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은 힘이 세다. 그중에서도 요즘은 ‘예능’이 대세다. 예능 중에서도 어떤 예능은 우리를 두 번 웃게 한다.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웃고, 방송을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모습을 보며 한 번 더 웃는다.

MBC <무한도전> 멤버들이 촬영한 달력과 음반 판매 수익금을 사회에 기부한 것이 한 예다. 이렇게 오락과 공익이 한 배를 타기 시작한 것은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양심 냉장고’부터다.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 코너를 만든 이가 김영희 PD다. 그 후 그가 만든 ‘공익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은 연이어 승승장구하며 예능 프로그램의 새 지표가 되었고 사회의 활력소가 되었다.

이름보다 ‘쌀집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더 잘 기억되는 그가 한국방송PD연합회장 임기를 끝내고 9월에 MBC 방송국 예능국 PD로 돌아왔다. 그의 귀환이 반갑다.

《헉Hug 아프리카》 책 팔아서 아프리카에 우물 팝니다

그는 올여름 《헉Hug 아프리카》라는 책을 냈다. 검게 그을린 얼굴이 마치 갓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것 같은데, 사실 아프리카 여행은 5년 전에 다녀왔다. 그렇다면 여행 당시의 느낌이 많이 사라졌을 법도 한데 마치 지금 여행 중인 것처럼 이야기가 생생하다.

“제가 메모광이에요. 여행을 하는 내내 숙소에서 매일 하루 일정을 기록하고, 가족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썼어요. 메모해놓은 게 있어서 글 쓰는 게 수월했죠. 학창 시절에도 메모를 좋아했어요. 제가 평소에 공부를 잘 안 하고 시험 전날 벼락치기를 하는 편인데 그런 것에 비해 성적이 잘 나왔어요. 그게 노트 정리를 잘한 덕분인 것 같아요. 일할 때도 책상 주변을 포스트잇으로 도배해요. 메모하면 뇌에 그 내용이 오래 남으니까, 영감을 얻는 데 도움이 돼요.”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책으로 내자는 제의가 들어올 때마다 거절하던 그는 한 출판사가 수익금을 기부하자는 제안을 해오자 책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책 판매 수익금은 한 단체를 통해 아프리카로 전달돼 우물 파기 운동에 쓰일 예정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아프리카 우물 파기 캠페인 기부 협약식’에는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유재석, 강호동, 김제동, 이경실 씨 등 유명 방송인이 대거 참석해 홍보 효과를 제대로 봤다.

“문자 한 번 보냈을 뿐인데, 와준 그들에게 고맙다”며 웃는 그의 소탈한 모습에서 신뢰가 묻어난다. 20년간 함께 일한 연예인들이 지금 정상급 스타로 활동하는 것에 그의 역할도 한몫했을 것 같은데, 그 비결이 뭐냐고 묻자 “그런 거 없어요. 같이 일하면 마음에서 우러나와 그 사람을 좋아할 뿐이에요. 그게 비결일까요?” 한다.

그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누구를 만나든 상대방을 싫어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 술 마시는 자리에서 동료나 상사 흉보기는 안주처럼 뒤따르게 마련인데, 자신은 그런 험담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단다. 이것이 그가 막강한 인맥 파워를 형성한 비결 가운데 하나 아닐까.

내 DNA가 선택한 아프리카

사람이 갑자기 여행을 떠날 때는 대개 충전과 전환이 필요해서다. 40대 초반에 여행 가방을 꾸린 그도 그랬다. 그가 만든 프로그램이 줄줄이 성공하고 자신이 사회운동가의 모습으로 비치기 시작할 무렵, 그는 아이디어와 체력의 고갈을 느꼈다. 현장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회사에 연수를 신청했다. 목적지는 아프리카였다. 70일간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목숨의 위협을 느낀 적도 있지만 그는 대자연과 현대 문명이 혼재하는 그곳에서 비로소 무장해제하고 생기를 회복했다. 그는 여행 내내 자신에게 왜 아프리카에 왔는지를 물었다.

“왜 아프리카였을까? 아직도 모르겠어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 안의 DNA가 이끌었다는 거예요. 스물세 쌍의 염색체에 든 DNA 정보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들어 있어요. 조선시대의 역사를 나는 다 모르지만 내 DNA는 기억하고 있어요. 우리는 대개 책이나 컴퓨터,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을 아는 것의 전부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그건 1%도 안 돼요. 나머지 99%의 정보를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요. DNA가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지 확실히는 몰라도 DNA가 이걸 하고 싶다고 신호를 보내고, 그것이 느껴지면 하면 돼요.”

그는 아프리카에 다시 가고 싶고, 가게 될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마음에 크게 와 닿는 문구를 발견했다고 한다. 우간다 여행에서 어느 날 맥주를 마시다가 심심해서 병 라벨에 인쇄된 문구를 읽었는데 그 내용에 반했다. 그 라벨을 갖기 위해 맥주 두 병을 억지로 마셨지만 라벨은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결국 한 병을 더 사서 호텔 방으로 와 물에 불린 다음 라벨을 살살 떼어내 말렸다. 말린 라벨을 스케치북에 붙이며 ‘한국으로 돌아가 자랑해야지’라며 좋아했단다.

라벨에 있는 문구는 이랬다. ‘너의 미래가 부른다. 마음으로 그 소리를 들어라. 앞으로 나아가라. 느껴라 네 영혼이 솟아오름을! 그리하면 네 자신 영원히 빛날 것이다.’

쌀집 아저씨 표 새 프로그램은 어떤 모습일까?

그가 방송 프로듀서가 된 것도 DNA가 이끈 것일까?

“PD가 뭐하는 건지도 모르고 MBC에 입사했어요. 제가 대학 다닐 당시 사회에 대한 저항감, 부정부패에 대한 문제의식이 팽배했었죠. 사회에 좋은 변화를 가져오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한 친구가 21세기는 방송의 시대라고 하기에 MBC에 입사 시험을 봤는데 합격했어요.

5년간 AD를 하고 처음 PD가 돼서 만든 ‘TV 파크’라는 방송은 실패였어요. 실패하고 상실감에 몇 개월 동안 굉장히 방황했죠.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생각에 좌절했어요.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하는 직업인 만큼 실패했을 때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을 내는 게 능력이에요. 하고 싶어서 막 미쳐야 제대로 할 수 있거든요. 그때 제가 존경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선배 PD가 충고를 해줬어요. ‘네가 실패했기 때문에 넌 더 크게 성공할 수 있다. 실패가 없다면 성공에도 한계가 있는 거다.’ 이 말을 듣고 정말 큰 힘을 얻었어요. 그 후에 만든 프로그램이 ‘양심 냉장고’였죠.”

그 후 그가 만든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빵’ 터졌다. 교통신호를 잘 지키는 사람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정지선 지키기’는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그야말로 기쁨 주고 사랑받는 프로그램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의 프로그램은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보기에 편했고, 사회에 긍정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돌이켜보면 그의 아이디어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것들이었다. 교통신호를 잘 지켜야 한다는 것, 서로 칭찬하자는 것, 책을 많이 읽자는 것 등.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지만 잊고 지내는 것들을 그는 텔레비전 속으로 가져와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줬다. 거기에는 착한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믿는 진심이 있었다. 이에 시청자들은 공감하며 웃고 울었다.

그래서일까. 김영희 표 프로그램은 시간이 지나도 뇌리에 남는다. 특히 그가 4년간 연출한 ‘느낌표’ 프로그램은 사회에 독서 열풍을 일으키며 전국에 ‘기적의 도서관’을 탄생시키는 기적을 만들었다. 그는 우리가 그 가치를 알지만 선뜻 실천하지 못한 것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창을 내주었고, 행동을 이끌어냈다.

시청률 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각 방송사 간에 채널을 고정시키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이 같은 방송 풍토 속에 그는 3개월 후 어떤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를 찾아올까?

“공익적인 성격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길 바라는 분위기가 느껴져요. 그러나 저는 공익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공익성을 담더라도 기존의 스타일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겠지요. 어떤 프로그램이 나올지는 저도 몰라요.”

그는 술을 끊고, 마라톤 회의를 이끌기 위한 체력 단련에 힘쓰고 있다. 쉰 살,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김영희 PD. 그가 곧 우리 곁으로 온다.

[출처] 브레인 Vol.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