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과 나라를 지켜주신 조상께 감사의 마음을 잊지말자

(사)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답사ㅡ3.1운동의 발상지 봉황각 북한산 '순례길'

2013-09-23     글/사진=문지숙 (사)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강사

지난 일요일 (사)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2호인 3.1운동의 발상지 봉황각(鳳凰閣)과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선생의 묘를 비롯한 순국선열묘역이 있는 북한산 둘레길에 다녀왔다.

봉황각은 1919년 3.1독립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 중 주도적 역할을 하신 의암(義庵) 손병희 선생이 서울 우이동 북한산 자락에 2만7,900평의 터를 잡고 역사 의식을 심어 항일 독립운동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1912년 세운 건물이다. 의창수도원(義彰修道院)이라고도 한다.

1914년 4월까지 총 483명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고 그들은 후에 3.1운동을 이끈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민족 대표 33인 중 15명이 이곳에서 배출된 것만 보아도 봉황각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곳인지 알 수 있었다.

봉황각 주위에 12동을 더 지어 총 13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3.1운동 후 일제가 12동을 철거하여 현재는 봉황각과 살림채만이 남아 있다. 봉황각이 존재하니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후손들이 이를 보고 3.1독립만세운동을 가슴 깊이 한 번 더 느끼 것이니.

봉황각은 ‘弓乙(궁을)’자형으로 평면이 구성된 언뜻 보기엔 민가풍으로 보이나 궁

궐의 부속건물 양식이 더해진 총 7칸의 한식 목조건물이다. 궁을은 동학 제 1대 교조인 수운(水雲) 최제우 선생이 영부(靈符: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 마음)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다. 동학의 본질인 천심(天心)의 ‘心’자를 표현했는데 그 모양이 활 궁(弓)자를 나란히 해 놓은 것과 닮은 것에서 유래하였다. 이것은 동학의 상징이기도 하다. 봉황각 인근 천도교종학대학원(天道敎宗學大學院) 건물에서도 이를 볼 수 있었다.

봉황각에서 조금 내려오면 손병희 선생의 묘가 나온다.  아쉽게도 외부인 출입을 막아 먼발치에서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매년 3월 1일 ‘봉황각 3.1운동 재현행사’ 때 공개한다고 한다.  평상시에도 유치원생부터 모두가 독립투사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는 한 주민의 말이 크게 들린다. 이 말을 들으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애국의 마음이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손병희 선생의 삶은 어떠했을까?

의암은 1861년 4월 8일 충북 청원에서 아버지 손두흥(孫斗興)의 둘째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 선생은 약하고 힘든 사람들을 도우려는 마음이 유난히 컸다.  열두 살 때 아버지 심부름으로 관청에 공금을 내러 가다가 눈길 위에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구휼비로 내어 준 일화는 선생의 심성이 어떠하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2세 때 큰조카 천민(天民)의 노력으로 평등사상을 내세운 동학에 입도한 후 2대 교조 최시형과의 인연으로 종교적 수양을 쌓게 된다. 1894년 광제창생, 보국안민의 가치를 내걸고 동학운동이 활성화되자 호서지방 중심 북접의 통령에 임명되어 남접군을 이끄는 전봉준과 함께 남북접연합군을 형성하여 그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일본군의 불법적인 개입으로 공주 우금치전투에서 패한 후 선생은 애국계몽운동으로 새로이 구국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보성학교(현 고려대), 동덕여학교(현 동덕여대)를 비롯한 문창, 보창, 명신, 양영 등 수십 개의 학교를 인수하고 신설 운영하는 등 교육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1919년 민족종교의 대표이자 독립운동가로서 기독교와 불교 유교계 등 각계 인사들과 3.1 독립운동의 근간인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화의 3대 원칙에 합의하고 마침내 3월 1일 선생을 필두로 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3.1운동의 영향으로 국내외 8개의 임시정부가 생기고 상해임시정부로 통합되는 결실을 얻게 된다. 그 중심에 선생이 있음을 두 곳의 임시정부에서 손병희 선생을 대통령에 선임한 것만 보더라고 알 수 있다.

독립선언서 낭독 후 스스로 일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1920년 10월 병보석으로 출옥하였으나 그 여독으로 1922년 5월 19일 생을 마감하셨다.

손병희 선생은 그렇게 순국하셨으나 조국을 향한 그의 마음은 민족 독립운동의 횃불이 되어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강북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제작 ' 순례길의 독립운동가들' 책자 배포

이번 답사는 한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을 맞아 오늘날 우리가 이 땅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삶과 목숨까지도 대한 독립에 바친 독립투사들의 묘역을 순례하며 감사의 뜻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더욱 의미 있고 뜻 깊었다. 또한 순례길을 방문한 등산객들에게 강북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에서 제작한 ‘순례길의 독립운동가들’ 책자를 나눠주며 앞으로 이런 활동의 필요성을 더욱 더 절감할 수 있었다.

▲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회원들이 환하게 웃으며 북한산 순례길 시민들에게 '순례길 의 독립운동가들' 책자를 나눠주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애국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목숨 바쳐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봉황각과 손병희선생 그리고 강북구 애국지사 순례길을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보고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스스로 나라사랑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