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끝까지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었다
[칼럼] 박용상 네거티브정치캠페인연구원장, 정치학박사
박 용 상
정치학박사
한 여인이 검찰 조사 도중 공포에 질려 의자에 앉은 채 실례를 했다. 미술관 큐레이터였던 신모 씨는 당시 수사관이었던 윤석열 검사의 고압적인 태도를 이렇게 회상했다.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자 그는 얼굴을 붉히며 고함을 질렀고, 비아냥거리고 손가락질까지 했다.”
그녀는 자신의 수감번호 ‘4001’을 제목으로 한 에세이에서 이렇게 썼다. “그처럼 혼난 적은 처음이었다. 분노와 수치심 속에서 왜 사람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왜 자살하는지를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무자비한 수사를 지휘했던 윤석열은 피고인의 신분으로 법정에 서 있다. 2025년, 그는 계엄령을 선포하여 헌법을 유린한 죄로 탄핵당했고,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한때 ‘법치’를 외치며 권력자들을 겨눴던 검사가 이제는 스스로 법의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검사는 체질에 안 맞는다"고 떠났던 그는, 왜 돌아왔을까
윤석열은 과거 검사직을 떠났었다. “체질에 안 맞는다”고 했지만, 그는 결국 다시 돌아왔다. 변호사는 남을 변호해야 하고, 때로는 상대의 억울함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은 언제나 ‘갑’이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복귀한 그는 권위적인 수사관이었다. 상대의 말보다 표정을 먼저 판단했고, 협조적이지 않으면 압박했고, 피의자의 입에서 원하는 말이 나오지 않으면 강압적으로 밀어붙였다. 그러한 태도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 오만의 상징이 되다
윤석열의 유명한 말,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처음에는 정의감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 말은 곧 누구의 말도 듣지 않겠다는 선언이 되었다. 충성하지 않는다는 건, 타인의 조언도 거부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회의도 혼자 하고, 결정도 혼자 내리며, 밀어붙이기도 혼자 했다. 여당도 야당도, 국민도 모두 자신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믿었다. 자신만이 옳다고 믿었던 그의 신념은 결국 독선과 고립을 낳았다.
여당까지 장악하려 한 대통령
윤석열은 여당마저 손에 쥐려 했다. 당대표 출마를 저울질하던 나경원 의원에게는 윤석열의 압박이 들어갔고, 결국 나의원은 출마를 포기했다. 현직 국회의원임에도 대통령의 압박 앞에 출마를 포기해야 했다.
당원과 국민이 직접 선출한 이준석 대표는 대통령의 미움을 사 정치 보복을 당했고, 결국 당에서 쫓겨났다. 급기야 한동훈 대표에게조차 퇴진을 요구하며 여당을 대통령실의 하부 조직처럼 다뤘다. 유승민 전 의원 역시 비윤계라는 이유로 경기지사 공천에서 밀려났고, 결국 보수 진영은 김동연 후보에게 패배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2024년 총선, 국민의힘은 역사적인 참패를 기록했다. 민심은 대통령의 독선에 철퇴를 내렸다. 총선과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패한 원인 중 윤석열이 가장 크다.
야당 대표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임기 내내 윤석열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범죄자’라 부르며 회동조차 하지 않았다. 국정 협의를 위해 한 번도 만나지 않았고, 협치의 문을 스스로 닫아걸었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 했지만, 윤석열에게는 타협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결국 총선에서 참패한 후에야 마지못해 이재명 대표를 만났지만, 그건 대화가 아니라 사과의 제스처에 불과했다. 이미 때는 늦었다.
총선 패배 이후 윤석열 정권은 정국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극단적인 수를 두었다. 계엄령을 선포하여 군을 동원해 국회를 마비시키고, 야당을 압박하려 했다. 이 시도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심장을 겨눈 것이었다.
다행히 국회는 즉각 계엄령 해제를 의결했고, 이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고, 헌법재판소는 이를 인용했다. 윤석열은 헌정사상 가장 빠르게 파면된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그가 남긴 것은 ‘질서’가 아니라 ‘폭주’였다.
지금 윤석열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40년이나 후퇴시킨 계엄령 선포로 탄핵당해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왔고,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듯하다. 경찰이 조사받으라고 불러도 “나는 떳떳하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큰소리치고,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취재진이 질문하려 다가서자 윤석열은 자신을 연호하는 100여 명의 지지자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 저 사람들이 좀 보게 이 앞을 가로막지 좀 말아주시면 안 되겠어요?”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말이다.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라면 마땅히 국민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할 터. 그에게는 국민에게 미안한 감정, 부끄러움, 반성의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김건희 여사도 다르지 않다
특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김건희 여사는 느닷없이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더니 “특검 때문에 입원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아팠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국민은 안다. 그 “오래전 아팠다”는 사람이, 그동안은 아무 일 없던 듯 활동하고, 돌아다니고, 웃으며 외부 일정까지 소화했다는 걸. 그랬던 사람이 특검을 피하려 하자 갑자기 “아프다”는 핑계를 들고나오니, 그 모습은 참으로 치졸하고 뻔뻔하다.
진작 특검에 응했더라면 어땠을까. 조사를 진행하는 검사나 판사들이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형식적인 수사와 가벼운 처분으로 마무리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윤석열과 김건희는 그 기회를 걷어차 버렸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기 힘든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은 것이다.
권력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 국민은 똑똑히 보고 있다. 그 어떤 정치적 방패도, 법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심판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우리도 곧 전직이 된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서운함을 품은 측근들이 정치적 보복을 주장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도 전직이 된다. 전직 대통령을 공격하면, 언젠가 그 화살은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는 원칙과 품격을 지켰고, 정치 보복의 악순환을 끊으려 했다. 국가를 위한 정치란 바로 이런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며 품위 있게 결단하는 것, 그것이 국가 지도자의 진정한 리더십이다.
윤석열의 죄는 단죄하되, 길게 끌지 말자
윤석열이 저지른 죄는 크다. 헌법 유린, 권력의 사유화, 야당과 언론에 대한 압박.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그 단죄에만 매달려선 안 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박근혜·이명박 전직 대통령의 적폐 청산에 몰두한 나머지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상황을 떠올려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 한가운데 있다. 미국의 트럼프발 자국우선주의와 관세 장벽, 중국의 권력 불안정과 경기 둔화,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 러시아와 북한의 연대 강화, 국내의 고금리·고물가, 청년실업과 지방소멸 위기까지.
이 상황에서 정치는 복수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 윤석열의 단죄는 ‘굵고 짧게’ 끝내야 한다. 그 뒤로는 국민의 통합과 국가의 회복이 뒤따라야 한다. 정의는 반드시 실행되어야 하지만, 정치 보복이 국정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윤석열은 끝까지 자신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대통령은 검사와 다르다. 힘을 쓰는 자리가 아니라, 들어주는 자리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윽박질렀고, 외면했고, 밀어붙였다. 그의 몰락은 단지 개인의 추락이 아니다. 권력이 어떻게 폭주하는지, 그 종말이 어떤 참혹함을 낳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경고다.
이제 그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배워야 한다. 과거 그가 윽박지른 사람들의 고통을, 지금 자신의 현실을 통해 되새겨야 한다. 국민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그 누구도 국민을 속이고, 권력을 사유화하며, 독재를 재현할 수 없다.
윤석열의 몰락은 그 증거다. 이제 권력은 내려놓고,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일 때다. 그리고 정치권은 이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권력은 견제받지 않으면 반드시 폭주한다. 검찰 권력도, 대통령 권력도 예외는 없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이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 국민 통합과 위기 극복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다. 이제는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 이 나라의 진짜 주인임을 다시 확인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