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 대변하는 소리꾼이고 싶다”

[국악이 힙해졌다] 6편 판소리 소리꾼 오단해 씨(2)

2022-04-12     강나리 기자

올해 오단해 씨는 ‘적벽’을 비롯해 K뮤지컬 ‘무령’ 등 다양한 작품으로 공연을 하고, 앨범 계획도 있다. 오는 5월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2022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작품 중 ‘부채소녀’에 참여할 계획이다. 또한 판소리 심청가 주요 대목과 장면들이 현대의 펑크, 소울, 블루스를 접목한 8인조 밴드와 함께 재탄생해서 선보일 예정이다.

오단해 씨는 JTBC '풍류대장-힙한 소리꾼들의 전쟁' 출연이 자신의 인생, 그리고 소리꾼으로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오단해 씨와 jtbc ‘풍류대장’은 뗄레야 뗄 수 없을 것 같다.

- 처음 섭외를 받았을 때는 망설였어요. 저는 판소리를 월드뮤직과 접목해서 대중에게 판소리를 더 잘 전하고자 협업 작업을 했지만, 단순히 판소리 창법을 차용해 대중가요를 하는 게 아닌가 했거든요. 그런데 풍류대장에서 다양한 크로스오버를 통해 대중에게 국악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잘한 선택이었죠.

1라운드 ‘민물장어의 꿈’도 좋았는데, 특히 2라운드 때 ‘누구를 위한 삶인가’ 노래 가사에서 자신의 신념이 강하게 느껴진다.

- 리쌍의 ‘누구를 위한 삶인가’를 개사했죠. 1라운드에서 진솔한 제 마음을 보였다면, 2라운드에서는 이제 앞으로는 대차게 나아가겠다는 포부였죠. 콜라보 작업 때 어떤 분위기로 연주했으면 좋은지 정리하는데 30분도 안 걸렸고, 가사는 하루 만에 썼어요. 거침없이 곡이 나왔고 그게 반응이 좋았어요.

‘풍류대장’출연이 본인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고.

- 제 인생과 소리꾼으로서 제 업에서 아주 큰 전환점이 되었어요. 제가 이 길을 가는 게 맞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거든요. 프로그램에 나오기 전까지 무척 힘든 시기였어요. 지금까지 살아오며 최선을 다했고 꿈을 놓진 않았는데 제가 잘하는지조차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다 보상받았어요. 출연자들도 서로의 무대를 존중하며 경쟁자라기보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지라는 게 느껴졌고, 촬영장 스태프와 심사위원들도 진심으로 대했죠.

방송 끝나고 사진을 함께 찍었을 때 박정현 씨가 “단해님은 절대로 노래를 포기하면 안 된다”라고 말씀해주셨는데 큰 감동이었죠. 이적 씨, 성시경 씨도 “노래를 너무 잘한다. 어떤 노래도 자기만의 스타일로 소화를 할 수 있는 분이다”라고 하셨죠. 돈으로는 환산할 수도 없는 소중한 응원이었어요. 예전 같으면 일이 없고 할 때 우울함이 심했거든요. 큰 위로가 되었고 ‘나는 지금까지 잘 이겨내 왔고. 어차피 뭘 해도 잘 할 수 있을 거야’라고 힘을 주었어요. 지금도 뇌리에 남아서 자존감이 떨어지려 할 때마다 떠올리곤 해요.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인지.

- 2016년에 제가 결혼해서 가장이 되었고, 그해 하반기 성창순 선생님께서 편찮으시다 다음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선생님은 엄격하셨지만 제가 고집부리고 화를 낼 때는 받아 주시도 했죠. 누구보다 존경했고 제게 부모님 같은 분이셨어요. 지금도 가끔씩 꿈에서 뵙니다. 그전까지는 선생님께서 지적해주셨지만, 그때부터는 예술가로서 정확히 홀로서기를 해야 했죠. 제 소리에 대한 줏대를 가지고 남 눈치 보지 말고 한번 해보자고 결심했어요.

오단해 씨는 가장 힘들던 시기 나약해지기 싫어 일부러 택배 상하차 등 힘든 아르바이트로 버텼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방송에서 송가인 씨도 한번 언급했는데 젊은 국악인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을 겪더라.

- 저도 ‘풍류대장’ 출연 중반까지 아르바이트했어요. 아내의 권유로 지난겨울이 아르바이트하지 않은 첫 겨울이었죠. 공연을 업으로 하면서 고정적인 수입이 없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코로나 시국에는 무대가 거의 없다 보니 더 큰 타격을 받았죠. 국악인들의 경우 4, 5월부터 공연이 생기고 조금씩 풀리기는 하지만 출연료는 다음 달에 정산이 되니까 그때까지는 버티는 거죠. 그걸 우리끼리 ‘보릿고개’라고 불러요.

소리 외에 어떤 일들을 했는지.

- 어렸을 때 산전수전을 겪진 않았어요. 결혼하고 나서는 나약해지기 싫어서 일부러 힘든 아르바이트를 자처하기도 했어요. 택배상하차가 가장 노동 강도가 셌죠. 지금은 근로시간이 주 52시간 정해져 있지만, 그때는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식사시간 1시간 빼고 계속했어요. 문제는 힘드니까 중간에 도망가는 사람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면 남아있는 사람이 더욱 힘들어지죠. 최고로 일을 많이 했을 때는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오후 1시까지 한 적이 있는데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어요. 어떻게 귀가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였으니까요. 그 일은 매일 못하고 주 2, 3회씩 했고, 가끔씩 들어오는 공연연습 시간을 내려고 대리운전을 하거나 택배 배달과 라이더, 하나로마트 전국 재고 조사를 하기도 했어요.

같은 길을 가는 젊은 국악인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지금까지 힘든 길을 걸어 온 동료들에게 뻔한 말일 수도 있는데요. 막연하지만 꿈 하나로 저도 계속 버티면서 꾸역꾸역 살아왔거든요. 꿈을 절대 안 놓쳤으면 좋겠습니다. 만약에 그 꿈을 놓치고 현실과 타협하더라도 거기에 누구도 비난할 사람은 없죠. 그러나 그냥 잘 이겨내면서 살다 보면 언젠가는 예술가들이 살기 좋은 날도 오지 않을까 합니다.

오단해 씨는 시대를 노래하며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소리꾼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본인 제공]

 

끝으로 앞으로 추구하고 싶은 소리의 세계는?

- 노래는 사람들을 살리고 힐링하는 힘이 있습니다. 저도 경험한 적이 있어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진짜 힘들 때 노라조의 ‘형’이란 노래를 듣다가 헬멧 안에서 펑펑 운 적이 있어요. ‘형도 예전에 그랬어, 힘내, 너 언젠가 좋은날이 올 거니까’라는 흔한 가사인데 한번 울고 나니까 힘이 나더라고요. 그 노래 영상에 ‘정말 죽고 싶었을 때 자기를 살린 곡’이라는 댓글을 봤어요. 저도 그게 어떤 심정인 줄 알겠더군요.

저는 시대를 노래하는 소리꾼이고 싶어요. 명창이 되겠다는 꿈보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 롤 모델이 장사익 선생님인데 사람들한테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어요.

1편 소리꾼 오단해, “누구를 위한 삶인가?” 소리에서 답을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