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중앙박물관 고조선실 모습

2005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 개원 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우리나라 역사 연표엔 ‘고조선’이 빠져 있어 중국이 황하문명 하·은·주 시대를 구가하고 서양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활발한 시기에 우리나라는 돌도끼와 고인돌만 있는 원시시대로 표현되었다. 전국의 다른 박물관도 마찬가지였다. 국학원과 국학운동시민연합은 전국 16개 시도에서 잘못된 역사연표의 시정을 당국에 호소했으며 국민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국립중앙박물관은 연표에 ‘B.C. 2333년 고조선 건국’이라고 간단히 표시했다. 이제 우리 상고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커다란 첫 걸음으로 고조선실 개관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11월 3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조선실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에서 고조선이 하나의 전시실로 독립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박물관인 제실박물관이 일반 국민에게 공개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에 이루어진 고조선실의 ‘독립’은 앞으로 박물관의 또 다른 100년을 향한 힘찬 발걸음의 첫 디딤돌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에는 ‘단기檀紀’라는 독자적인 연호가 있다. 단기는 단군기년檀君紀年을 의미하는 것으로 문헌 기록에 따라 단군에 의해 고조선이 세워진 기원전 2333년을 출발점으로 한다.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 최초의 국가, 고조선은 기나긴 한민족의 역사 속 근본적인 뿌리를 상징해 왔다. 고조선의 건국 이야기는 오랜 세월 실제 역사라기보다 한민족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불어 넣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져 왔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지어낸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당시 역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기록상 고조선의 건국연대는 기원전 2333년이나 유적ㆍ유물을 통해 초기 국가의 형성을 엿볼 수 있는 시기는 청동기시대이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되었다. 청동기시대는 농경을 바탕으로 정착이 본격화된 시기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대규모 논ㆍ밭의 조성, 무덤의 규모와 껴묻거리의 차이, 청동기와 옥을 제작한 전문 장인의 출현 등을 통해 제사를 주관하는 지배자가 등장하고 불평등과 계층화가 심화된 사회임을 알 수 있다. 농경을 중시하고 지배자가 하늘의 자손임을 강조하는 천손사상天孫思想,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사회 모습은 고조선의 건국 이야기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고조선실은 고조선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 정치 집단의 성장을 다루고 있다. 고조선실은 크게 ‘고조선의 형성’ ‘기원전 5세기 무렵 고조선의 변화’ ‘기원전 4세기 이후 고조선의 발전’‘고조선의 멸망과 문화의 파급’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고조선의 형성’은 이른 시기 고조선을 대표하는 유물로 추정되는 요령식 동검, 미송리식 토기, 고인돌 등을 통해 고조선의 주요 영역을, ‘고조선의 변화’는 요령식 동검에서 한국식 동검으로의 문화적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고조선의 발전’ 부분에서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통치 조직을 갖추고 질서 유지를 위해 「8가지의 법률」을 두는 등 보다 강성해진 고조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고조선의 멸망과 문화의 파급’ 부분에서는 평양 상리, 황북 황주 흑교리 등 나무곽 무덤을 통해 고조선의 마지막 단계 문화를 추정해보고 멸망 후 남한 지역으로의 문화 파급 부분을 다루고 있다.  

고조선 관련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전傳 황남 신천ㆍ전傳 평남 성천 요령식 동검, 평북 위원 용연동 철기 유물 등 일본강점기 때 수집하였던 북한 지역 출토 유물들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으며 같은 시기의 남한 지역 유물과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한편, 원삼국실은 부여ㆍ삼한실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최근 역사학ㆍ고고학적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부여, 동예, 옥저 등에 대한 전시는 내용이 보완되었다. 이번 전시 개편을 통해 우리 민족이 한반도만이 아니라 보다 넓은 지역을 주요 무대로 집단을 이루고, 고대 국가로 성장해 갔던 웅대한 역사적 발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