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 미래창조 아카데미 이영희 교수.

 

일본에는 8세기 초에 간행된 네 가지 책이 있다. 고대사를 기술한  책인 ‘일본서기’(日本書紀, 편년체 정사서, 신화와 7세기 말까지의 왜왕 행적 수록), ‘고사기’(古事記, 신화와 7세기 초까지의 왜왕들 이야기), ‘풍토기’(風土記, 지방사서. 명산품 등 소개), 그리고 우리 신라 향가와 비슷한 노래 4천5백16수를 모은 ‘만엽집’(萬葉集) 이다.
이 '만엽집' , '고사기' 등을 새롭게 해석해 주목을 받는 사람이 있다. 한국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이영희 포스코 미래창조아카데미 교수가 그 주인공.

이영희 교수(포스코 미래창조아카데미)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처럼 골격은 한문체로 썼으나 인명, 지명, 풍속, 기술, 노래 등은 향찰, 즉 흔히 이두라 부르는 것으로 되어있다. 한자의 음(音)과 훈(訓)에서 생기는 소리로 우리나라 고대어를 표기했다.”고 했다. ‘만엽집’도 이 같은 이두체로 되어 있는데 그 표기법이 순수한 우리식 이두체가 아니다. 다분히 일본식 한자의 음과 훈으로 빚어지는 소리로, 우리 고대어를 표기했다.

이 '만엽집'을 일본 학자들은 그동안 중세 일본어와 현대 일본어의 틀에서 해독하려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고대 한국어로 쓰인 것이 중세 및 현대 일본어로 읽힐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정체불명의 문장으로 읽어 왔고 그저 연애시나 당시 풍속을 그린 옛 노래로 풀어내기 힘든 글로만 여겨왔다. 

이영희 교수는 일본 동경으로 유학간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초등학교까지 철저한 일본교육을 받아 현지인의 정확한 일본어 발음을 습득하고 귀국했다. 중학교 시절 포항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익히고 한국일보 문화부 차장 시절 우리 역사와 일본 역사에 관심을 갖고 역사공부를 시작했다. 우리 고대어는 사투리에 잘 살아있기에 고구려 언어계통인 북한 사투리, 백제계 언어인 전라도 사투리, 신라와 가야계 언어인 경상도 사투리, 그리고 우리식 이두, 일본식 이두를 공부해 한일 역사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1989년까지 일본 대학입시시험에는 항상 난해한 ‘만엽집’ 문제가 출제됐다.  수많은 참고서업계가 책자를 내놓고 학자들이 연구논문을 냈으나 명쾌하지 않은 내용을 공부하기 위해 학생들은 괴로움을 감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영희 교수가  ‘만엽집’을 우리 고대어로 새롭게 해석해  ‘또 하나의 만엽집’을 일본에서 출간하자마자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그동안 일본 학계의 해석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당연히 일본 학계와 참고서 출판업자들의 반발이 거셌다. 그러나 이 교수는 "제대로 해석하지도 못한 만엽집 문제로 인해 입시에서 낙방한 학생과 학부모가 재판을 제기했을 때 명확하게 밝힐 수 있겠냐?"고 반박했다.  이 책 발간 후 일본 대학입시에서 만엽집에 관한 문제가 빠졌다.

이 교수는 “'만엽집'이 중요한 것은 겉보기에 사랑시, 연애시, 사회 풍자시로 보이는 내용이 한국 고대어로 풀어보면 굉장한 정치적 분쟁을 나타내거나 정치현실을 비판한 내용인 경우도 많다. 반대로 사회풍자시인 줄 아는데 실제 일본 황실 내 연애담인 경우도 많다. 한자와 고대어 발음, 뜻의 미묘한 차이를 이용해 이중적 뜻을 가진 노래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일본의 정식 사서에서 숨기고자 했던 일들이 여실히 드러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2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