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왕성히 활동한 ‘빛의 화가’ 방혜자 화백이 9월 15일(현지 시각) 프랑스 남부 아르데슈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5세.

고인은 국내 첫 프랑스 국비유학생으로 선정돼 1961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콜 데 보자르)에서 수학한 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1937년 경기도 고양군 능동(지금은 서울이 됨) 아차산 아래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여고와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세대 서양화가 장욱진(1917∼1990)을 스승으로 모시고 훗날 한국 화단의 거장이 된 이우환(86), 우현 송영방(1936∼2021) 등과 함께 그림을 익혔다. 특히 1956년 대학 1학년 때 고인은 미술 강습회에서 고암 이응노(1904~1989)와 만난 후 프랑스 유학 후에는 이응노 화백 부부와는 한가족과 다름없이 지내게 되었다.

샤르트르 대성당에 설치될 스테인드 글라스 앞에 서있는 방혜자 화백 © DRAC CVL et atelier Glasmalerei Peters. [사진=주프랑스한국문화원 제공]
샤르트르 대성당에 설치될 스테인드 글라스 앞에 서있는 방혜자 화백 © DRAC CVL et atelier Glasmalerei Peters. [사진=주프랑스한국문화원 제공]

 

프랑스에서 고인은 회화 외에도 벽화와 색유리화, 판화에 관한 공부를 두루 했다. 1963년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서 수학하던 고인 미술비평가이자 미술사가인 피에르 쿠르티옹(Pierre Courthion, 1902-1988)을 만난다. 그는 고인의 초기 작품들에서 가능성을 알아보고는 생의 마지막까지 그를 아낌없이 격려하고 후원한다.

한국추상미술 제1세대인 고인은 파리에서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에 뛰어들어 유화, 프레스코, 이콘(러시아 성상화),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기법을 습득하는 동시에 타국 생활의 경험을 통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깊이 인식하고 한국의 전통 기법을 재발견하였다. 파리로 떠나 고인이 배우게 된 것은 오히려 동양의 아름다움이었고 우리 문화 예술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에 고인은 서양의 기법에 한지, 닥종이, 황토와 같은 한국적이고 자연적인 재료와 서예의 붓놀림이 사용하는 등 동서양의 기법을 접목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정립해 나간다. 고인은 작가 생활 내내 빛과 생명, 우주를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빛의 탄생’(1998), ‘섬광’(1999), ‘새로운 빛’(2001)의 작품에서 보듯 고인은 빛을 소재로 하여 ‘빛의 화가’로 널리 알려졌다.

빛에 주목하게 된 것을 고인은 2001년 펴낸 《마음의 침묵》(여백미디어)에서 “아차산 밑 개울 맑은 물 속에서 반짝이던 자갈돌들의 투명한 빛이 그림을 그리게 해준 첫 씨앗이 되었다”며 “‘사람의 손으로도 빛을 그릴 수 있을까? 생명의 실상의 빛을….”이라고 밝혔다. 고인의 예술의 길은 빛에 대한 찬탄과 의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이후 60여 년간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발한 작업을 펼친 고인은 파리 세르누치박물관 등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100회가 넘는 전시를 개최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1993년 프랑스에서 ‘파리 길상사’가 개원할 당시 인연이 깊은 법정 스님 제안으로 사찰에 내걸 후불탱화를 ‘생명이 피어오르는 추상화’로 그렸다. 이후 익산에 있는 원불교 중앙중도훈련원에 걸린 추상화로 된 세 폭의 불화를 그렸다. 일찍이 불교와 인연이 깊었던 고인은 이국 생활의 외로움과 아픔을 고국의 깊은 산사의 저녁 예불소리, 풍경소리로 달래곤 했다. 이후 현지에서 가톨릭과 접한 후 1964년 영세를 받아 두 개의 종교를 마음에 담았다. 고인은 “두 종교가 사랑을 향한 하나의 길로 느끼게 된다. 또한 종교뿐만 아니라 예술까지도 사랑을 닦는 길임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고 《마음의 침묵》에서 밝혔다. 고인은 “예수님의 사랑, 부처님의 자비, 광명, 그 구 분의 가르침을 더욱 더 속으로 익혀서 두 손을 모아 하나로 합치듯 마음을 크게 열고 싶다”고 했다.

고인은 우리 문화유산을 사랑하여 귀국하여 한국에 머물 때는 문화유산의 찾아 다니는 여행을 했다. 고인은 “우리 문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충분히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세계를 바로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며 우리의 뿌리를 다시 찾아 안으로의 여행을 떠나고 싶어했다. 고인은 “세계의 문화 예술을 무조건 추종하기에는 우리 전통의 뿌리가 너무나 깊고 귀한 것이다. 서로 다른 모습과 빛깔로 당당히 켜가면서 무조건 서양 문화의 모방에 그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고인의 작품 ‘우주의 노래’(1976)는 한지와 황토를 섞어 빛의 번짐을 자연스럽게 살린 걸작이다. 올해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공개된 ‘하늘과 땅’(2010)도 미술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2018년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에 설치할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을 위한 작품으로 고인의 그림이 선정됐다. 샤르트르 대성당은 프랑스의 국보급 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데, 그 장식에 해외 작가가 참여한 것은 고인이 처음이다.

해외문화홍보원과 주프랑스한국문화원은 고인의 도불 60주년 기념 특별전 〈새로운 세상을 향해…〉를 지난 3월 2일(수)부터 4월 29일(금)까지 주프랑스한국문화원에서 개최했다.

고인은 《마음의 소리》(한마당, 1986년), 《마음의 침묵》(여백미디어, 2001)을 비롯하여 평화와 사랑과 생명의 존귀함의 메시지를 담은 《빛으로부터 온 아기》(도반, 2012)를 펴냈다.

2015년에는 빛의 향연을 담은 세번째 작품집 《빛의 노래(Chant De Lumiere)》(열화당)을 발간했다.

고인은 자랑스러운 경기인상(2008), ‘미술인의 날’ 해외작가상(2008), 대한민국 문화훈장(2010), 한불문화상(2012) 등을 수상했다.

고인의 부군 알렉상드르 기유모즈는 고인과 인연을 맺은 후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의 문화, 민속, 종교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한국 무속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어 한국농어촌마을의 연구서인 《미역, 노인, 신(神)》(1979)에 이어 《부채무당》을 파리에서 출간했다. 파리 국립학술원의 한국학 분야 책임자, 서울에 있는 파랑스 극동연구원장, 파리 사회과학대학원 인류학 교수를 역임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9월 17일(토) 고인의 유족에게 조전을 보내 애도의 뜻을 전하고 고인의 예술적 성취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박보균 장관은 조전에 “고인께서 보여준 열정, 예술혼과 탁월한 성취에 한없는 경의를 표한다.”라며, “고인께서 생전에 빛을 통해 추구했던 평화, 사랑, 생명과 존귀함의 가치가 앞으로도 세상을 더욱 밝게 비춰주길 기원한다.”라고 적었다.

주프랑스한국문화원은 프랑스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물론 현지 예술인들이 고인을 추모할 수 있도록 9월 20∼21일(현지 시각) 문화원에 분향소를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