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교수(포스코 미래창조아카데미)는 “일본의 정식 사서는 편찬을 주도한 통치자의 의사에 의해 왜곡될 수 있고 후대에 와서 가필(加筆, 내용을 보태거나 지워서 고침)되거나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만엽집은 마치 암호문과 같아 일상적인 노래로 인식해 왜곡되지 않은 진실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 일본 만엽집을 새롭게 해석한 소책자 '마나호(まなほ)' 제 69권 표지.

 

이 교수는 일본 내 ‘이영희를 지지하는 모임’의 지원을 받고 자신의 사비를 내어 만엽집에 관한 소책자 <마나호(まなほ)>를 70권째 출간하고 있다. 내년에는 이를 번역해 한국에서도 출간할 예정이다.

그러면 만엽집에 숨은 일본 역사의 한 장면을 살펴보자.
이영희 교수의 <마나호(まなほ)> 69권에 수록된 만엽집 권 제16편 3천8백27수는 아래와 같다.

 

<마나호(まなほ)> 69권에 수록된 만엽집 권 제16편 3천8백27수.

 

흔히 일본에서는 쌍육놀이를 노래한 것으로 해석해 왔다. 쌍육놀이는 주사위 두개를 던져 15개의 말을 이동시키며 노는 놀이로 백제 인이 즐겨한 놀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첫 머리 ‘일이지목(一二之目)’을 이 교수는 ‘일이갈몫’으로 읽어야 한다고 해석했다. 여기서 ‘之(갈 지)’는 음이 아닌 뜻을 차용한 것으로 ‘갈’은 쌍둥이를 나타낸다. ‘갈’은 옛 일본어에서 위아래가 똑같은 것이 맞물려 돌아가는 ‘맷돌’을 뜻한다. 쌍둥이를 은유적으로 상징한 것으로 한국의 고어에서 간 말이다.

이에 맞춰 해석하면 이 네 글자는 “왕이 될 첫째와 둘째는 쌍둥이의 몫”이란 뜻이다. 그러면 일본 역사서에 쌍둥이 왕의 기록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민간에서 쌍둥이가 태어나면 생산력의 향상을 뜻했기에 왕이 쌀과 피륙을 내려 축하했으나 왕가에서는 쌍둥이를 천시했다. 왕위계승의 문제도 있고 특히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신하들이 누가 누군지 구분하지 못한다는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일본 역사연구과정에서 이 쌍둥이 천황의 기록이 밝혀지고 있다. 8세기 초 원명(元明)천황은 이 여자 쌍둥이 중 동생이었다. 이후 언니가 원정(元正)천황으로 등극했으나 3년을 다스린 후 동생인 원명천황의 딸에게 보위를 물려준다. 이때 새로 등극한 조카도 원정천황이란 칭호를 쓰면서 일본 역사서에서는 이모와 조카가 한 인물로 표현된 것이다. 이 둘은 백제계 천지천황의 쌍둥이 딸이며 백제 패망 후 동생 원명천황은 신라와 전쟁을 하기도 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다른 향가가 ‘만엽집’ 안에 있다. 한 남자가 이 쌍둥이 천황 중 한 사람과 연애를 했는데 언니인지 동생인지 헛갈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이 중세 일본어나 현대 일본어로 ‘만엽집’이 해석되지 않는 것은 천황가나 지배계층이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 가야계 등으로 교체되면서 고대 한국어와 이두, 일본에서 토착화된 이두 등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자와 이두의 미묘한 차이를 이용해 은유적으로 뜻을 숨긴 탓에 당시 일본 역사와 작가의 신분, 행적을 알지 못하면 쉽게 해석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