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 주 사막을 지나 오아시스 지역인 커튼우드 시에서 세도나 시로 들어가는 89A 4차선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낯익은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인디언 문화의 상징인 피리 부는 소년 코코펠리의 조형물과 나란히 두 기의 제주도 돌하르방이 마주보고 있다.

세도나의 붉은 대지위에 신기한 검은 돌의 형상은 미주와 유럽에서 오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세계적으로 경치가 좋고, 기운이 좋기로 유명한 볼텍스 지역인 세도나에는 연 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그들이 먼 여행길에 지친 심신을 이끌고 이 곳 한국민속문화촌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러, 잠시 쉬었다 가도록 만든 곳이다.

관광객들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묻는다. “저 사람 같이 생긴 검은 돌은 무엇입니까?” 인포메이션 센터의 직원은 “ 세계평화의 섬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제주도에서 기증한 돌하르방입니다. 돌하르방은 평화와 장수를 상징합니다” 라며 친절하게 알려준다. 평화와 장수를 상징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한 관광객들은 돌하르방에 가서 만져보기도 하고, 껴안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태평양을 건너간 돌하르방이 한국을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세도나에 한국민속문화촌을 건립하는 계획을 가지고 첫 삽을 뗀지도 수 년이 지났다. 약 100㎡의 대지 위에 건립된 일지명상센터를 중심으로 교민과 관광객들을 위한 한국의 전통문화와 민속을 체험하는 장으로 한국민속문화촌을 완공할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다. 필자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데는 계기가 있다. 13년 전에 미국에 와서 우리나라의 정신문화를 전하는 과정에서 많은 교민들과 현지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아주 낮았다.

그들을 통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있다. 미국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는 “한국은 전통문화가 없으며, 만약에 있다면 그것은 일본문화와 중국문화의 아류다”라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름에 모국을 찾아 연수를 오는 해외교민 자녀들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려줄 때 ‘샤머니즘’을 교육한다는 것이다. 한국 전통문화라고 해외에 홍보한 것이 유교문화와 불교문화이니, 외국인들은 당연히 우리 문화를 중국과 일본의 아류라고 생각할 것이고, 더욱이 스스로 ‘샤머니즘’을 전통문화로 교육하니 이러한 생각을 더 굳힌 셈이다.

정말 우리에게 전통문화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는 전통문화가 있고, 외래문화도 있다. 유교와 불교문화처럼 외국의 종교와 사상이 전래되어 토착화된 것을 외래문화라고 한다. 외래문화에 대한 수용성은 전통문화의 깊이와 넓이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폭넓은 수용성을 가진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는 무엇인가? 전통문화라고 하면 유,무형 문화재를 떠올리겠지만, 그것은 전통문화의 핵인 ‘정신문화’의 발현이다. 그래서 전통문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정신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지난 2000년 간 외세의 침략과 외래문화가 주를 이루면서 많이 사라지고 잊혀졌지만,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한’이라는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한’의 정신은 ‘천지인(天地人)’사상과 맥이 닿아있고, 천지인 사상을 가지고 실천하는 인간상을 홍익인간이라 하고, 그러한 홍익인간이 모여 이치에 맞게 조화롭게 사는 세상을 이화세계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문화를 잊고 살아가는 것을 과거의 부끄러운 유산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2천 년간 나라를 잃고도 전통문화를 지키고 살아 온 민족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통문화의 재발견이고 현대화이다. 필자는 지난 30년간 우리의 전통문화와 정신문화를 현대 단학으로, 뇌교육으로, 국학으로 세계에 알리며, 국제적인 경쟁력과 세계화의 가능성을 이미 체험했다.

아무리 좋은 정신이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어야 한다. 홍익인간의 정신문화가 우리 국민과 나아가 세계인들에게 건강과 행복과 평화를 선물할 수 있다면, 우리 전통문화의 현대적 가치는 새롭게 인정받을 것이다. 전통문화 르네상스를 창조하는 새로운 문화운동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 국학원 설립자 www.ilch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