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

14.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8)

“서구 국민들이 저마다 현재의 윤곽선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그 주변이나 아래에 마치 배경처럼 유럽이 나타난다. 이것이야말로 그 나라들이 르네상스 이후 찾아온 통일적인 풍경이고 그들 자신이며, 알게 모르게 그 호전적인 대립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은 서로 싸우고 서로 대립하는 동맹을 형성하고 해체하고 다시 재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평화든 전쟁이든 간에 대등한 공동생활을 영위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중의 반역》 14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 9에서 유럽 통합의 필요성을 내부와 외부로 각각 나누어 검토한다. 먼저 유럽 내부를 보면 유럽의 각 나라가 유럽이라는 공동의 자산 위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 대중의 반역을 겪고 있다는 점,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제시한다. 외부로 눈을 돌리면 소비에트의 ‘5개년 계획’이 유럽에 위험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내부를 보면 서구의 여러 국가가 르네상스 이후 국가를 넘어서 ‘유럽’을 공통의 배경을 하고 있다. 전쟁을 할 때도 교역과 사상, 예술 양식과 신조(信條)의 교류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세대를 거듭할수록 서구인들은 정신의 동질성이 증대되었다. 심리적으로는 동일한 구상 혹은 구조를 지니고 무엇보다도 공통의 내용을 획득하고 있다. 종교와 과학, 법률과 예술, 사회적·성적 가치를 공유해나가고 있다.

이렇게 공유하다 보니 오늘날 서구의 정신적 내용인 의견, 규범, 욕망, 자부심을 보면 대부분의 것이 유럽이라는 공통 자산에서 온 것임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오늘날 서구인 각자에게는 프랑스인, 스페인인에게서 비롯된 독자적인 몫보다는 유럽인으로서 갖고 있는 공통적인 내용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오르테가는 “이제 서구인은 혼자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가 지닌 정신적 자산의 5분의 4는 유럽의 공통 자산”이라며 유럽통합이 가장 중대한 일임을 역설한다.

그런데 현재 세계는 어떤 중대한 정신적 황폐를 겪고 있다. 그 징후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대중의 반역이라는 엄청난 현상에서 두드러지며, 그 기원은 유럽의 정신적 황폐 속에 있다. 이 황폐의 원인은 많이 있지만,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과거에는 유럽 자신과 유럽 이외의 세계에 대해 행사해오던 유럽의 권력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유럽의 지배가 불확실해지고 세계의 다른 부분도 지배하고 있는지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역사적 주권이 분산되어 버렸다.

이제 19세기처럼 명백하게 예정된 확실한 미래를 상정하는 ‘시대의 충만함’은 없다. 19세기에는 사람들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미지의 방향을 향해 지평선이 펼쳐진다. 누가-민족이나 민족집단, 인종, 이데올로기, 기호와 규범과 생활체계-가 지배할지, 지상의 권력이 어떻게 조직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가까운 장래에 인간과 관련된 문제들이 어떤 중력의 중심을 향해 끌어 당겨질지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세계의 삶은 터무니없이 임시방편으로 몸을 돌리고 있다.공적인 자리에서 또 사석에서 또 가장 내면적인 일에서도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이 몇몇 과학의 몇몇 부문을 제외하면 임시방편이다. 이 모든 것은 삶의 본질적인 차원에서 보면 거짓이다.

현재의 삶은 역사를 지배하는 두 조직체—과거의 조직체와 앞으로 이루어지려는 조직체 사이의 공백 기간의 결과이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오르테가는 유럽인이 국가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럽인들은 통일적인 큰 사업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살 방법이 없다. 그런 사업이 없다면 비속화되고 약해져 뼈가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일이 우리 눈앞에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국민으로 불려온 집단은 한 세기 전에 최대한 팽창했다. 그래서 그것들을 극복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것들은 유럽인을 가두고 그 걸음을 늦추면서 주변이나 아래쪽에서 쌓여가는 과거일 뿐이다.”

이에 해법으로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이 될 수 있을까?

누구나 지금 새로운 삶의 원리를 확립하는 절박한 필요성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비슷한 위기의 시대에는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미 실효된 원리를 극단적이고 부자연스럽게 강화함으로써 급한 불을 끄려 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내셔널리즘' 분출의 의미이다.

오르테가는 민족주의는 해결책이 아니라고 본다.

“이들 내셔널리즘은 모두 막다른 골목이다. 그것들을 미래에 투사해 보면 금세 한계가 보일 것이다. 그곳에서는 어느 방향에도 출구가 없다. 내셔널리즘은 항상 국민형성원리(principionalizador)와는 역행하는 방향으로의 충동인 것이다. 국민형성원리가 포용적인 반면 내셔널리즘은 배타적이다. ”

국민 통합의 시기에는 민족주의가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 높은 규범이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모든 국가의 통합이 이미 충분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민족주의는 창의와 대규모 과업 추진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구실이자 일종의 편집광에 불과하다.

그래서 오르테가는 “유럽의 여러 민족이 하나의 거대한 국민을 건설하겠다는 결정만이 유럽의 맥박을 다시 뛰게 만들 것이다. 유럽이 다시 스스로를 신뢰하고 그에 따라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자진하여 단련을 시작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통합에 오르테가는 상황이 일반적인 평가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본다.

우선 국민 형성의 과정에서 늘 일어나는 일인데 보수계층이 유럽의 통합을 반대하고 있다. 그들에게 그러한 과정은 파국을 가져온다고 한다. 왜냐하면 유럽이 결정적으로 파탄나고 모든 역사적 에너지를 상실하는 총체적인 위험에 더해 다른 지극히 구체적이고 초미의 위험이 겹치기 때문이다.

구체적이고 초미의 위험은 소비에트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5개년 계획’이다. 오르테가는 유럽인이 공산주의에 끌리지 않았던 것은 유럽인이 공산주의 조직을 통해 인간의 행복이 증진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보았다. 그런데 소비에트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5개년 계획’이 기대를 달성하고, 거대한 러시아 경제가 재건될 뿐만 아니라 번성하게 된다면 유럽인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무언가에 봉사하고 자신의 실존적 공허함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면 유럽인들이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를 철회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는 그가 그 실체에 대해가 아니라 그 도덕적 태도에 이끌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르테가는 유럽을 하나의 거대한 국민국가로 건설하는 일만이 ‘5개년 계획’의 승리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