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동 국회의원 초청 국학특강
김을동 국회의원 초청 국학특강
  • 강륜금 기자
  • news@ikoreanspirit.com
  • 승인 2009.07.01 00: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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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역사교육으로 후손에게 정신적 유산 물려주자!”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 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김을동 국회의원은 지난 6월 20일 국학원 4층 대강당에서 열린 ‘2009 희망 대한민국 명사 초청 국학특강’에서 독립군가와 압록강 행진곡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이번 특강은 국학원과 국학운동시민연합 주최, 세계국학원청년단 주관으로 열렸으며  2009년도 공익활동지원사업으로 행정안전부의 후원을 받았다.

김 의원은 강의 서두에 “한민족의 인류사랑 지구사랑 정신을 민족을 넘어 세계에 널리 알리는 국학원의 활동에 감사한다.”며 할아버지 김좌진 장군, 아버지 김두환 의원 등 가족사를 중심으로 조국과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정신적 유산에 대해 강조했다. 다음은 강의요지이다.

현재 남북갈등보다 여야대립, 남남갈등이 심화되고 애국심을 찾기 어려우며 개인의 생각과 의견, 개인의 가치와 철학만 주장되고 있다. 이런 현실의 근본적인 원인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예우와 지원이 미비하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하지 못한데 있다.

미국, 호주 등 세계 각국이 국가유공자에게 최고의 예우를 하고 경제위기 속에서도 아낌없이 후원하는 것은 “국가가 언제든지 국민을 책임진다.”는 신념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라의 흥망과 존속은 대대손손 교육에 달려있다. 특히 국사교육이 가장 중요한데 너무나 등한시되고 있다. 자신이 목숨을 바쳐야 할 조국의 역사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고위 공직자나 장군, 경찰총장이 되는 현실을 조장하는 것이다.

전 재산으로 김좌진 장군 기념관 짓고 매년 대학생들과 ‘청산리 대장정’ 떠나

할아버지 김좌진 장군은 일본강점기 만주에서 청산리 전투로 일본군 3천 명을 물리친 공으로 많이 알려졌으나 무엇보다 교육사업에 앞장서셨던 분이다. 안동김씨 문중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17세에 집안 노비 45명을 풀어주고 그 집을 학교로 만들었다. 41세에 일본의 사주를 받은 공산당원의 흉탄에 돌아가실 때까지 독립군을 이끌고 주둔하는 곳곳에 학교를 세웠다. 돌아가신 3년 후 부인 해주 오씨는 방물장수로 위장, 만주로 가서 기어코 유해를 찾아 국내로 들여온 분이다. 그 할머니 밑에서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자랐는데 매우 엄격하셨다. 어려서 동요보다 독립군가와 기미독립선언서를 먼저 외우도록 하셔서 지금도 한자 빠짐없이 기억한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할 당시 일본경찰에 쫓겨서 남의 집 담장을 넘었다가 만난 그 집 딸과 사이에서 태어났다. 독립군을 숨겨주었다고 갖은 고문을 당했던 증조모와 조모가 아버지 8살에 돌아가셨다. 일본경찰이 두려워 아무도 돌보지 않은 아버지는 청계천에서 8년간 걸인생활을 했었다.

해방 후 아버지는 국회의원을 두 번했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등기부에 올릴 재산 하나 없었고 어머니가 삯바느질로 자식을 교육시켰다. 가족을 살갑게 돌보지 않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장례 마지막 날 영구차가 의정부를 지날 때 수십 명의 고아원 아이들이 작은 소반에 과일을 조금씩 담아 추위에 떨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독립유공자 연금을 가족이 쓰면 의미가 없다고 통장째 고아원에 주셨다고 했다. 그 순간 오해했던 아버지께 죄송해서 눈물이 쏟아졌고 그분이 자랑스러웠다. 역시 물질적 유산보다 정신적 유산이 더 우월하다.

10년 전 독립군의 후손인 조선족 동포가 김좌진 장군을 기릴 곳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전 재산을 들여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흑룡강성 해림시에 기념관을 지었다. 그곳에 할아버지뿐 아니라 항일무장투쟁을 한 모든 분의 업적을  기록했다.

8년 전부터는 국내 대학생 100여 명을 데리고 매년 11박 12일로 ‘청산리 대장정’을 다니며 조국애와 인류애, 효 정신을 교육하고 있다. 대장정의 첫 기착지가 바로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졸본성(오녀산성)이다. 기념관을 짓느라 월세도 내기 어려웠을 때 아들이 드라마에서 주몽 역할을 맡아 성공했다. 우연이 아님을 강하게느꼈다.

살아오면서 욕심 없이 공익을 위해 살면 모든 것을 다 잃어도 다시 모든 것이 생긴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반석 위에 서야 국민이 편안하다고 믿기에 앞으로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제 몫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날 국학활동가와 민족혼 교육생 및 천안시민 500여 명은 진솔하고 열정적인 강의에 큰 박수를 보냈다. 김을동 의원은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을 방문, 우리나라 5천 년 역사와 문화, 철학을 담은 공원을 조성한 데 대해 감탄했다. 국학원 자문위원을 수락한 김 의원은 앞으로도 국학원과 함께 뜻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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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 2010-03-25 20:01:22
독립운동을 하신분들의 업적을 찾아 기념하는 사업을 벌여야 민족의 정체성이 살아나고 부강한 나라가 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