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8회째 ‘쌀의 날’을 맞았다. 쌀 산업의 가치 인식을 확산하고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제정했다. 8월 18일을 쌀의 날로 지정한 것은 한자 쌀 미(米)를 풀어낸 ‘八, 十, 八(8.10,8)’과 여든여덟 번 농부의 손길을 거쳐야 쌀이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옥수수, 밀에 이어 세계 3대 곡물이자 2대 식량 작물로 꼽히는 쌀은 오랫동안 한국인에게 주식이면서 일상 문화였다. 아무 탈 없이 편안한지 안부를 물을 때도 “밥 먹었니?” “진지 드셨어요?”라고 하고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밥에 진심인 한국인과 쌀의 인연은 깊다.

8월 18일은 쌀의 날. [사진 Pixabay 이미지]
8월 18일은 쌀의 날.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과 쌀의 인연은 깊다. [사진 Pixabay 이미지]

청나라 관료이자 학자였던 장영(1637~1708)은 저서 《반유십이합설飯有十二合設》에서 “조선사람들은 밥을 잘 짓는다. 밥알에 윤기가 나고 부드러우며 향긋하고 또 솥 속의 밥이 고루 익어 기름지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1764~1845)는 《옹희잡지甕餼雜誌》에서 “우리나라의 밥짓기는 천하에 이름난 것이다”라고 했다.

한반도에서 쌀을 생산하는 벼농사가 시작된 시기는 불분명하다. 신석기 후기라는 견해가 주장되고 있으며, 벼농사가 본격화된 것은 청동기시대 중기라고 한다.

1920년 김해 회현리 패총에서는 1세기 경의 볍씨가 발견되었고, 1976년에는 경기도 여주 흔암리에서 서기전 10세기 경의 볍씨가 발견되었다. 1991년에는 일산 가와지유적에서 서기전 2,500년 경의 볍씨 4알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야생종이 아니라 인간의 손에 의해 재배된 볍씨의 유전적 특성을 가진 것이었다.

현재 발굴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는 1998년 발굴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 구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일명 ‘소로리 볍씨’이다. 볍씨가 집중 출토된 토탄층의 연대를 미국의 연대측정기관 지오크론과 서울대 가속기 질량분석 시스템(AMS) 연구실에서 교차 검증한 결과 1만 2890년전~1만 4090년 전으로 나왔다.

기존에 가장 오래된 볍씨로 알려진 11,000년 전(서기전 9000년) 중국 후난성 볍씨보다 수천 년 앞선 것이다. 이에 따라 세계적인 고고학 개론서 ‘현대 고고학의 이해(Archaeology)’는 쌀의 기원지를 중국 후난성(서기 전 9000년)으로 기록했다가 한국(서기전 13000년 전)으로 개정했다.

이외에도 1998년 경기도 연천 임진강변 호로고루로부터 동쪽 20km 떨어진 무릉리 2보루에서는 집중호우로 잘려나간 단애에서 수백 가마니 분량의 탄화미가 발견되었다. 이때 고구려 토기 파편 등이 함께 발견되어 대략 5세기 초부터 7세기 중후반 이곳을 장악한 고구려의 군량미 창고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본래 쌀은 겉껍질을 벗긴 곡물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중세국어에서 벼를 가리키는 말은 ‘니’였고 벼의 알갱이는 특별히 ‘입쌀’이라고 했다. 지금도 잡곡이나 찹쌀에 상대해서 멥쌀을 칭할 때 입쌀이라고 하며, 쌀밥을 ‘입쌀밥’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여러 곡식 중 특히 벼의 알갱이를 쌀이라고 한 것은 그만큼 일반적이고 친숙한 곡물이었기 때문이다. 쌀 생산에 관한 통계로 1910년 ‘조선총독부통계연보’에 쌀 생산이 44%로, 다양한 곡물 가운데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도 일반적으로 흉년이 들어 굶주릴 때 가난한 백성을 돕는 진휼 품목에도 쌀이 등장하고, 1653년 네델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상인 하멜 일행이 폭풍으로 조선에 표류했을 때 주로 쌀밥을 지급받았다고 한다.

한국인에게 쌀은 오랫동안 주식이자 일상문화였다. [사진 Pixabay 이미지]
한국인에게 쌀은 오랫동안 주식이자 일상문화였다. [사진 Pixabay 이미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쌀과 관련된 풍습도 있다. 태어난 아기는 돌이 지나서부터 젖을 떼고 밥을 먹기 시작하는데 돌날 아기에게 밥그릇과 수저 한 벌을 처음 마련해주고 수저도 손에 쥐어준다. 또한, 혼인할 때 신부가 신랑과 신부의 밥그릇과 수저를 혼수로 마련하는데 밥을 잘 먹고 해로하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또한, 산모에게 주는 밥은 산미(産米)라고 하는데 출산 전 미리 좋은 쌀을 골라 새 자루에 담아 정한 곳에 두었다. 해산 미역인 산곽(産藿)도 길고 넓은 좋은 미역을 사서 꺾지 않고 두었다가 산기가 있으면 정한 상에 쌀 한 되를 퍼내어 수북이 놓고 그 위에 산곽을 길게 걸치고 정화수 세 대접을 놓았다.

이를 삼신상 또는 산신상이라 하여 산모가 아무 탈 없이 순조롭게 아이를 낳기를 빌었다. 무사히 출산하면 산미로 흰밥을 지어 세 사발 지어 올리고, 산곽으로 미역국을 끓여 세 사발, 정화수도 세 대접을 떠놓고 감사를 올렸다. 이후 이 상에서 내려 산모와 해산을 도운 사람도 함께 먹었다고 한다.

최근 탄수화물을 적게 섭취하는 흐름에 따라 한국인의 1인당 쌀 소비량은 꾸준히 줄고 있지만, '밥정'과 같은 말 속에 정서적인 주식으로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