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파형 동검(고조선의 대표적 유물)
단군이 신시개천의 장소를 찾아갈 즈음, 수많은 부족들은 천신제에 참가하기 위해 자신들이 섬기는 토템을 의기양양하게 앞세우며 정예 군사들까지 대동하고 천신족으로 속속 모여든다. 천부인이 사라졌다는 풍문이 나도는 상황에서 만에 하나 그게 사실이라면 새로운 세력 재편을 의미했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들의 입지를 세워 두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중에 가장 위력을 과시한 쪽은 범씨족과 웅씨족이었다.

특히 범씨족의 호한 수장은 이번 천신제가 자신들의 요구에 의해 대대적으로 열린 것처럼 주장하며 천신제를 계기로 모든 제국을 복속시키려는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에 다른 제국들은 이런 범씨족의 위협에 대항하고자 연합전선을 구축한다. 이로써 팽팽한 대치전선이 형성되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이미 권위가 실추된 천신족으로선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이에 거불단 환웅은 자신의 운명이 다했음을 직감한다. 그는 단군의 아비로서 해야 할 일로 수신족의 하백과 웅씨족의 웅지백 수장에게 단군을 부탁한다. 그와 동시에 태고 전설의 실현을 위해 마지막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천신제의 주관을 풍백에게 일임하고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진시켜 나간다. 그리고 천신제 마지막 날에 이르러 천부인이자 하늘의 경을 열어야만 새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선포하고 바위 속에 천부인의 신표를 폐쇄시켜 버리고 신인(神人)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사람 속에 천지가 하나가 되는 것 바로 그것이 세상을 구할 이치

거불단 환웅의 선언 이후, 새 세상의 주인이 되어 제국을 지배하고자 하는 야심가들과 영웅호걸들이 모두 바윗 속 천부인을 꺼내기 위해 도전한다. 그러나 호한 수장을 비롯해 누구 하나 성공하지 못한다. 제국의 중심이 사라진 상황에서 그 천부인의 신표를 누가 보관할 것인가를 놓고 갈등이 치열했다. 힘의 역학관계상 모두의 감시 하에 두면서 다음 천신제에서 새 주인을 맞이하기로 서로 절충하고 자국으로 돌아간다. 이후엔 천부인의 신표를 차지하고자 하는 온갖 모략과 암투가 경쟁적으로 벌어진다.

그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범씨족의 호한 수장이 진행하는 방식이고, 또 하나는 웅씨족의 웅지백이 죽고 난 이후 새로운 수장으로 등극한 웅갈의 방식이었다. 호한 수장은 천부인의 신표를 차지하기 위해 도전했다가 그건 인력으로 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는 강력한 힘으로 다른 제국을 하나씩 지배하여 결국 그 신표 자체를 수중에 넣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하고자 군사를 일당백의 정예군사로 키워나간다. 반면에 웅갈은 천부인이 청동검과 동경, 북(방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그와 비슷한 것을 만든다면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보고 나라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장인들을 대거 모집해서는 비밀리에 그것을 만들어 나간다.

한편 단군은 우여곡절 끝에 신시개천의 지점에 도착해 커다란 깨달음을 얻는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사람 속에 천지가 하나가 되는 것, 바로 그것이 세상을 구할 이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원광의 밝은 빛이 환하게 퍼지면서 순식간에 그의 뇌리를 퍼뜩 깨우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건 그 원광이 사람의 빛이었고, 자기 아버지 거불단 환웅의 모습 같았던 점이다. 여기서 그는 모든 것이 사람에게 달렸다는 이치를 깨달으면서도 아버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웅씨족으로 달려온다.

이윽고 단군은 자신이 떠난 이후 일어났던 소식을 듣게 되고 아울러 새로운 수장으로 등장한 웅갈로부터 “지난날 도적들을 징벌하지 않는 것은 국법을 문란케 한 행위로써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천부인이자 하늘의 경을 여는 일에 협조만 한다면 지난날의 일은 절대 문제 삼지 않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단군은 그 자신 또한 그 방안이 무엇인지 모르는데다가 거기엔 관심이 없는지라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대신 자신이 약속한 대로 도적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거듭 부탁한다. 웅갈은 이후 천부인의 신표를 차지하는 데에 단군이 유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보고 단군의 직속 부장인 소우리 장군 등을 비롯해 휘하 부하들을 회유 포섭해 단군으로 하여금 웅씨족을 떠나라고 요구한다. 이로써 단군은 천신족의 왕자로서 환웅의 뒤도 잇지 못한 상황에서 이제는 웅씨족으로부터도 버림받는 처량한 신세에 놓이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

소설가 정호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