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곧 독립운동사였던 김구선생의 삶속에서 우리의 철학과 정신을 만나다
학생현장체험학습 - 효창공원, 백범김구기념관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나라사랑 국경일이야기'수업의 세 번째 현장 체험학습지로 효창공원과 백범김구기념관을 다녀왔다. 6월부터 매월 진행해 온 학생현장체험학습 답사의 인기가 날로 높아져 이번 답사에는 100여 명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참여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의 삶이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고스란히 말해주기 때문에 학생들이 일제강점기를 이해하기 쉬운 답사장소이다. 동학농민운동, 의병활동, 임시정부, 한인애국단, 해방, 분단의 역사를 모두 공부할 수 있다. 전시관의 앞부분에는 김구 선생이 어린시절 개구쟁이였고, 과거시험에 낙제했다는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학생들은 이렇게 위대한 분의 어린시절이 자신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친근함을 느낀다.
동학농민운동이후 피신했던 곳이 안중근의사의 집이었고, 이때 16세의 안중근과의 첫 만남도 흥미로워했다. 독립운동으로 옥살이를 할 때 “나는 네가 경기감사 한 것보다 더 기쁘게 생각한다.”라는 말씀을 하신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동상 앞에서는 학생뿐 아니라 함께 한 학부모와 강사들에게도 큰 울림이 되었다. 학생들의 발길을 오랫동안 끄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백범일지」친필본 앞이었다. 공책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쓰인 백범일지. 일기를 쓰기 싫어하는 아이들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 소중한 기록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느라 온 가족이 단란하게 모여 생활한 기간이 2년 정도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에는 다들 안타까운 탄성을 자아냈다. 이봉창의사의 폭탄이 불발이 된 사연, 윤봉길의사의 의거로 중국군사학교에서 우리 독립군이 교육받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사연 등을 들었다. 교과서에서 사건 이름만 외우던 학생들은 그런 세세한 사연과 그때의 활동이 미친 영향 등을 들으며 그 시대 속으로 빨려드는 듯했다.
광복군의 늠름한 모습과 국내 진격작전 지도를 보고 더욱 눈을 반짝이던 학생들은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여 맞은 해방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음에 아쉬워했다.
해방이후 타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신 의사들의 유해를 송환하는 사진 앞에서는 모두가 숙연해졌다.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 송환사진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참담하게 굳은 표정의 김구선생 사진을 보며 함께 가슴 아파했다. 더욱이 안중근의사의 가묘에는 아직도 그 시신을 찾지 못한 사연에 울분을 내보이기도 했다.해방이후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끝까지 애쓰신 김구선생. 선생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남북으로 갈린 38선과 그로인해 암살을 당하신 김구선생의 데드마스크 앞에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는 학생들도 많았다.
마지막에 전시되어 있는「나의소원」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하여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이오,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라는 부분을 다같이 읽으며, 우리의 역사와 철학과 정신을 알고, 또 알리기 위해 힘쓸 것을 다짐하며 백범김구 기념관 답사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