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면 한국사람이다. 자세히 봐도 영락없는 한국사람이다. 영어는 유창한데 한국말은 한마디도 못한다. 교포 2세인가? 하는데 중국인이란다.
 
그는 한국 고유의 정신문화와 21세기 뇌과학을 접목한 '뇌교육'을 배우고자 바로 미국에서 한국에 온 중국인 한지롱(Han JiLong) 사범이다. 그는 2006년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University of Illinois at Chicago) 재학 중 학교 내 단무도 클럽을 통해 '단학·뇌교육'을 처음 만났다. 2008년 1월 단학 지도자의 길로 인생의 방향을 잡고 지난주까지 미국 시카고와 애리조나 단센터에서 근무했다. 그는 지난 12월 11일 '단학·뇌교육'의 본고장인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한지롱님이 한국에 도착한 지 3일째 되는 14일은 한파가 불어 닥쳐 모든 것이 얼어붙는 듯했다. 그러나 한파도 이 청년의 가슴 속의 열정은 넘보지 못했다. 12시간의 시차도, 무서운 추위도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국이 춥지 않느냐고 물으니 시카고에 있을 때는 이런 추위에도 바깥에 나가 센터 홍보를 거뜬히 했다고 아무것도 아니란다. 한국에 온 지 3일째. 아직 시차도 적응 안 되었건만 지롱님은 벌써 서울 코엑스, 천안 국학원까지 다녀왔다.
 
"국학원 일지기념관에 있는 옛날 사진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 저에게 단무도를 알려주던 원장(전북 김제센터 남하나 원장)님부터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분들의 예전 사진들을 봤습니다. 한국에서 온 사범님들은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어요. 기념관에 있는 옛 사진들을 보면서 단학의 오랜 세월과 역사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유학생활 중 학교에서 단무도 시범공연을 보고 단학수련을 처음 만난 한지롱님. 물리학, 지구물리학, 천문학, 실용수학 등으로 석ㆍ박사 학위를 받으며 지독한 공부벌레였던 그는 단학수련으로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


“제가 느낀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한지롱님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현상에 관심이 많았다. 물리, 전기, 컴퓨터, 수학 등을 좋아해 1993년부터 베이징에서 물리학과 천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다 2000년 8월 중국에서 미국으로 유학 갔다. 처음에는 노스 웨스턴 대학(North Western University)에서 지구물리학 공부를 시작해 다음 해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University of Illinois at Chicago)으로 옮겨 물리학 박사, 실용수학과 재무 석사 학위를 받았다.

시카고에서 공부하던 중 지롱님은 학교 공부 중간 틈틈이 학교 내 클럽에서 태권도, 합기도를 배웠다. 그런데 매일 같이 가던 태권도, 합기도 클럽이 한 학기가 끝난 후 없어졌다. 활동적인 운동을 찾던 그에게 마침 시카고 단센터의 남하나 원장이 학교에서 단무도 시범공연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남하나 원장님이 여기 대학에 단무도 클럽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물어서 제가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학생 3명만 있으면 학교에 새로운 클럽을 등록할 수 있어 매우 쉬웠죠.”
 
“그런데 클럽 오픈 일주일 후에 제가 ‘그럼 단무도 클럽은 누가 가르치나요.’ 했더니 원장님이 ‘당신이요!’ 하는 거예요. ‘전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했더니 ‘배우면 돼요’ 해서 자연스럽게 단센터에 입회하게 되었죠.”
 
한 달간 수련 후 심성수련을 받았다. 심성수련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존재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이하캠프, Body & Brain 수련, 단무도 수련 등에 참석하고, 학교 클럽에서 사람들을 지도하면서 자신감을 더 가지게 되었다. “제가 느낀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나의 꿈은 중국에 홍익인간 정신을 전하는 것
 
오랜 세월 단학수련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더 깊은 수련체험과 수행을 원하는 자신을 느꼈다. 그러나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는 쉽지만은 않았다. 그에게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사회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성공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중국에 있는 제 가족들은 매우 가난합니다. 저한테 많은 기대를 거셨죠. 처음에는 정신적 완성 쪽으로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기에 많은 고민과 제 안에 올라오는 저항과 싸웠습니다. 제 마음의 소리를 따르자고 결심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단센터 인턴을 시작했다. 그런데 학교에 있을 때도 센터 회원들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자신을 보면서 마침내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단학 지도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10년간 미국에서 공부했습니다. 10년 동안 가족들과 전화통화만 했지 직접 얼굴을 본 적도, 중국에 간 적도 없었죠. 그런 저에게 사람들은 졸업 후에 뭘 할 거냐는 질문에 “요가 선생님이요.” 하면 다들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하하하”
 
열정 넘치고 하고 싶은 것 많아 보이는 그에게 비전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저는 중국에 홍익정신을 알리고 뇌교육을 보급하고 싶습니다. 일본이나 한국보다 더 큰 규모로 말이죠. 숫자상으로 보면 중국 인구가 약 13억이기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보다 더 커야 하는 것이 맞죠. 단학의 정신, 홍익인간의 정신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중국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정신을 잃고 지냈습니다. 항상 걱정해야 할 사회적 이슈들이 넘쳐났기에 행복, 자유, 평화 등을 놓치고 살았죠. 이러한 정신은 한국인보다 중국인에게 지금 더 간절히 필요합니다.

정치는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해요. 누가 책임지고, 누가 이끌고 있느냐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변하는 것들이죠.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과 진리는 영원합니다. 정말 행복한 중국인들의 얼굴을 그려봅니다.”
 
당당한 그에게도 걱정과 고민은 있었다.
“현재 타이완(대만)은 매우 개방적이나 중국은 정치적 이유로 다른 어떤 곳보다 더 도전적인 곳입니다. 국학원을 방문했을 때 박정배님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들었습니다. 한국의 역사와 중국의 역사가 많은 연관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현재 저의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오래된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홍익인간 정신과 뇌교육을 설명해야 할까,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에게는 국조인 단군 할아버지가 있듯 미국에는 지구인의 정신 마고 어머니가 있다. 한지롱님은 중국인에게도 중국만의 깊은 영적 커넥터가 있다고 보며, 그걸 일깨워 주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임을 느낀다고 한다. 한지롱님은 미국에서 실용수학 석사학위를 준비하면서 교수법(teaching tool)에 관한 연구를 했었다. 중국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영어와 물리를 가르친 적이 있는 그는 뇌교육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신념이 있었다.
 
“중국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복잡하지만, 교육은 전 세계가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교수법들은 그냥 ‘방법’에 불과했습니다. 어떻게 가르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어떻게 학생들 스스로 학습하게 하느냐 그것을 깨우쳐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바로 뇌교육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