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

14.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6)

14장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의 7에서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명석한 두뇌라 부를 만한 두뇌는 고대 세계 전체를 통틀어 테미스토클레스와 카이사르 두 명의 정치인밖에 없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오르테가는 이 사실이 놀랍다고 한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정치인은 유명인을 포함하여 어리석기 때문에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명석하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혼란스럽고 복잡한 현실 속에서 명확하게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사람, 삶의 모든 상황에 등장하는 혼란 속에서도 그 순간의 비밀 구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 요컨대 그러한 생활 속에서 삶의 방향을 잃지 않는다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두뇌가 명석한 사람이다. 두뇌가 명석한 사람은 삶을 직시하고 만사가 문제투성이인 것을 깨달으며 자신이 길을 잃어버렸다고 자각하는 사람이다.

먼저 오르테가는 카이사르를 “인류 역사상 가장 혼란스런 시기와 지독한 혼돈 속에서 현실의 실체를 파악하는 능력을 지는 최고의 인물”로 평가한다. 기원 전 1세기 초의 로마는 강대하고 부유하여 그에 맞설 적이 없었지만 로마는 파멸 직전에 있었다. 선거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부정이 심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카이사르는 정복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카이사르는 원기왕성한 로마의 운명을 끝까지 받아들이고 정복을 계속 수행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새로운 민족을 정복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이 새로운 민족이 근동의 부패한 나라들보다 더욱 위험한 존재가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는 서방의 야만족들을 철저히 로마화하여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이는 보수주의자들과 정반대의 견해였다.

카이사르는 로마제국이 로마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부와 속주에 기반해 살아가길 원했다. 이는 도시국가의 완전한 초월을 의미한다. 즉 다양한 민족들이 협력하고 모두가 연대의식을 느끼는 국가를 의미한다. 중심부가 지배하고 주변부가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사회 조직의 각 요소들이 동시에 국가의 수동적.능동적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근대국가가 바로 이런 것이기 때문에 이는 미래에 대한 카이사르의 천재적인 예견이다.

이러한 천재적 예견에 오르테가는 동류자들 가운데 제1인자(primus inter pares)에 불과한 프린켑스와 공화정의 과두체제를 초월한 로마 외부의 반귀족적 권력을 상정한 것이다며 이런 보편적 민주주의의 행정권과 대표권은 본거지를 로마 외부에 둔 군주정에서나 가능할 뿐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이 새로운 국가는 시대를 너무나 앞선 것이어서 두뇌 회전이 느린 라티움인(현재 로마 동남부에 있었던 도시국가)은 이 거대한 변화를 따라갈 수 없었다. 감각적인 물질주의로 가득 찬 도시 분위기에 로마인들은 이 최신의 공공 조직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르테가는 여기서 국가의 실재에 관해 논한다. 그에 따르면 국가의 실재는 혈연으로 맺어진 인간들의 자연발생적인 공동생활이 아니다. 국가는 본래 분리된 집단들이 공동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때 시작된다. 이런 강제는 노골적인 폭력이 아니다. 그것은 각각의 집단에 부과된 공통의 과업이 하나의 계획의 시작으로 상정한다. 국가는 무엇보다 먼저 활동 계획이자 협력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뭔가를 하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국가는 혈연도 아니며 언어나 토지의 통일체도 아니고 인접한 거주지도 아니다. 결코 물질적인 것도 불활성적인 것도 아니고 주어진 것도 한정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공동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의지로서의 순수한 동력이다. 그래서 국가의 이념은 어떤 물리적 조건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국가의 단일성은 바로 주어진 단일성 일체를 극복하는 데 있다. 전진하려는 충동이 멈추면 국가는 자동적으로 쓰러지고 이전에 존재한 물질적으로 굳건해 보인 단일성-인종과 언어, 자연 국경-은 전혀 쓸모가 없게 된다.

국가의 이중성-기존의 단일성과 장차 실현할 더욱 광범한 단일성-만이 국민국가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오르테가는 국가를 형성하는 적극적인 기반이 인종, 언어, 자연 국경이 아니라고 한다. 국경은 이미 성취한 정치적 통일을 계속 공고히 하는 데 이바지했다. 따라서 국경은 국가의 원리가 아니라 그 반대였다. 즉 처음에는 장애물이었다가 그것이 극복되고 난 다음에는 단일성을 보증하기 위한 물적 수단이 되었다. 인종과 언어의 역할도 이와 동일하다.

국가란 무엇인가? 오르테가는 국가는 그 형태가 무엇이든 언제나 어떤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 위해 한 집단의 사람들이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게 건넨 초대장이라고 본다. 이 사업의 목적은 그 중간 절차가 어떠하든 간에 결국에서는 일정한 형태의 공동생활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생활 계획과 행동 프로그램 혹은 업무 프로그램은 국가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용어들이다.

만일 국가가 공동의 사업 계획이라면 그 실재는 순수한 동력, 곧 일종의 활동이자 행동하는 공동체다. 이에 따르면 사업에 참여하는 모든 개인은 국가의 능동적인 부분을 형성하는 정치적 주체이다. 그리고 인종과 혈연, 지리적 귀속, 사회계급은 부차적인 것이다. 정치적 공동생활에 어울리는 공동체는 과거의 전통적이거나 태고적인-요컨대 숙명적이거나 개혁이 불가능한-공동체가 아니라 실제로 행동하는 미래의 공동체이다. 우리가 국가로 모이는 것은 과거에 그랬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에 공동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서구에서는 단일한 정치체가 고대 국가를 얽어맨 모든 한계를 손쉽게 뛰어넘는다. 그리고 유럽인은 고대인(home antiquus)과는 다르게 미래에 대해 열려 있고 의식적으로 미래를 향해 살아가며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의 행동을 결정한다. 이런 정치적 경향은 필연적으로 점점 더 광범위한 통일을 이끌어낼 것이다.

여기에는 융합력이 작용한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융합력은 민족과 민족간의 융합뿐만 아니라 가장 특징적인 것은 국민국가 내의 융합, 각각의 정치단체에 속한 사회집단의 융합에 있다. 국가의 영토가 확장되고 인종이 확대됨에 따라 내부적인 협력은 더욱 일원화된다. 국민국가는 근원적으로 민주적이다. 이것이야말로 통치형태 일체의 차이를 넘는 결정적인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