굴러간다》는 전시 기간 중 갤러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여행기 《콩은 어디든 굴러간다》. 이미지 스텔라갤러리

정정엽(1961년생)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여성주의와 민중미술의 흐름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작가다. 1985년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미술 활동을 시작하여, 민족미술과 노동현장 참여를 강조한 '두렁' 동인과 여성미술 그룹 '터', '여성미술연구회' 등에서 현실 참여적 예술을 펼쳤다.

1980년대에는 '터', '두렁', '갯꽃', '여성 미술연구회' 등 예술가 그룹에서 판화, 삽화, 걸개그림, 깃발 그림 등의 대중적 매체를 통해 노동, 민중의 삶, 여성의 현실을 집단 창작과 현장 중심의 예술로 표현했다. 또한, 노동자 미술 교실과 문화학교 운영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실천에 적극 참여했다.

1990년대 이후 사회적 변화와 함께 개인 회화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으며, 1995년 첫 개인전 《생명을 아우르는 살림》을 시작으로 팥, 곡식, 나물, 동식물, 여성 인물 등 생명과 여성의 노동, 일상을 꾸준히 주제로 삼았다. 이 시기부터 설치, 퍼포먼스, 관객참여형 프로그램, 웹아트, 영상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진행했다.

정정엽은 팥, 콩, 나물, 벌레 등 평범하고 소외된 존재를 섬세한 관찰력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며, 여성의 노동과 살림, 일상 속에 감춰진 가치들을 시각화했다. 그는 미술을 통해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존재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전시장을 경험과 정치적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이끌어왔다.

정정엽은 2018년 고암미술상, 2020년 양성평등문화인상을 수상했으며, 대표적인 전시로 《봇물》(2000), 《낯선 생명, 그 생명의 두께》(2001), 《Red Bean》(2009), 《나의 작업실 변천사 1985-2017》(2018) 등을 개최했다.

작가가 참여하는 오프닝 리셉션과 출간기념회가 스텔라갤러리(서울 강남구 봉은사로49길 17, 선정릉역 1번 출구)에서 7월 19일(토) 오후 4시에 열리며 《콩은 어디든 굴러간다》전은 7월 27일(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