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복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 (MBC 편성국 저작권부 부장)

무한경쟁시대라 일컫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문화는 경쟁의 핵심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시아를 비롯해 유럽, 아프리카 등 80여 개 국에 드라마를 수출하고 있다. 특히 처음 중국에 수출한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50여 년간의 단절을 단숨에 채워주는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이다. 물론 중국에 수출하기까지는 도전할 때마다 번번이 실패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 드라마가 재방영할 정도의 인기를 얻고 나서는 연속해서 한국 드라마들이 수출되었다.

최근 들어 드라마 ‘대장금’은 자국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하는 중국정부가 시청시간을 늦추는 제동을 걸 정도이다. 홍콩에서는 ‘포청천’을 돌파, 가장 높은 시청률로 교과서에 소개되었다. 이란은 시청률 90%를 기록했으며 대만은 재방영을 거듭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짐바브웨는 ‘대장금’ 특별방송 퀴즈 프로그램에 전 국민이 응모하는 이변을 낳고 일본도 ‘겨울연가’를 제치고 최고의 기록을 세웠음은 물론이다.

한류가 세계를 강타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문화의 독주에 대한 반작용으로, 신선함을 추구하며 지역적으로 발전해 갈 시점에 아시아에서 문화의 유사성을 살린 우리 드라마가 인기를 끌며 세계시장의 틈새를 잘 공략해서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대부분의 예술인들은 일찌감치 문화산업에 투자한 할리우드로 모여들었다.

 이로써 문화기술이 축적된 할리우드는 대규모의 영화를 제작해 세계를 제패해 왔다. 우리나라가 1년 동안 피땀 흘리며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보다도 미국은 단 한 편의 영화로 그 몇 배를 벌어들였던 것이다. 그 문화시장에서 우리는 2%를 석권했을 뿐이고 우리보다 열 배를 투자하는 일본은 8%다.

일본은 많은 제작비 투입에도 아시아에서는 뿌리 깊은 반일감정으로 약세인 반면, 13억의 중국은 인해전술로 파고든다. 이런 상황에서 아인슈타인의 공식(E=mc²)은 문화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에너지파워는 덩치와 속도의 빠르기가 승부다. 좁쌀이 굴러가는 거리와 호박이 한 바퀴 구르는 거리에는 차이가 크듯 규모(m)에서 밀리는 우리는 속도(c)로 승부해야 한다.

비록 주변 열강 속에서 영토가 작은 대한민국이지만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문화상품은 아이디어를 잘 짜서 맞추면 승산이 있기 때문에 문화영토는 얼마든지 넓힐 수 있다. 또 우리에게 기량도 충분하다.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기질적 특징, 풍류가 있다. 정이 깊고 흥이 많은 고유의 끼, 이런 기본기를 갖추었으니 5천 년 역사상 모처럼 맞은 기회에 그 기질을 살려 탁월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문화콘텐츠 산업은 미래의 식량

음식과 방송콘텐츠는 맥락이 같다. 일단 음식이 맛있어야 되듯 드라마는 재미가 생명이다. 수출시 원재료의 추가비용이 들지 않고 9할 이상이 마진인 방송콘텐츠는 탄탄한 내용과 연기, 연출력, 영상미와 음악, 적정제작비가 품질을 좌우한다. 외국은 총 제작비에서 출연료가 대개 1할 안팎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6할이 넘는다. 때론 80~100%의 과도한 출연료로 제 살 깎아 먹는 자멸을 초래하고 문화시장과 동떨어져 홀로 진화하거나 일본시장만을 겨냥한 대작에 심취하여 실패를 자초하고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선호하는 대상은 로맨틱하고 코미디적인 내용이다.

앞으로 우리는 내용과 연기력, 영상미, 음악이 잘 매치되는 콘텐츠로 한류를 계속 주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영국 BBC의 ‘텔레토비’와 가수 ‘비틀즈’가 영국을 먹여 살렸듯, 우리나라도 연 4천억 달러의 수출요인 중 70~80%가 한류라고 할 정도로 문화가 기여하는바가 크기 때문이다. 천재적 창의력에 의한 문화 20%가 80%를 먹여 살리는 문화경쟁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세계는 문화전쟁 중이다.

영국은 이미 콘텐츠산업의 중요성을 경험해 ‘떠오르는 제2의 대영제국’을 꿈꾸고 있다. 미국도 군수산업과 함께 2대 핵심 산업으로 엔터테인먼트산업에 치중하고 일본 역시 총리 산하에 문화산업을 육성하며 프랑스, 스페인 등 대부분의 나라가 국가적으로 콘텐츠산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문화산업의 흐름을 리드할 전문 인력과 조직을 정부 차원에서 육성해야 한다.

오늘의 한류는 세계시장에서 베이스캠프에 도달한 것뿐이다. 고부가 가치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문화시장에서의 고속성장은 어떻게 좋은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다. 죽느냐 사느냐를 선택하는 문화전쟁에서 긴 호흡의 전략적인 두뇌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