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환수한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 경자》 중 일부. 24절기 일시를 표시한 부분(오른쪽)과 연신방위 지도부분(왼쪽). [사진 문화재청]
일본에서 환수한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 '경자'》 중 일부. 24절기 일시를 표시한 부분(오른쪽)과 연신방위 지도부분(왼쪽). [사진 문화재청]

임진왜란 당시 군사전략가로 활약하며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한 서애 류성룡 선생의 손때가 뭍은 400여 년 전 ‘대통력’이 일본에서 환수되어 돌아왔다.

대통력은 지금의 달력에 해당되는 조선의 책력(冊曆)으로, 이번 대통력에는 달력에 일정을 메모하듯 류성룡 선생이 자필로 메모를 한 자료이다.

공식 명칭은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庚子>)》이며, 문화재청은 11월 24일 오전 10시 30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에 첫 공개했다.

해당 유물은 일본에서 환수한 국외소재문화재이다. 일본에서 개인이 현지 경매를 통해 소장한 것을 확인한 김문경 교토대학 명예교수가 제보하여 그 존재가 알려졌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수차례 면밀한 조사 후 지난 9월 국내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이후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이 표지 및 내용의 초서로 된 글씨를 읽기 쉬운 필체로 바꾸는 탈초 및 번역을 해 이번에 공개하게 된 것이다.

유물은 1599년 금속활자본으로 인쇄되어 1600년 경자년에 쓰였으며, 크기는 전체 38×20cm이다. 대통력에는 자신의 일정이나 감상을 적는데 해당 유물의 여백에 먹물로 쓴 묵서, 붉은 색 주서로 해당일의 날씨와 일정, 약속, 병세와 처방 등이 기록되어 있다.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 경자 표지. [사진 문화재청]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 경자 표지. [사진 문화재청]

특히, 유물의 가철(假綴)된 표지에는 경자년보다 2년 앞선 1598년 이순신 장군이 부하 장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출전해 전쟁을 독려하다 탄환을 맞고 전사한 상황을 묘사한 기록도 담겨 특별한 가치가 돋보인다.

“(이순신 장군이) 전쟁하는 날에 직접 시석(矢石)을 무릅쓰자, 부장들이 진두지휘하는 것을 만류하여 말하기를 ‘대장께서 스스로 겨벼이 하시면 안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듣지 않고) 직접 출전하여 전쟁을 독려하다가 이윽고 날아온 탄환을 맞고 전사하였다. 아아! …”

이외에도 류성룡 선생의 「서애선생연보(西厓先生年譜)」 에도 다뤄지지 않은 내용이 포함되었고, 국내에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 경자년(1600년) 대통력이란 점, 임진왜란 시 포로가 되어 일본에 압송되었던 강항(1567~1598)의 귀국 등 경자년의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물의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었다.

문화재청은 유물에 기재된 필적과 언급되는 인물, 사건 등 정보를 기반으로 서애 류성룡(1542~1607)의 문집 「서애집」 중 류성룡의 연대기에 기록된 「서애선생연보」와 대조했다. 그 결과 서애 류성룡 선생이 가까이 두고 자주 이용하여 손때가 뭍은 수택본(手澤本)으로 추정했다.

문화재청은 “류성룡 선생의 종손가 소장 자료들인 보물 「유성룡 종가 문적」에도 빠져있던 새로운 자료를 발굴해 찾아왔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라고 밝혔다.

향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안전하게 보존 관리하면서 조선시대 과학문화재와 함께 류성룡 관련 원천 자료로서 연구 및 전시 등 폭넓게 활용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