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호일 소설 단군왕검 저자

역사의 한 사건은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역사해석을 발생시킨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옛날의 한 사건으로 규정하여 역사공부는 단지 그 역사를 파악하는 것으로 종결짓는다. 하지만, 역사는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다. 사건 당시에는 별로 큰 의미 없던 사건이 시대에 따라 큰 영향을 미치거나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역사의 한 사건은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역사해석을 발생시킨다.우리는 흔히 역사를 옛날의 한 사건으로 규정하여 역사공부는 단지 그 역사를 파악하는 것으로 종결짓는다. 하지만, 역사는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다. 사건 당시에는 별로 큰 의미 없던 사건이 시대에 따라 큰 영향을 미치거나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고려의 대몽 항쟁기에 단군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 한 움직임이나 일제 침략 시기에 신채호 선생이 묘청의 난을 두고 ‘조선 일천 년이래 최대사건’으로 그 의미를 크게 부각시킨 것은 바로 지난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여 그 시대의 삶에 활력소를 불어넣은 사례들이다. 이렇게 역사는 시대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개입되는 현실에서 조명되어 살아 있는 역사가 되는 것이다. 만약 재조명하지 못하고 현실의 삶을 개척할 수 없는 역사라면 그 역사는 이미 죽은 역사이다.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역사해석을 발생시킨다.우리는 흔히 역사를 옛날의 한 사건으로 규정하여 역사공부는 단지 그 역사를 파악하는 것으로 종결짓는다. 하지만, 역사는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다. 사건 당시에는 별로 큰 의미 없던 사건이 시대에 따라 큰 영향을 미치거나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이다.고려의 대몽 항쟁기에 단군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 한 움직임이나 일제 침략 시기에 신채호 선생이 묘청의 난을 두고 ‘조선 일천 년이래 최대사건’으로 그 의미를 크게 부각시킨 것은 바로 지난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여 그 시대의 삶에 활력소를 불어넣은 사례들이다. 이렇게 역사는 시대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개입되는 현실에서 조명되어 살아 있는 역사가 되는 것이다. 만약 재조명하지 못하고 현실의 삶을 개척할 수 없는 역사라면 그 역사는 이미 죽은 역사이다.

소설‘단군왕검’을 쓰게 된 동기도 현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신화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조 단군조선을 파헤쳐 살아있는 역사로 거듭나기 위한 작업이었다. 우리가 단군을 한낱 신화로 치부하고 있지만 삼국유사는 인간이 원시시대로부터 어떤 인식 과정과 실천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서 자각했는가를 명확하게 알리고 있다.

당시 최고 권력자가 가장 힘센 동물을 상징하는 토템문화시대에서 하늘 신인 환인으로부터 환웅을 이어받아 인간사 첫출발을 밝히는 단군의 정당성은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스스로 하늘과 하나임을 자각하여 수많은 만물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천신족으로서의 권리를 실현하는 삼국유사의 단군은 곰과 호랑이를 대비해서 아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역사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풍백, 운사, 우사 등의 관리가 인간의 360여 가지를 주관했다.”는 것은 집단에 대한 정체성을 깨달아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기반이 탄탄했음을 유감없이 보여준 귀한 자료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민족의 뿌리요, 시원인 단군조선 건국이 애매모호하여 우리 민족사 계통의 흐름이 흐려져 있다. 고인돌 문화가 단군조선시대의 유물임은 세계가 인정하는 바이다. 실제로도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의 고인돌이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으로 기원전 2500년경으로 확인되었다. 이런 결과는 역사를 재조명함에 있어서 근거를 재는 잣대로서 단군조선이 서술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어정쩡한 건국사로 인해 부여와 고구려, 고구려와 백제 등 같은 민족들의 다툼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늘의 현실에서도 역사의 정당성이 투영되지 못하고 있다.

자국의 존엄은 자국민의 힘으로 세울 수 있을 뿐이다.

자신의 존엄은 자신이 세우는 것이지 어느 누가 대신 세워주지 않는다.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지키지 못할 때 주변국들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왜곡과 침략을 정당화한다. 우리 역사에서 천하관(天下觀)을 분명하게 세운 나라는 고구려다.

광개토태왕은 단지 국토를 넓힌 영웅이 아니라 단군조선의 땅을 회복하여 자국의 존엄을 되찾은 태왕이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비문의 1,775자 중에 무려 637자가 천손의식이 영원토록 번영하고 영광될 수 있도록 토대를 쌓은 업적과 치적을 담은 역사기록이다.

이렇게 단군조선에 대한 계승의식이 뚜렷한 광개토호태왕이 존재했던 고구려를 두고 중국은 자신들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고 또 일본은 그 비문의 내용 일부를 왜곡하여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도구로 이용했던 것이다.

지금도 중국은 우리 조상인 치우천왕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모시고 길림성 왕청현에 웅녀를 상징하는 백의신녀(白衣神女)상을 세워 우리 고대사를 편입하려하고 있다. 우리 민족사를 우리 입장에서 재조명하지 못한 것을 기화로 우리는 민족사를 도둑질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날 일제가 그토록 단군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오늘의 복잡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의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역사의 재조명이다. 사회와 역사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개인의 개성이 발휘되고 집단의 권리가 보장되며 나라와 민족의 존엄도 한층 높아진다. 단군조선건국의 재조명도 바로 이런 일환의 하나다. 우리 입장에서 우리 역사를 재조명하는 작업은 우리 민족의 존엄을 빛낼 수 있는 길이다. 더욱 다방면으로 진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