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무석 궁장 명인

우리는 세계에서 활을 가장 잘 쏘는 민족으로 활의 나라라 할 수 있다. 오랜 역사에서 삼국 이전의 기록이 전혀 없으나 고구려에는 경당에서 글과 궁술을 익히는 합숙소가 있었다. 또한 백제 비류왕(AD330년)은 궁성 안에 활터를 만들어 초하루와 보름이면 문무백관을 모아 활쏘기를 했다. 그리고 신라에는 정규군편제로 활을 쏘는 4개의 이궁부대가 있어 변방을 지키고 궁성을 지킨 기록이 있다.

고주몽 등 역대 나라를 세운 왕들도 모두 명사수들이다. 이성계가 함흥에서 귀경할 때 태종을 향해 날린 화살이 평생, 단 한 발의 불발이었다고 한다. “내 화살에 죽지 않은 사람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란 이성계의 말처럼 우리 선조는 활의 명수로서 나라를 건국하고 지켰으며 호연지기를 길러 5천 년을 이어왔다.

우리나라 각궁의 첫 기록은 220년경 고구려 때다. 1m25cm 크기의 각궁은 물푸레나무 속에 대나무로 심을 넣고 가운데 손잡이는 참나무를, 양쪽 단에는 뽕나무를 깎아 붙이고 겉면에 물소뿔을 붙인다. 외면에는 쇠심줄을 부레 풀로 붙인 후, 자작나무 껍질로 감싼다. 이렇게 만든 활은 천 년이 가도 썩지 않는다.

이런 대단한 활의 대가 끊긴 것은 일본 강점기 때였다. 경술국치 후 일제가 가장 먼저 없앤 것이 궁술이다. 활 잘 쏘는 사람들을 술집에 모아놓고 술과 기생으로 얼이 빠지게 해 ‘활 쏘는 사람은 한량’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또한 국궁에 대한 우리 역사까지도 왜곡시켰다. 예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으로 승리한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전사자 1명 없이 백전백승을 거둔 것이 활의 위력이란 사실은 배우지 않는다.
오히려 조총 앞에 구식 화살로 대적해 실패한 임진왜란을 기억시켰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도 우리 화살은 1,000보를 나간다는 기록이 있듯 세계에서 가장 멀리 나가는 화살이다.

난중일기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은 화살을 만드는 사람이 꾀를 부리면 곤장 70대로 다스렸을 정도로 활을 아주 중요시했다. 거북선과 천자포도 뛰어나지만 천자포는 출렁거리는 물 위에서 명중도가 높지 않고 사정거리도 100m 정도로 짧다. 반면 활은 400~500m를 날았다. 일본의 조총 사격거리는 칠십 보(50m)정도였다. 또한 배가 목선이라 불화살 앞에 맥을 못 추고 물에 빠진 일본 병사들은 육지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활에 맞아 죽은 사람이 헤아릴 수 없었다.”는 일본의 기록은 그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임진란 이후 중국이 사신을 파견할 때마다 우리 활과 화살을 요구해 가져갔음에도 재현해 내지 못했다. 활의 장인도 데려갔으나 그 장인은 한국에서만 나는 재료가 필요하다는 등 여러 이유를 들어 제작기술을 지켜냈다고 한다.

어느 민족보다도 가장 먼저 조기교육을 하고 활을 중요시한 것이 바로 우리 민족이다. 말을 하기 전부터 어린 아기에게 ‘도리도리 짝짜꿍, 건지 곤지, 잼잼, 까꿍’ 등 놀이로 원리와 도리(道理)를 가르쳤고 서너 살이 되면서부터 육예(六藝=예禮악樂사射어禦서書산算)를 익히게 했다. 가르침이 제대로 교육되지 않을 때는 뉘우치도록 꾸짖어 다스린다는 회초리로 참된 사람을 길러냈다. 그러다 장가를 들면 활쏘기는 필수였다.

긴 역사만큼 조상의 얼과 슬기가 담긴 활쏘기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길러주었다.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과 고매한 선비정신을 익혀 참된 삶을 추구하면서 주색잡기를 멀리하게 된다. 지금도 활을 쏘는 사람들은 자세, 호흡법, 예의범절로 심신이 건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국궁을 젊은이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1992년 육군사관학교를 필두로 해사 공사 생도들에게 알려 왔다. 외국에서도 여러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2008년에는 미국에서 우리 국궁의 위력을 떨친 바 있다. 전시회 홍보 겸 공원에서 양궁클럽과 함께 시범공연을 했다. 자그마한 국궁에 비해 양궁은 2m가 넘지만 우리 국궁 사정거리는 150m이고 양궁은 30m다. 시범으로 쏘아 올린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자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신소재 활이 쏟아져 나오지만 우리의 각궁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런 우리의 풍습, 조상이 지켜온 우리 문화를 존중해야 하거늘 오늘날 우리 교육현장에는 전통 육아교육을 가르치는 곳이 없고 진정한 활의 위력을 알려주는 곳이 없다. 물론 지금도 조기교육은 시키지만 서양식 일색이라 동방예의지국이 무색하다. 지혜와 슬기를 하나로 모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애국이고 통일기반을 닦는 길일 것이다. 그 지름길은 나로부터 그리고 건강으로부터 시작한다. 건전한 심신은 우리라는 공동체 정신을 정립시키고 민족번영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