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해방 당시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우리는 과연 식민교육의 폐해를 극복했는지 오늘을 되돌아본다.  

올해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는  소감은
우리는 일본 강점기를 거치면서 사회 전반에 너무 많은 내상(內傷)을 입었다. 그 내상을 본격적으로 치료할 때이다. 100년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가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입은 가장 큰 내상은 무엇인가
해방 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옳고 그름이 불분명해졌다. 나라는 해방되었지만 조선사편수회는 전혀 해체되지 않았다. 대학에서 일제 식민사관 이론을 계속 확대생산하고 이를 토대로 배운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쳤다. 조선사편수회 역사관을 해방 이후에도 계속 가르치다 보니 단군은 신화가 되어야 하고 일연이 만든 창작품이 되어야 했다.

식민사관에 더 오랜 연원이 있다는데
사대주의적 유학자들은 우리 민족이 국조로 인식하던 단군보다 중국에서 왔다니까 중국과 연관을 맺어준 기자를 높여 역사의 중심에 놓았다. 이들은 고조선의 영역도 평안도를 중심으로 축소하고 중국에 극단적인 사대를 했다. 이들이 조선 멸망 때까지 권력층을 이루었다. 그 논리가 그대로 식민사관의 토대가 되어 역사 왜곡을 하는 빌미가 되었다. 다시 현재 중국이 내세우는 동북공정의 기본사료가 되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역사인식은 어떻게 형성 되었나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등 양명학자들은 우리나라가 왜소해진 원인을 찾고 독립운동가들은 우리나라가 왜 일본의 식민지까지 되었는지 잘못된 현실을 고민했다. 그 원인을 찾으니 사대주의에 가서 닿았고 그 사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사대이전 우리 민족의 원형은 무엇인가 찾아가면서 공통적으로 국조 단군의 정신과 단군조선의 강역에 가 닿았다. 우당 이회영, 석주 이상용, 단재 신채호 등 많은 이들이 하나같이 같은 결론을 내린다. 우리 민족의 정신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에 대한 공통적인 자각이라고 본다.

수천 년을 이어온 한민족의 원형에는 어떤 사상이 있었나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와 있듯이 ‘천손’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중국의 천자는 하늘을 대신한다는 정권장악의 논리로 일반 백성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그런데 이규보가 <규원사화>동명왕편을 쓸 때 이미 12세기인데도 고려의 밥하고 빨래하고 나무 베는 사람들도 마치 어제까지 살아있는 사람을 말하듯 친근하게 이야기하더라고 서문에 기록했다. 우리 민족은 일반 백성도 천손이란 개념에 친근감과 일체감을 갖고 있었다. 또한 우리 민족에 내재되어 있는 영성이 강하다 보니 이상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건국 자체가 강한 민족이 약한 민족을 힘으로 지배하는 보편적인 과정이 아니라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발상에서 나왔다. 그런 영성이 고대에 표출된 것이 홍익인간이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배타적이지 않고 세계주의와도 배치되지 않는다.

우리 고대사부터 독립운동사까지 폭넓게 역사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한국사연구를 시작하려니 수많은 금기가 있었다. 그 금기의 원인을 찾아보니 식민사관과 상당히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리를 추구하고자 학문에 뜻을 품었으니 구애받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우리 고대사를 연구할 때 사료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고구려는 대륙의 지배자였다>는 책을 쓸 때 치우(배달국 14대 환웅)에 대해 1차 사료와 이를 분석한 전문가들의 연구 자료만 가지고 해보겠다고 했다. 중국의 <사기>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사기>의 당나라 이전 3가 주석서, 동북공정이전 중국학자의 연구를 종합해서 치우를 재정립했다. 우리 사료가 부족해도 역사학이 발전하면서 개발된 방법론에 따라 연구하면 된다. 다만 중국인은 상당히 중화중심주의 입장에서 쓰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한·중·일은 아직도 역사전쟁 중이다
일제 식민사관이나 중국 동북공정은 침략사관이다. 21세기에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어려우니 자꾸 역사논리를 가지고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남의 역사를 빼앗고 공격하는 것은 영토침략에 대한 야욕에 있다. 동북공정으로 나온 지도집을 보면 한반도 안으로 한사군을 비정하려고 지명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모순이 생겼다. 원래 진리체계는 복잡하지 않다. 목적을 가지고 왜곡하고 속이려 하니 복잡하고 중언부언하게 된다. 침략주의 역사관을 해체하면 제대로 된 역사가 보이고 동북공정 논리, 식민사관 논리가 무력화 된다. 사실 그대로의 역사를 복원해서 자국민에게 교육하면 동북아평화체제는 거기서부터 수립된다고 본다.

국사교육의 방향에 대해 한마디
역사교육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내가 누구고 어느 과정을 거쳐서 여기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바라보는 것인데 지금의 역사교육은 ‘나’를 상실한 역사교육이다. 함석헌 선생의 말처럼 혼도 없고 뭐도 없는 죽은 뼈다귀 이름만 나열하는 식의 국사교육으로는 개별 사안을 잘 외우는 사람배출하는 데 그친다. 국사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먼저 그 내용을 바로잡아놓고 강화해야 된다. 나와 타자의 관계를 대등한 관계, 상호협력적인 관계로 설정하는 기본 토대 위에서 우리 조상, 뿌리가 무엇인가를 찾아 나의 정체성을 확실히 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나 세계시민의 일원으로서나 부끄러움이 없고 비굴함이 없는 당당한 시민의식을 키우는 역사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학원이 개방적이고 상호공존이 가능한 열린 역사관을 추구하는 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출처] 국학신문 2010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