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책상 앞에서 하는 게 공부인 줄로만 알았는데 밖으로 나와 좋은 어른들을 만나고 친구들과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는 경험을 하면서 더 의미있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조이현 학생(벤자민인성영재학교)은 자신의 첫 도전 프로젝트로 지난 3월 27일부터 4월 9일까지 13박 14일간 270km를 걸으며 배우는 '퇴계 선생 귀향길 걷기'에 참여했다. 사진 본인 제공.
조이현 학생(벤자민인성영재학교)은 자신의 첫 도전 프로젝트로 지난 3월 27일부터 4월 9일까지 13박 14일간 270km를 걸으며 배우는 '퇴계 선생 귀향길 걷기'에 참여했다. 사진 본인 제공.

올해 갭이어형 대안고등학교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에 진학해 자신만의 꿈을 찾기 위한 도전에 나선 조이현(16세) 학생은 자신의 첫 프로젝트로 ‘퇴계선생 귀향길 걷기’ 행사에 참여했다.

행사는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이 주최해 3월 27일부터 4월 9일까지 서울 경복궁을 출발해 경북 안동 도산서원까지 270km를 걸으며 곳곳에 있는 이황 선생의 흔적을 밟아가는 여정이다. 벤자민학교 학생들과 용인 헌산중학교 학생들, 초등학생들과 함께 도산서원 관련 학자와 방송국 기자, 주요 유적지 지자체장들이 참여해 걸었다.

벤자민학교 경기학습관 친구들과 함께 떠난 이 대장정에서 조이현 학생은 앞으로 자신이 걸어갈 길을 물었다고 한다.

조이현 학생(참가자 오른쪽 끝)은 걷는 도중 옛 선비의 모습을 한 어른들과의 대화에서 책상 앞 공부보다 더 깊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 본인 제공.
조이현 학생(참가자 오른쪽 끝)은 걷는 도중 옛 선비의 모습을 한 어른들과의 대화에서 책상 앞 공부보다 더 깊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 본인 제공.

다음은 조이현 학생이 기록한 13박 14일 대장정 일지이다.

중학교 교사인 엄마가 “짜인 틀에 갇힌 학교생활보다 다양한 경험과 체험활동을 하면서 네 가치를 알고 자신을 속속들이 깊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했을 때는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이왕 일반 학교와 다른 벤자민학교에 왔으니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 보자’는 마음과 '평소 운동을 싫어하는 나의 활동량을 늘리고 다이어트를 해보자'는 게 이번 행사에 참여 한 동기였다. 사실 부모님과 오랜 시간 떨어진다는 게 두렵기도 했다.

다섯 명의 벤자민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서울 경복궁 사정전에서 열린 개막식에 참석하니 생각보다 많은 카메라와 참가자들, 심지어 서울시장도 내 앞에 앉아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경복궁 사정전에서 열린 '퇴계선생 귀향길 걷기' 개막식. 사진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제공.
경복궁 사정전에서 열린 '퇴계선생 귀향길 걷기' 개막식. 사진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제공.

개막식이 끝나고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됐다. 난생 처음 보는 흰 도포를 입은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걸어갔다. 옛날 선비의 모습을 실제로 보는 것 같아 신기했다. 국제퇴계학회 회장을 맡고 계신 이광호 회장님과 대화를 나눴다. 이 회장님은 “퇴계 선생님은 진정한 마음을 다해서 공부했고, 공부한 것을 실천하기까지 했다”고 하셨다.

내가 했던 공부는 ‘단순한 열심히’일뿐 진심을 담아서 했던 적이 있던가? 오랜 시간 공부하고 문제집 페이지 수를 빠르게 넘기는 것은 진정한 공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한강에서 이광호 국제퇴계학회 회장과 함께 걸은 조이현 학생. 사진 본인 제공.
남한강에서 이광호 국제퇴계학회 회장과 함께 걸은 조이현 학생. 사진 본인 제공.

3일째 되던 날부터 다리가 아파 왔다. 아직 한계까지는 아니지만 체력에 한계가 온다면 그걸 뛰어넘어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다. 점점 빠르게 체력이 소진되었지만, 친구들과 서로 의지하며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다리를 이끌고 매일 매일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평소 걷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짧은 거리도 버스를 타고 다니기 일쑤였고, 무언가를 이토록 힘들게 해본 적이 없는 내게 무척 새롭고 뿌듯한 경험이었다.

힘든 과정을 이겨내며 함께 한 친구들과 나눈 우정은 꽉 짜인 시간표대로 진행되는 교실 수업에서 나눈 우정과 확실히 달랐다. 서로 아주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좋은 순간, 힘든 순간을 모두 나누는 과정에서 마치 가족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여행에서 또 다른 할아버지와 부모님, 언니, 오빠, 동생들을 얻었다.

(왼쪽) 충주 목벌동 걷기 (오른쪽) 영주 이산서원에서 함께한 친구들. 사진 본인 제공.
(왼쪽) 충주 목벌동 걷기 (오른쪽) 영주 이산서원에서 함께한 친구들. 사진 본인 제공.

평소 앵커나 기자라는 직업 분야에 관심이 있던 나는 선생님의 소개로 연합뉴스 부국장을 지낸 홍덕화 기자님과 긴 면담을 할 기회를 가졌다. 홍덕화 기자는 내게 과제 두 가지를 내주었는데 같은 길을 걷고 계신 어른 한 분을 인터뷰하는 것, 그리고 여정 중간중간 있는 면담들을 기사로 써보라는 것이었다.

하루 일정이 끝난 후 숙소에 도착해 핸드폰을 보거나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는 대신에 과제를 수행하며 시간을 보낸 탓에 2주간의 여행이 더욱 충실해졌다. 특히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김병일 원장님을 인터뷰하려고 좋은 질문을 생각해내는 과정에서 많은 배움을 얻었다.

김병원 원장께는 두 가지 질문을 했다. 첫 질문은 “이번 행사에 학생 참여자가 많은데 학생들은 이 행사를 통해서 어떤 것에 대해 배울 수 있을까?”였다. 원장님은 “우리 학생들이 퇴계 선생의 훌륭한 정신을 배웠으면 한다. 예를 들어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고 배운 것을 반드시 실천하셨다. 그 실천이 막연한 실천이 아니라 바로 부모님에 대한 효도, 누구보다도 형제간 우애, 그리고 어른을 존경하고 아랫사람 사랑하는 배려와 사랑이었다. 우리 학생들이 퇴계 선생님 귀향길에서 깊이 공감하고 실천했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김병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과 인터뷰 후 친구들과 함께한 조이현 학생. 사진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제공.
김병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과 인터뷰 후 친구들과 함께한 조이현 학생. 사진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제공.

두 번째 질문은 “귀향길 행사에 참가한 학생들을 보면서 느끼거나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지”였다. 원장님은 “먼저 13박 14일이라는 일정에 수업을 대신해 참가한 학생들에게 감사하다. 한 사흘, 나흘 지나면 지날수록 질서를 지키고 하나의 공동체라는 인식으로 몸과 마음을 모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이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서도 퇴계 선생님의 선한 영향을 받아서 훨씬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라며 빙긋이 웃으셨다.

세상에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소원이던 퇴계 선생님을 기리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인 만큼, 이곳에 와서 좋은 어른들을 참 많이 뵈었다. 퇴계 선생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도 재밌었지만, 같이 걷는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매우 유익하고 좋았다.

신기하고 새로운 것, 욕심낼 만한 것들이 계속 등장하는 요즘일수록 나도 도덕적인 가치와 인성이 근본이고 우선임을 잊지 말고, 타인을 도울 줄 아는 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

행사의 폐막식 무대에 올라가서 소감을 발표했다. 수많은 사람이 나만을 쳐다보니 말할 수 없이 떨렸지만, 다행히 준비한 대로 발표를 잘 마칠 수 있었다. 2주 동안 함께 걸었던 분들과 아쉬운 마음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받은 명함들을 바라보니 그제야 긴 대장정이 끝난 게 실감났다.

조이현 학생은 행사 폐막식에서 기행문 쓰기 부문 대상(경북도지사상)을 수상했다. 사진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조이현 학생은 행사 폐막식에서 기행문 쓰기 부문 대상(경북도지사상)을 수상했다. 사진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기행문 쓰기에서 받은 대상은 인자한 어른들께서 나에게 주는 응원같다. 상을 준 어른들께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13박 14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 한 모든 분께 감사하다. 퇴계 선생 귀향길 걷기 행사는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제 용기를 내 5월 11일부터 10박 11일간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처럼 계획된 행사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벤자민학교 친구끼리 일정을 짜고 숙박을 예약하고 각자 역할을 나눠 진행할 것이다. 세상 밖으로 나가 낯선 사람들, 낯선 환경과 상황을 마주할 생각에 떨리는 마음, 설레는 마음이 동시에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