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28일 제주국학원은 제주대학교 국제교류회관에서 학술대회를 열어 고대에서 근대까지의 천제문화, 제주도의 산신제, 일본의 제천문화를 밝혔다.

(사)제주국학원과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제주연합회는 지난해 11월28일 제주대학교 국제교류회관 대회의실에서 ‘글로벌 문화제주 실현을 위한 역사아카데미’를 공동 개최했다.

이날 김정숙 제주국학원장은 인사말에서 “우리 선조는 해마다 다 함께 모여 ‘천제’를 올리면서 자신 안에 있는 하늘같은 마음을 돌이켜 삶 속에서 사물을 해석하고 사람을 대하고 제도를 만들어왔다.”며 “천지인 정신이 살아있는 제주도가 ‘천제’를 통해서 민족의 잃어버린 정신, 잃어버린 국혼을 부활시키고자 한다.”고 대회의 취지를 밝혔다.

제주역사문화공원 개원을 기념하여 ‘한국의 천제문화와 제주도’를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는 조남호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를 사회로 총 5편의 연구논문이 발표ㆍ토론되었다.

임채우 교수, ‘규원사화’에 고대 천제사기원과 방법 절차 등 상세히 기록

(사)제주국학원과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제주연합회는 지난해 11월28일 제주대학교 국제교류회관 대회의실에서 ‘글로벌 문화제주 실현을 위한 역사아카데미’를 공동 개최했다. 이날 김정숙 제주국학원장은 인사말에서 “우리 선조는 해마다 다 함께 모여 ‘천제’를 올리면서 자신 안에 있는 하늘같은 마음을 돌이켜 삶 속에서 사물을 해석하고 사람을 대하고 제도를 만들어왔다.”며 “천지인 정신이 살아있는 제주도가 ‘천제’를 통해서 민족의 잃어버린 정신, 잃어버린 국혼을 부활시키고자 한다.”고 대회의 취지를 밝혔다.제주역사문화공원 개원을 기념하여 ‘한국의 천제문화와 제주도’를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는 조남호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를 사회로 총 5편의 연구논문이 발표ㆍ토론되었다.

임채우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는 <‘규원사화’를 통해본 고대의 천제사 -한국선도의 천제>에서 “‘규원사화’에는 매년 10월에 백두산 마리산 태백산 등지에서 삼신(三神)에 대한 제천의례를 거행했다는 것과 그 천제사의 기원과 방법 형식 절차 의미 효과 등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이를 토대로 우리 제천의례의 원형을 추정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앞으로 개천절 등에 천제사를 구현하는 중요한 근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미라 교수,  통일신라 이후 제후의 위상으로 한정됨에 따라 천제가 변질

박미라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삼국·고려시대의 제천의례와 문제> 에서 “고려시대에도 제천의례가 거행되었으나 통일신라 이후 스스로를 중국의 번국(藩國)이나 제후의 위상으로 한정함으로써 사전체계가 크게 변질되었다. 단군시대의 천제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부여 영고, 동예 무천이나 고구려 백제의 제천의례도 더 이상 계승되지 못했다. 유교의례로 변질되고 중국화 되면서 고유성을 잃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우리 고유의 천제사를 계승했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욱 교수, 조선후기에 천자만의 의례 담론에 저항하는 세력 등장

이욱 교수(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는 <조선 및 한국 근대의 제천 문화> 에서 “조선시대 국가 제사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의 지배이념이었던 유교는 제천의례를 천자의 예로 간주하고 제후국인 조선으로서는 거행할 수 없는 것이라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후기 ‘하늘에 대한 제의는 국가, 또는 천자만의 의례’라는 담론에 저항하며 동학 등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천제를 올리는 환구단을 복원한 고종은 황실을 중심으로 신민을 통합하고자 했다. 또한 제천의 새로운 양식을 제시한 대종교는 독립과 근대화라는 두 과제 속에서 단군을 중심으로 민족의 통합을 꾀하였다.”고 주장했다.

박성수 교수,  일본 영언산 송회신사 제례절차 에 한국 제천문화 남아있다

박성수 명예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한국과 일본의 제천문화 비교> 에서 “영언산은 일본 북큐슈의 후쿠오카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산에 위치한 마을‘소에다정’의 원래 지명은 ‘소호리’였다. 이는 백제의‘소부리’나 신라의 ‘서라벌’이 변화되어 일본식 지명인 ‘소에다정’으로 바뀐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언산에 있었던 ‘삼천방’은 한국 삼국유사 속 환웅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내려왔다는 기록과 대비해볼 수 있다.”며 “환웅이 개산開山하고 법련이 중흥한 영언산의 수험도는 신라에서 온 화랑도였다. 일본의 수험도사들은 굴속에서 마늘을 먹었고 산행을 할 때 지게를 지었고 추수감사제를 할 때 솟대를 세워 신라에서 배운 옛 풍습을 잊지 않았다.”고 한국의 고대제천문화가 일본으로 건너간 사실을 밝혔다.

김동전 교수,  한라산 산신제가 일본강점기에 폐지되자 제주의병 봉기

김동전 교수(제주대학교)는 <조선시대 제주의례와 한라산신제>에서 “한라산 산신제는 고려시대부터 음력 2월에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 북쪽에 마련된 단에서 국태민안을 비는 뜻으로 드리던 제사였다. 1908년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산천단에서 거행되던 한라산신제를 폐지해 버리자 도민들의 감정이 극도로 고조되어 1909년 제주의병의 효시가 되었다.” 라고 발표했다.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제주연합회는 “우리고유의 천제문화는 외래 종교와 사상에 가려져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이 사실” 이라며 “반만년의 천손문화가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천제를 통하여 면면히 이어져 왔고 제주도의 한라산 산신제와 일본의 제천문화도 새롭게 밝혀지는 학문적 성과를 얻게 되었다.” 라고 개최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