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해 2011학년부터 적용될 ‘2009 개정교육과정’에서는 국사마저 선택과목이 되었다. 그동안 고등학교 1학년에서는 필수과목이었으나 이젠 고교시절 우리나라의 역사를 전혀 배우지 않고 졸업할 수 있다는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장이자 일본강점기 6형제와 함께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에 매진해 진정한 지도자의 본분을 보여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국회의원을 만나 의견을 들어본다.

 

▲ 이종걸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장

2009 개정교육과정으로 국사교육 소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어떤 나라도 자기 나라의 역사교육을 소홀히 하면서 사회발전이나 성장을 이끌어낸 나라가 없다. 국사교육을 강화한 ‘2007개정 교육과정’에서 후퇴했다. 국사교육은 정권의 필요에 따라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미래형 교육과정이 국·영·수 중심의 실용주의적 교육을 표방하는데 공교육에 있어야 될 전인적인 교육을 무시하고 특히 대한민국 국사를 젊은이들로부터 배제하려는 것이다.

 

지금의 국사교육 방향과 역사관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현재 몰역사적 뉴라이트 역사관은 사실상 우리에게 ‘역사의 단절’을 초래한 일본강점기를 “그 시기가 없었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겠냐?”는 식의 식민지 근대화론자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1948년을 건국의 시초라 주장하는 ‘건국절’ 논란도 비슷한 맥락이다. 헌법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명시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지난 100년간 있었던 친일의 역사를 공식적으로 지우려는 발상이다.

 

청소년들이 어렵고 분량 많은 국사과목을 선택하기 어렵다

국·영·수 쏠림의 교육과정에서 국사교육 시간이 점점 줄다 보니 엑기스화 되었다. 국사교육으로부터 추출될 수 있는 상상력이라든지 토론의 가능성은 사장(死藏)된 채 맥락 없이 연대기적인 사실 나열을 머릿속에 넣는 교육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말하자면 ‘역사의 원동력’에 대한 아이들의 공유와 섭취가 없이 이루어졌다. 어쩔 수 없다 해도 결국 국사교육을 외면하게 한 이유가 되었다는 점에서 참담하다. 또한 식민사관을 걷어내지 못해 긍지를 갖지 못하고 패배의식을 재생산해내는 것도 문제다.

 

새로운 대안을 검토한 적이 있는지

미국 보스턴시 초등학교 5학년 미국사 교과과정을 본 적이 있다. 교재가 대학교 교양 미국사 정도로 두꺼운데 시대별 정치 경제 문화 등 통합적인 사회과목으로 배운다. 방대한 내용을 모두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 몇 가지를 선정해 그 당시 태어났다면 각자 입장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지 토론하고 자국의 언어로 표현하며 역사 현장에 가보는 것을 보았다. 사실을 주입하는 것보다 어렸을 때부터 흥미를 갖고 종합적으로 사고하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 국사교육이 말라 비틀어져 버리고 앙상한 모습처럼 부실해진 이유는 여러 사회과목 중의 하나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큰 줄기를 잡아 통섭해서 하나의 교육과정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우리 국사교육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한마디 부탁합니다

역사교육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자 방법으로 교육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반영할 수 있는 국사교육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미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으로 왜곡되고 삭제된 독립 운동사를 제대로 복원해야 한다. 특히 식민사관으로 지적되는 부분들에 대한 오류를 시정하는 것이 절실하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독도야욕 등 우리 역사와 영토에 대한 위협이 심각하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국가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독도문제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후 약방문식으로 대책을 준비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대륙과 해양을 잇는 동북아의 중심허브가 될 수 있다.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고 발전시킬 때 민족의 정체성 유지 발전할 수 있고 우리 고유한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조부 이회영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투철한 역사인식이 있었다

항일 독립운동가들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세운 분들이라 하나같이 역사 저술가 또는 역사가였다. 우당 이회영선생도 양명학적 기반에서 역사운동과 항일운동을 함께 하셨다. 동생 이시영 선생도 <감시만어>란 역사서를 저술해 천부경을 우리 역사의 중요한 기점이 되는 경전으로 보면서 그 해석을 통해 식민사관을 벗어나야 될 당위성, 필요성을 역설했다. 역사서를 쓰고 교육하면서 스스로 행동의 지침이 되었던 ‘행동의 역사’였다. 고통스러운 현실에도 그분들이 가진 역사관은 희망의 역사관이었다. 우리 민족이 꿈틀거려왔던 대역사 서사시를 보면서 우리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졌고 이를 통해 국난을 극복했다.

 

국학활동에 대해 의견을 부탁합니다.

한민족역사문화공원에 갔을 때 국조 단군할아버지로부터 을지문덕, 강감찬 등 우리의 자주적인 역사를 지킨 인물들을 구체적이고 눈으로 볼 수 있게 교육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왜곡되고 신화로 폄하되어 관념화, 추상화 되어 있는 것을 현실적으로 나타내어 우리 역사의 자긍심과 구체성을 심어주고 있었는데 청소년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필요한 부분이다.

 

이종걸 국회의원/ 1957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사법시험 30회 합격,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가입 인권변호사 활동, 16대, 17대, 18대 국회의원, 현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