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과연 행복한가.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언제쯤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옛사람들은 한결같이 행복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요 마음에 있는 것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도 어떤 물질적 충족으로도 채울 수 없는 정신의 미묘함과 위대함에 대한 증언이요, 잃어버린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할 것이다.

세계의 모든 문화 속에는 대부분 이 같은 조상 대대로의 가르침들이 기록되어 있다. 한국의 민족문화 역시, 선조들의 위대한 교훈을 세세로 전하여 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삶과 생활 속에서 가르쳐 온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는 바로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의 세 경전이다.

지금 학계에서는 이들의 진위 여부를 가지고 왈가왈부 말이 많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편견과 선입관 그리고 근대 실증주의 학문이 행한 잘못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고루한 지식인들의 보수적 판단일 뿐이다.  이는 역사와 철학, 종교와 문학을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부분적인 학문의 기득권에 매달린 속 좁은 사람들의 오해다. 실로 ‘천부경’은 압축된 언어로 한민족의 정신적 사유체계와 그 형이상학을 군더더기 없이 드러낸 최선의 지침서이자 상징적 그림이기 때문이다.

천부경은 81자의 글과 수리(數理), 그리고 가로 세로 9:9의 구조를 통해, 우주 만물과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를 드러내며,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순환하고 있음을 가르친다. 일찍이 노자 또한 ‘反者道之動(반자도지동)’이라 한 바, 이 역시 천부경의 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사실 천부경 81자의 내용은 많은 분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못하다. 그러나 <한단고기>의 기사를 따르면, 이는 역사적으로 삼한(三韓)시절 일원론적 우주관을 토대로 三一의 세계관을 흡수한 ‘수두교 蘇塗敎’의 주 경전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그 해석은 그야말로 분분하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천부경>이 분명한 정도의 철학적 존재론과 인식론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대체로 승인되고 있는 내용은 <천부경>이 일원론적 존재론과 동시에 근원 一者에서 출발하는 한철학적 사고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로부터 <천부경>은 사실상 한민족문화의 다양성과 종합성 그리고 그 통일성을 기초하는 한철학적인 세계인식의 근거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천부경은 압축된 언어로 한민족의 정신세계를 그린 상징적 그림

신선낭가의 주된 흐름 역시 이 같은 가르침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곧 한국 선도(仙道)의 맥은 신라의 화랑과 고구려의 조의선인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세상과 더불어 진화를 꿈꾼 선랑(仙郞)의 전통을 남겼으며 또한 홍익(弘益)과 이화(理化)의 원칙을 세운 바 있다. 대개 중국 도교의 신선은 초인이자 세계의 방관자로서 세속과 단절한 채 존재한 반면, 한국의 선랑은 세상 속에서 인간과 더불어 세계의 변혁을 꿈꾸었다. 그 결과, 한국의 仙은 모든 인간이 神, 즉 하늘과 같아서(神人合一), 이러한 경지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오직 자기 자신의 자각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사유 체계를 성립시켰던 것이다.

<천부경>에는 이미 太陽仰明人中天地一(태양앙명인중천지일)이라 하여 “사람의 본래 마음은 지극히 밝은 것이라, 오직 이를 우러러 밝히면 그 가운데 천지가 하나 됨”을 알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이라, “이루고 나면 고요히 하나로 돌아간다.”하고 그 글을 마친다. 곧 <천부경>은 상징을 통해, 하늘과 사람 즉 一과 三의 운동에서, 사람과 하늘 즉 三과 一의 돌아감으로 세계의 운동과 인생의 의미를 정리한 것이다.( 천부경에서 하늘은 一, 땅은 二, 사람은 三으로 표현된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의 정신세계 속에는 동학의 人乃天(인내천) 그리고 대종교의 執一含三(집일함삼) 및 會三歸一(회삼귀일)의 철학이 홍암 나철 이래로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가르침 역시 <천부경>의 내용과 그리 크게 달라 보이지 않으며, 어떤 식으로든 상호연결의 고리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

아무쪼록 인간의 삶이란 백 마디 이론을 떠드는 것보다 한 번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천부경을 언급한 <소도경전본훈>에서는 간단히 답한다. 인생이란 결국 대속함과 참됨으로 돌아감이요, 널리 베풂을 실천함이다. 이것이 홍익인간(弘益人間),재세이화(在世理化)의 오직 한 길이었다고 한다면, 지나치다 하겠는가. 예로부터 한민족문화의 특성은 “삼신(三神)에 돌아가 하늘과 교통하며, 또한 홍익(弘益)에 순응하여 거짓을 말하지 않고, 서로 의지하면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목적이 있다.”하였으니, 이것이 행해지던 시절이 곧 신시(神市), 태평(太平)의 세상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