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배우 이송이, 문종철              ⓒ극단 고래 [사진 극단 고래]
왼쪽부터 배우 이송이, 문종철 ⓒ극단 고래 [사진 극단 고래]

 분단 이데올로기, 계급과 젠더,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고 있는 극단 고래가 12월 1일부터 11일까지 제21회 정기공연 〈벗〉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양레퍼토리씨어터 무대에 올린다.

극단 고래는 2022년-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중장기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고래, 혐오의 물결을 거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뿌리를 찾고 치유와 성찰에 의의를 두고 연극작품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분단 이데올로기, 계급과 젠더, 차별과 혐오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극단 고래는 올해 5월, 19회 정기공연 작품 〈고래〉를 선보였으며, 연극 〈별탈없음〉 이후, 12월 제21회 정기공연 작품 〈벗〉 공연을 앞두고 있다.

연극 <벗>은 1988년 북한의 백남룡 작가가 쓴 동명의 장편소설을 세계 최초로 연극으로 만든 작품이다.

《벗》은 한 판사가 이혼소송을 청구한 젊은 여성의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의 가족이 겪는 고통과 슬픔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결혼생활도 돌아보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1960년대 이후 북한 문학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흔적 없이 오롯이 평범한 사람들의 연애, 결혼, 이혼, 육아, 직업 등 일상을 다룬 북한 최초의 작품으로,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그늘 밑에 가려져 있던 북한사람들의 미시적 삶의 풍경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왼쪽부터 배우 변신영, 정나진   ⓒ극단 고래 [사진 극단 고래]
왼쪽부터 배우 변신영, 정나진 ⓒ극단 고래 [사진 극단 고래]

정도상 소설가(6.15민족문학인 남측협회 집행위원장)는 2018년 국내에 발행된 소설 《벗》(아시아) 발문 “소설 《벗》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서 창작된 수많은 작품 중에서 우리가 백남룡의 《벗》을 주목하는 것은 다른 소설에 비해 당적 리얼리즘의 도그마적 규칙에서 많이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기계공장의 노동자 출신이기 때문에 인민생활 혹은 노동생활을 충분히 체험했기 때문에 소설의 풍경이 아주 풍부해졌다.

백남룡의 소설 《벗》을 그저 북한 소설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벗》은 겨레말 문학의 한 범주이며 동시에 아시아의 한 영역에 위치하고 있다. 유럽이나 일본 등지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창작의 방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시에 작품의 세계관도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너무나 낯선 북한 문학이지만, 이 작품은 2011년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된 이래 남북한 문학을 통틀어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기록된 바 있다.

2020년 미국에서도 출판되어 미국 매체 <라이브러리 저널>에서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소설은 출판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가정과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각 인물이 안고 있는 고민이 여전히 동시대적으로도 유효한 보편성을 담아내고 있다. 연극을 통해 남북한 사이의 거리감을 좁혀보고자 2017년 발족된 남북연극교류협의회가 2019년 《벗》의 낭독공연을 한 바 있는데, 이번 공연은 당시 낭독공연을 보완, 발전시켰다.

왼쪽부터 배우 이송이, 문종철  ⓒ극단 고래   [사진 극단 고래]
왼쪽부터 배우 이송이, 문종철 ⓒ극단 고래 [사진 극단 고래]

<벗>의 각색과 연출을 맡은 이해성 연출은 이 연극을 통해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북한소설, 북한 사회, 북한사람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고 했다.

“가능한 원작을 충실하게 인용해 연극화하고자 했다. 그것은 그저 소설의 이야기를 무대로 충실히 옮겨온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북한소설의 말맛과 문체, 북한사람들의 감정과 정서 등 소설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지극히 북한적인 취향과 감수성을 연극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중점을 두고자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연을 통해 관객들은 남북 사이 이질적인 정서를 느끼게 되겠지만, 동시에 소설이 담고 있는 보편적 고민을 중심으로 지리적, 이데올로기적, 시대적 간극을 초월하는 남북 사이의 공통된 정서를 발견할 수 있기도 할 것이다. 포스트-이데올로기의 시대,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북한소설, 북한 사회, 북한사람을 이해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해성 연출은 원작이 주는 감성과 정서를 어떻게 관객들에게 연극적인 방법으로 전달할 것인지를 중점으로 두고 제작을 이어나가고 있다. 보기 드문 반도네온 연주자 ‘이어진’의 라이브 연주와 배우들의 춤과 움직임, 극 중 딸(호남) 역할로 등장하는 인형과 인형 조종자 등이 연극적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북한작가 백남룡  장편소설 "벗"   [사진 정유철 기자]
북한작가 백남룡 장편소설 "벗" [사진 정유철 기자]

또한, 김봄희(해설) 배우는 실제 북이탈주민으로 열여덟 살에 남한으로 와,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이해성 연출을 포함한 제작진과 출연진은 김봄희 배우와의 연습 기간 많은 대화와 토론을 하며 남북의 철학과 인식의 차이를 발견하고 이해해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봄희 배우의 북한에서의 ‘진짜’ 경험과, 정나진, 김성일, 강일 등 연극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견배우들의 연기력은 소설의 내용을 생생하게 전해줄 것이다.

연극 <벗>은 11월 1일부터 네이버 예약을 통해 예매할 수 있으며, 11월 16일까지 조기예매 할인 이용 시, 50% 할인 가격이 적용된다. 12월 3일, 10일 토요일 낮 공연 이후에는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