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서울지방보훈청 후원 2022현충시설활성화사업으로 '현장과 App에서 만나는 현충시설탐방'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6월 26일부터 네 차례 진행한 탐방에 잦은 비와 폭염 속에서도 역사와 현충시설을 알아보려는 학생, 학부모들의 열의는 뜨거웠다. 특히 낭만적으로 여겨졌던 덕수궁 돌담길에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은 많은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정동길 현충시설로는 경찰기념공원, 정동교회 이필주 사택 터, 경성부민관 폭탄의거지 세 곳이 있다.

경찰기념공원 명패를 닦는 어린이들. [사진 (사)우리역사바로알기]
경찰기념공원 명패를 닦는 어린이들. [사진 (사)우리역사바로알기]

먼저 지하철 서대문역 경찰청 맞은편에 있는 경찰기념공원은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참가자들에게도 생소한 장소였다. 2016년 6월 6일 현충일에 개원하였고,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현장탐방 활동이 위축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많은 시민에게 이곳 경찰기념공원을 알릴 수 있어서 더욱 보람있는 탐방이었다. 경찰기념공원은 1945년 경찰 창설 이후 최근까지 전사·순직한 경찰관 1만 3,700명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추모시설이다. 우리 경찰관은 누구보다도 건국·호국·구국활동에 앞장섰지만 대표 추모시설이 없었다. 이에 경찰청은 경찰 창설 70주년을 맞이하여 모든 전사·순직경찰관을 아우르는 추모공원 조성을 추진하였다. 순직자 추모벽에는 6.25전쟁 이전, 6.25전사 서남지구 전투사령부, 지리산 전투사령부, 서울∙경기∙강원∙충북∙충남∙전남∙경남∙제주 경찰국, 6.25이후 현재까지의 전사, 순직 경찰관과 자살자를 구조하다 순직한 ‘살신성인’ 故 정옥성 경감, 철길 위 장애인 구하려다 순직한 故 이기태 경감 등 생명을 다해 헌신하신 총 1만 3,700명 경찰관의 명패를 모두 각인해 놓았다.

비가 오는 중에도 정동교회 이필주 사택 터를 찾아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웠다. [사진 (사)우리역사바로알기]
비가 오는 중에도 정동교회 이필주 사택 터를 찾아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웠다. [사진 (사)우리역사바로알기]

정동교회에는 3.1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을 한 정동교회 이필주 목사를 기억하는 현충시설이 있다. 이곳 이필주 목사 사택 터에서는 3·1운동에 앞서 학생대표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기 위한 모임을 열었으며, 기독교계 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에 참여할 기독교측 민족대표의 인선을 마무리 지은 장소이다. 1918년부터 정동교회를 담임하던 이필주 목사는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이로 인해 2년 여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에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끝까지 거부하며 강연활동을 이어가다 광복을 3년여 앞둔 1942년 74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

부민관 폭파 의거터 표지판을 닦고 있는 어린이들. [사진 (사)우리역사바로알기]
부민관 폭파 의거터 표지판을 닦고 있는 어린이들. [사진 (사)우리역사바로알기]

정동길 서울시의회 건물 앞 화단에는 경성부민관 폭탄의거지 표지판이 있다. 1945년 5월 일제의 탄압과 수탈에 대항하기 위해 20대 애국의사 조문기, 유만수, 강윤국, 우동학, 권준 등이 친일파들의 행사가 열리고 있는 부민관에 폭탄을 투척한 의거를 기념하는 현충시설이다. 비록 침략자와 그들의 주구들을 죽이지는 못했지만 회의 자체를 무산시키고 독립을 열망하던 대한인의 기개를 다시 한번 과시한 사건이었다. 이 폭음에 놀란 일본 경찰은 황급히 모든 문을 잠그고 범인을 찾기에 혈안이 되었으나, 조문기 등 애국청년당원들은 이미 그 자리를 피해 다행히도 붙잡히지 않았다. 이 의거는 8·15광복을 불과 20여 일 앞두고 일어나 대일항쟁기 내내 강력한 독립운동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독립운동이었다.

지하철 서대문역에서 출발해서 덕수궁이 있는 시청역까지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대일항쟁기 나라를 되찾기 위한 뜨거운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웠다. 또한 지금도 여전히 국민의 안전을 위해 애쓰는 경찰의 역사를 알아보면서 오늘 우리의 일상이 많은 분들의 희생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