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고어여서 나오지 않는 글자가 있음

지난 8월 6일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이 그들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로 한글을 채택하였다는 뉴스는 많은 사람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필자에겐 그 뉴스의 이면에 훈훈한 덕담이 있어 더욱 그러했다. 무엇보다 1933년 10월 『한글 맞춤법 통일안』 이후 사라졌던 우리의 옛 글자‘순경음 비읍(ㅸ)’의 부활이 제일 먼저 눈에 띄어 반갑기 그지없었다. 왜냐하면, 외국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행의 한글 체계로는 외래어를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기에 한계를 깊이 통감하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였다.

우선 몇 가지 예와 그 해결 방안을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어나 불어의 [b, v]를‘ㅂ’으로, [p, f]를‘ㅍ’으로, [dz, z]를‘ㅈ’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이들 소리의 구분은 물론 발음에도 애를 먹는다. 그래서 [b, v]는 /ㅂ, ㅸ/으로, [p, f]는 /ㅍ, ㆄ/로, [dz, z]는 /ㅈ, ㅿ(반치음)/로 표기할 수 있다.

둘째 기업이름‘KOLON’을‘코오롱’으로 발음하는 것과 같이 설측음 /l(엘)/을 탄설음 /      /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말에서조차 설측음 (종성 /ㄹ[l])과 탄설음(두음법칙을 제외한 초성의 /ㄹ[   ]/)을 구분하지 못하고 급기야 발음조차 굳어져 발음교정에 애를 먹는다. 때문에 모든 외국어 닿소리에서 가장 발음하기 어려운 유음(流音) [   , r, R] 등의 소리를 내는데 매우 힘들다. 그 이유가 바로 모든 유음을 오로지 ‘ㄹ’로 표기하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탄설음과 외국어의 설전음은 현행의 [ㄹ]로, 한국어의 종성 설측음과 영어, 불어의 설측음 ‘l’은 /    /로 반드시 표기해야 한다. 영어의 r[r]은 /ㄹㅇ/로, 프랑스어의 목젖 떨음소리 R[R]은 /    /      로 표기한다. 예로 영어의 long은 /롱/이 아닌 [     ]으로, 불어의 La Maison은 /라 매종/이 아닌 [     매      ]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셋째, 초성에서의 병서법(    , ㅼ, ㅴ, ㅵ)과 연서법(     , ㅱ, ㅸ, ㅹ, ㆄ), 중성에서의 병서법(     ,     ,     , ㆎ)과 연서법(     ,      ,      ,      ,      ,      )을 사용하지 않아 외국어의 겹자음들(blue, strike)의 발음을 각각 하나의 음절로 늘려 발음하게 되면서 한글의 명확한 음절구분은 물론 외국어의 음절 구분까지 혼동하게 한다. 만일 초-중-종성 모두에 병서와 연서를 할 수 있는 세벌식 키를 마련해 둔다면 영어, 중국어, 아울러 아랍어 표기에도 매우 유용할 것이다.

훈민정음은 한민족의 오랜 전통과 문화, 과학성, 그리고 철학을 담아 창제되었다. 우리말의 표기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중국어와 우리식 한자음의 표기를 위해서도 만들었음은 우리 모두 익히 아는 바이다. 따라서 훈민정음 창제 시의 글자 만듦의 정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위에서처럼 모든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지구상에서 문자가 없음으로써 고유 언어와 문화를 잃어가는 고통을 받는 소수민족의 언어를 보호할 수 있다. 예의 <찌아찌아 언어>를 바탕으로 좀 더 사용하기 편리한 문자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예전에 없애 버린‘아래 아(     )[    ]’가 휴대전화기의 천지인 타법으로 다시 부활한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지구촌이라는 말에 걸맞게, 세계 곳곳의 소수민족과 문화 그리고 그들의 언어 또한 인류 공동의 정신적, 물질적 문화유산인 만큼 그 언어의 소멸은 우리 몸의 일부를 잃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함께 나눔>이면 될 것을, 여기에 <한글의 세계화>니, <한류>니, <문명전파>니, 마치 문화제국주의를 꿈꾸는 듯한 경거망동은 한글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국가브랜드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될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의 정신인“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쉬이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라는 어진 세종 임금과 집현전 학자들의 정신을 배반하는 일은 아닐까 한글날을 앞둔 우리는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야 할 일이다. 아울러 오랜 외국어 교육 현장에서의 경험으로 볼 때 모국어를 소홀히 하고서 외국어를 잘하는 예는 지금껏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재원 | 건국대 EU문화정보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