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키델릭룸 2-1”, 2020, 캔버스에 유채, 30 x 30 cm. [사진 신진식]
“사이키델릭룸 2-1”, 2020, 캔버스에 유채, 30 x 30 cm. [사진 신진식]

작가 신진식의 개인전 《다져진 복잡서사(複雜敍事)》가 11월 15일 서울시 공덕동 마포문화원 갤러리에서 개막했다.

이 전시는 지난 9월부터 개최한 작가의 2022년 네 번째 개인전으로 모색-폭발-안정-숙성의 4단계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개인전이다. 신진식 작가의 2022년 개인전은 2013년 공평갤러리에서 열었던 개인전 《실(絲)》 이후 12년 만이다. 올해 개인전은 9월 한 달간 공간서울에서 열렸던 《치환(置換)된 차원(次元)》을 시작으로 개인전 《비(非) 물리적 세계》를 10월 11일부터 17일까지 7일간 서울 종로구 안국동 갤러리 너트에서 열었고 《내게 새로운 경험을》을 10월 7일부터 15일까지 서울 마포구 마포문화원 갤러리에서 개최했다.

작가는 6~7미터 크기의 회화 설치, 1,000호가 넘는 대작 5점과 캔버스 100호 크기의 작품 19개를 선보였던 지난 개인전들과는 대조적으로 《다져진 복잡서사(複雜敍事)》에서는 1호에서 30호에 이르는 유화 소품 30점을 선보였다.

“사악한 이웃 8”, 2020, 캔버스 위에 유채, 45.5 x 53 cm   [사진 신진식]
“사악한 이웃 8”, 2020, 캔버스 위에 유채, 45.5 x 53 cm [사진 신진식]

또한 이 전시는 그림의 내용도 전작들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전작들이 넘쳐나는 컬러에 폭풍 같은 스트로크로 이루어진 감정의 토함이었다면 이번에 선보인 두 개의 연작 <사이키델릭 룸>과 <사악한 이웃>은 단순화된 단색의 형태가 특징이다. 전시 제목 《다져진 복잡서사》가 의미하듯 폭발적이었던 복잡서사가 다져지고 압축된 형태로 변모했다.

이를 신진식 작가는 돌이 상류에서 하류로 굴러내려 오며 마모되고 다져져 단단한 차돌멩이가 되듯 수년간의 모색 과정 끝에 다다른 사색의 덩어리이자 단순화된 조형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단순한 형태 또한 전작들에서 보여준 다양한 시각적 상상력의 압축체라 보는 각도나 관람자의 심상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이야기로 변모한다.

밋밋해 보이는 단색 면들도 자세히 보면 아직 강하고 격정이 남아있는 붓질이 켜를 이룬다. 사물을 만들 듯, 붓질하는 행위 자체를 즐기면서도 비정형적 서사를 담아내는 작가의 창작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맨해튼 71가와 암스텔담 애비뉴”, 2008, 버려진 종이박스 위에 유채, 135.89 x 97.79 cm  [사진 신진식]
“맨해튼 71가와 암스텔담 애비뉴”, 2008, 버려진 종이박스 위에 유채, 135.89 x 97.79 cm [사진 신진식]

압축된 것은 형태만이 아니다. 세상을 향한 작가의 발언도 단순하고 명쾌해졌다.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침해받지 말아야 할 개인의 기본권을 주제로 작가는 지난 20여 년간 다양한 형태로 사회적 발언을 꾸준히 해왔다. 이 전시에서 선보인 연작 <사악한 이웃>은 요즘의 여러 뉴스와 맞물려 더욱 그 의미를 반추하게 한다.

이웃 1-2”, 2009, 피자박스 위에 유채, 300 x 250 cm김진혜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이웃》 중의 한쪽 벽면 그림   [사진 신진식]
이웃 1-2”, 2009, 피자박스 위에 유채, 300 x 250 cm김진혜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이웃》 중의 한쪽 벽면 그림 [사진 신진식]

 

작가는 2007년 뉴욕의 개인전에서부터 회화 작업 <이웃> 시리즈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웃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들, 이를테면 출퇴근하고 일하고 생활하고 즐기며 사는 외양을 버려진 종이상자 위에 관조하듯 그려냈다. 2009년 서울의 김진혜갤러리에서 선보인 《이웃》에 이르러서는 인사동 거리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이웃들, 데이트 중인 청춘, 공부하는 학생들, 해맑게 뛰노는 아이들, 거리를 관리하는 공무원들, 통제하거나 이웃을 돕는 경찰들, 잠시 이웃이 된 외국인 관광객들을 전시장 전체를 감싼 피자 상자 위에 그리며 이웃의 삶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간다.

“현장검증 3”, 2010, 종이박스 위에 유채, 147.5 × 114.5 cm  [사진 신진식]
“현장검증 3”, 2010, 종이박스 위에 유채, 147.5 × 114.5 cm [사진 신진식]
“남용되는 금기산업 8”, 2011, 캔버스에 유채, 454.6cm x 181.8cm [사진 신진식]
“남용되는 금기산업 8”, 2011, 캔버스에 유채, 454.6cm x 181.8cm [사진 신진식]

2010년 한전아트센터 갤러리의 《수상한 이웃》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으로 부당하게 침해받는 소외자들의 권리와 사회적 정의 지표를 고민한다. 2011년 한전아트센터 갤러리의 《남용되는 금기산업》에서는 빨강과 녹색으로 칠해진 600호 크기의 캔버스 위에 인터넷에서 채집한 누드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본격적으로 이러한 모순에 항거한다. 그 후 이 담론은 한동안 대규모의 미디어 퍼포먼스 등으로만 지속되었다가 십여 년 후 작지만 단단한 차돌멩이 같은 모습으로 여러 서사(敍事) 속의 하나로서 발언되고 있는 것이다.

“사악한 이웃 9”, 2020, 캔버스에 유채, 60.6 x 72.7 cm  [사진 신진식]
“사악한 이웃 9”, 2020, 캔버스에 유채, 60.6 x 72.7 cm [사진 신진식]

 

이 전시에서 작가는 관객이 그림 속으로 들어오길 바란다. 작가는 그러한 희망을 담아 상호작용적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그림을 바라보는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와 형상을 볼 수 있는 이 회화적 일루전으로 관람객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와 형상을 발견한다면 작가의 기쁨이 배가 될 것이다. 이 전시는 11월 26일(토)까지 진행된다(일요일은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