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시아 상고시대 천손문화의 기록이 담긴 부도지(신라시대 박재상 지음)
한국 선도의 대표적 선도사서「부도지」는 한국 고유의 창세설화인 마고설화를 위시하여 한국 선도의 원형을 담고 있기에 누구보다도 우리 한국인들에게 가장 귀중한 역사기록이다. 그러나 이를 좀 더 면밀히 고찰해보면 이것이 비단 한국의 상고문화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인류사 초기의 상고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원형을 제시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동아시아 상고문화의 원류에 대한 관심은 항상 있어왔다. 서구에서 근대 학문이 도입된 이후 그 원류는 대체로 ‘무교巫敎(샤머니즘) 정리되었고 아직도 그 영향이 지대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과 새로운 모색도 만만치 않다. 최근 중국에서는 홍산문화 발굴을 계기로 요하문명을 상정, 동아시아 상고문화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을 시작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에 들어 동북공정의 대응 과정에서 단군조선사가 복구되었고 이를 계기로 단군조선 이전 역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이다.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탐색 중인 동아시아 상고문화에 대해 한국의 선도사서「부도지」가 선명한 해답을 제시하는 점은 놀라움을 넘어서 신기하기조차 하다. 집안 구석 다락방 먼지 속에서 까마득히 잊고 있던 오랜 보물 상자를 발견한 것처럼 지금 우리 한국인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 상자를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이 보물은 여러 방식으로 불릴 수 있겠지만,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친근한 표현에 대한 고민 끝에 ‘천손 문화'라는 개념을 가져오게 된다. 과연 ‘천손 문화’란 무엇인가?

「부도지」에서는 한국 선도 고유의 삼원오행론으로써 우주와 인간을 설명한다. 특히 인간의 원래 모습은 천인天人, 곧 삼원오행의 법칙인 율려 자체-머리의 의식(天)·가슴의 마음(人)· 배의 몸(地)의 극히 순정한 상태-로 묘사된다. 마고성 시대에는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는 수증修證을 통해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아갔다. 그런데 천인들 중 일부가 몸 또는 물질(地)에 치우친 삶을 선택하면서 더는 마고성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의식(天)·마음(人)·몸(地)’의 균형을 유지한 사람을 ‘천인(천손天孫)’이라고 한다면 그 균형이 깨어져 몸(地)에 치우친 사람은 ‘지손地孫’으로 이름할 수 있다. 인류가 ‘의식·마음·몸’의 균형을 지켜갔던 천손에서 몸의 감각적 욕망을 쫓아가는 지손으로 변질함으로써 마고성 시대를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마고성 이후 전개되는 인류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천손에서 지손으로 세속화된 인류는 마고성을 떠나가게 된다. 마고성내 4종족(황궁족·백소족·청궁족·흑소족)의 우두머리인 황궁족의 수장 황궁씨는 언젠가는 ‘마고성 당시 인류의 원래 모습(本, 율려)을 회복하겠다(復)’는 ‘복본復本의 서약’을 한 후 복본의 신표인 ‘천부(천부삼인)’을 나누어 주면서 마고성시대를 마감하였다. 청궁족은 동쪽 운해주, 백소족은 서쪽 월식주, 흑소족은 남쪽 성생주, 황궁족은 북쪽 천산주로 흩어져 감으로써 현생의 인류사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현생 인류사의 출발점에 ‘복본’이라는 궁극적 방향이 설정되었기에 마고성 출성 이후의 역사는 4종족 중에서도 특히 복본의 사명을 자임했던 황궁족계의 역사, 그중에서도 ‘복본’을 상징하는 ‘천부’ 전승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된다. ‘천부’의 전승이란 사람의 근본 모습인 율려, 곧 의식·마음·몸을 닦아(修) 증명하는(證) ‘수증법’, 곧 선도수행의 전승에 다름 아니다.

황궁씨의 천부는 ‘유인有因 시대→환인(환국)시대→환웅(신시 배달국)시대를 거쳐 단군(단군조선)시대’로까지 이어졌다. 황궁씨 이래 단군조선까지는 천부의 지속적인 전승을 통하여 천손 문화의 전통이 유지되었을 뿐 아니라 사해(四海)로도 널리 전파되어 나갔기에 마고성 이래 세계 각처로 흩어져간 지손들의 지손 문화를 천손 문화로 회복시켜 갈 수 있었다. 이것이 인류 상고문화의 중심에 동아시아의 ‘천손 문화’를 놓게 되는 이유이다.

단군조선 말기에 이르러 물질에 치우친 지손 문화가 천손 문화를 압도하기 시작하자 당대의 천부 전승자였던 단군은 이제 막 발흥하기 시작한 지손 문화가 극대화된 후에야 다시 천손 문화의 시대가 돌아올 것으로 예상하고 스스로 천부의 전승을 폐하게 된다. 단군조선 이후의 역사는 외래사상의 영향 속에서 복본 또는 천손 문화의 전통이 왜곡·망실되어 간 역사 또는 그 와중에서도 천손 문화의 전통을 지켜내려 했던 노력의 역사가 된다.

「부도지」로 대변되는 한국 선도의 역사인식에 담긴 한국인들의 복본(천손 문화의 회복)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읽으면서 우리 한국인들이 그렇게 오랜 시간 속에서도 인간의 근본 상태(율려)를 기억하였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전 인류와 함께 율려를 회복하고자 하는 소망을 잊지 않고 가슴에 고이 간직해왔음에 거듭거듭 감복하게 된다.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