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 지음 "한국 고전소설의 요괴" 앞 표지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후남 지음 "한국 고전소설의 요괴" 앞 표지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에서 한국 고전소설 76편에 등장하는 157종‘요괴’의 서사를 심도 있게 분석해 ‘한국형 요괴학’의 시작을 알릴 《한국 고전소설의 요괴》(이후남 지음)를 발간했다.

지금, 왜 요괴인가?

요괴(妖怪)는 한중일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전 세계에 걸쳐 다양한 양상으로 분포되어 있다. 중국과 일본에는 요괴 관련 서적 및 문헌이 상당수 존재하며, 요괴에 관심이 일찍부터 있었다.

일본은 동아시아 요괴학의 선두 주자라 할 만큼 일찍부터 요괴학이 학문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아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요괴라는 원천 소스를 학문의 영역이나 산업의 영역에서 모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요괴를 활용하여 문화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국내 및 동아시아, 넓게는 세계에 홍보하는 일은 우리 문화를 알리는 일환이 될 뿐만 아니라 경제 이윤 창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요괴학이 학문의 영역으로 자리 잡는 것이 중요하다. 요괴학이 정립되려면 먼저 한국의 설화 및 고전소설에 나오는 요괴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문적으로 요괴에 관한 연구가 공고히 다져진 이후, 요괴를 산업적으로 콘텐츠화하는 방안을 강구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고전소설의 요괴》의 저자인 이후남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는 한국 고전소설의 요괴 관련 기록을 수집하고 연구하면서 ‘한국형 요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한 신진학자다. 이 책에서 다룬 76편의 악성(惡性) 요괴에 더해 고전소설 126편에 나타난 선성(善性) 요괴를 연구해 망라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저자는 비주류로 취급받던 고전소설 속 ‘요괴’ 연구에 집중해 「고전소설에 나타난 여우 퇴치담의 양상과 의미」, 「치유담으로 읽는 <전우치전>」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며 요괴 연구를 학문적 연구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콘텐츠 산업과의 연계 가능성을 모색한다. 

저자는 《한국 고전소설의 요괴》에서 한국 고전소설 속 요괴 서사를 일곱 가지 관점으로 다뤘다. 먼저 요괴라는 용어에 대한 학술적 개념을 정의하고(1장), 작품별 요괴 사서 단락을 △요괴의 등장, △요괴의 작란, △요괴의 퇴치로 이어지는 3단계로 정리했다(2장). 그리고 빈도와 중요도에 따라 요괴 정체를 △여우, △용·뱀, △돼지·원숭이, △나무, △기타 동물 및 무생물, △정체 미상으로 분류하고(3장) 요괴의 정체 변신 유무를 기준으로 △정체 유지 유형과 △인간 변신 유형으로 서사 유형을 나눴다(4장).

'삼한습유'에 나오는 여우 정령은  달의 정기 흡입하여 인간에게 빙의해 조종한다. 다른 이름으로 구미호라고 한다.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삼한습유'에 나오는 여우 정령은 달의 정기 흡입하여 인간에게 빙의해 조종한다. 다른 이름으로 구미호라고 한다.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또한 설화와 크게 구별되는 고전소설만의 요괴 서사 특징을 밝히고(5장), 당대 고전소설 향유층의 요괴 인식과 그 의미를 자세히 살폈다(6장). 마지막으로 향후 요괴 연구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문화콘텐츠로써 요괴 활용 가능성을 살폈다(7장).

이 책에서 말하는 요괴란 무엇인가?

저자는 요괴를 “비인간이면서 기괴하고, 인간세계에 해를 끼치다가 퇴치되는 존재”로 정의하고, 이 정의에 부합하는 요괴를 한국 고전소설 76편에서 찾아내 총 157종 요괴의 서사와 특징을 다뤘다.

'삼강명행록'에 나오는 올출비채는 힘이 무척 세고 무예가 뛰어나다. 물속에서 오랫동안 숨을 참을 수 있다.  태어났을 때 날개가 돋아 있었는데 나중에 없어졌다. 태어난 지 14일 만에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삼강명행록'에 나오는 올출비채는 힘이 무척 세고 무예가 뛰어나다. 물속에서 오랫동안 숨을 참을 수 있다. 태어났을 때 날개가 돋아 있었는데 나중에 없어졌다. 태어난 지 14일 만에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요괴를 살펴보면, 여우나 돼지 등의 동물류가 다수를 차지하며, 나무귀신이나 작품에 맞게 새롭게 창작된 독특한 요괴 등 그 양상이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이러한 요괴들의 생김새 및 행동 묘사가 상당히 구체적이다. 더불어 요괴들은 인간에게 다양한 양상의 장난질을 치며, 이를 퇴치하는 방법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특이점을 갖는다.

“이수문이 첫닭이 우는 새벽이 되자, 짐을 꾸려 과거 시험장으로 가기 위해 남대문에 들어섰다. 그런데 갑자기 비린내가 코를 찌르며 이름 모를 짐승이 빠르게 지나가는데, 여인의 슬픈 울음소리가 은은히 들렸다. 이때 불현듯 ‘길가에서 괴이한 짐승을 만나면 칼로 찔러 죽이라’는 점쟁이의 말이 떠올랐다. 이수문이 급히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서 있는 힘을 다하여 그 짐승을 치니, 그 짐승이 한 마디 비명도 지르지 않고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칼이 떨어진 곳에 가서 불을 켜고 살펴보니, 옥가락지 한 짝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주워서 깊이 잘 보관하였다.”

지하국 대적 퇴치담 「이수문전」에 등장하는 요괴 금돼지가 고려의 공주를 납치해 가던 중 주인공 이수문에 의해 퇴치되는 대목이다. 이처럼 요괴는 소설 속 작은 부분이 아닌, 요괴 서사 자체가 작품 전체의 내용이 되거나 작품을 흔드는 원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 기능 역시 단순 삽화(揷話) 정도가 아닌 좀더 다층적인 면에서 분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그간 한국 고전소설은 주제나 인물 연구에 치우쳐 왔다. 따라서 오늘날의 요괴 연구는 작품 구성 입자로서 간과할 수 없는 소재이자, 삽화 연구의 자료로서 그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고운전」, 「금방울전」, 「명주보월빙」 등 한국 고전소설 76편에 등장하는 요괴 혹은 요괴 퇴치담을 중심으로 요괴 서사를 분석한 이 책은 한국형 요괴학의 시작을 알리고, 나아가 요괴 서사 연구를 통해 한국 고전소설사의 지평을 연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황장군전'에 나오는 은행나무 귀신은 날씨를 밝게 하거나 어둡게 할 수 있고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 분신술을 쓸 수 있다.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황장군전'에 나오는 은행나무 귀신은 날씨를 밝게 하거나 어둡게 할 수 있고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 분신술을 쓸 수 있다.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책에서 저자는 고전소설에서 요괴 형상화의 원인 및 의미를 크게 다섯 가지로 고찰한다.

첫째, 요괴는 작품을 읽는 흥미소로 작용하여 독자를 끌어들인다. 이는 요괴가 등장하는 모든 작품에 적용되며,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요괴 형상화의 원인이다. 즉 요괴는 독자들에게 크나큰 흥미를 유발하여 흡인력을 높이기 위한 요소로써 활용되었다.

둘째, 요괴는 주인공의 영웅성과 능력을 발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영웅성을 갖춘 주인공의 경우 그 능력을 여러 삽화를 통해 발현하는데, 요괴 서사 역시 그중 하나이다. 주인공은 요괴를 무력 혹은 감화를 통해 퇴치함으로써 영웅성이 배가되거나 도학군자의 모습이 더욱 부각된다.

셋째, 요괴는 작중 배경국의 잘못된 치세 문제를 은폐하고, 그 원인을 전가하는 데 활용된다. 고전소설에는 인간의 도덕적 과오나 사회 및 국가의 부정부패의 책임을 요괴에게 전가하여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요괴는 당대 사회의 내재된 문제 및 인간의 부조리 등을 단번에 설명해주는 기제로 끊임없이 선택되었다.

넷째, 요괴는 욕망 서사를 표출하기에 적합하다. 고전소설 속 요괴는 인간에게 사랑받기를 원하거나 인간과 어울려 살고 싶어 하며,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등 끊임없이 인간의 삶을 욕망한다. 고전소설의 작가는 마음대로 시공간을 넘나들거나 원하는 상대로 변신하는 등 인간이 한 번쯤 꿈꿔볼 만한 소망을 요괴를 통해 대시 표출하였다. 고전소설의 작가층은 요괴와 인간의 쌍방향적 욕망을 서사화는 데 요괴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태원지'에 나오는 응천대장군은  짐승들과 싸워 이길 만큼 힘이 세다. 물에 빠지지 않고 불에 타지 않으며 추위와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 물속 생물들을 부릴 수 있고, 바람·구름·우레·비를 조종할 수 있다.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태원지'에 나오는 응천대장군은 짐승들과 싸워 이길 만큼 힘이 세다. 물에 빠지지 않고 불에 타지 않으며 추위와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 물속 생물들을 부릴 수 있고, 바람·구름·우레·비를 조종할 수 있다.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다섯째, 요괴는 인간의 원형적 심상을 나타내는 데 큰 몫을 담당한다. 요괴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내재된 두려움 자체를 표상한다.

설화나 소설을 비롯한 많은 서사 문학 작품에서 요괴를 형상화하고 끊임없이 다채로운 요괴를 만들어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요괴는 인간의 상상 속에서 탄생한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 스스로 충분히 실존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 실제로 고전소설 대부분에서 요괴는 개인이나 집단의 신체적·정신적 허점을 틈타 인간을 공역하고 인간세계를 침범하고 있다. 곧 인간이 요괴와 대면해버린다는 결론을 통해 독자들은 대리만족을 얻게 된다. 곧 인간이 요괴와 대면했을 때에 퇴치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영웅 혹은 도학군자의 형상을 지닌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말끔히 해소하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요괴는 그 실존 여부를 떠나 당대 독자들의 기대지평에 부응하였고, 끊임없이 선택되며 활용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요괴에 관심을 쏟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고전소설의 요괴를 콘텐츠화하는 가능성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콘텐츠가 문화산업의 핵심인 오늘날, 요괴야말로 각종 콘텐츠 산업의 주인공으로 손색없다. 인간의 상상력과 욕망의 집약체인 요괴는 그 존재 자체가 캐릭터이며, 스토리다. 요괴 서사를 활용해 게임용 스토리텔링으로 확장하거나, 고전의 현대화를 통한 동화책, 만화책, 소설 등 출판물로의 각색, TV 드라마, 웹 드라마, 애니메이션, 영화 등 각종 매체로 확장과 변용이 가능하다.

이후남 지음 "한국 고전소설의 요괴" 앞 표지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이후남 지음 "한국 고전소설의 요괴" 앞 표지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특히 고전소설의 요괴 퇴치담은 만화, 드라마,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제작할 만큼 충분히 흥미로운 소재이다. 요괴와 주인공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 및 해결 양상은 단순한 재미를 넒어 스펙타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각박한 현대사회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영웅으로 형상화된 주인공이 사회악적 존재인 요괴를 퇴치한느 일련의 과정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요괴 퇴치 스토리가 무궁무진하게 존재하기에 얼마든지 현대인의 감성에 맞게 각색할 수 있다. 이처럼 요괴는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산업에 활용할 수 있는 원소스멀티유스(OSMU)이다.

이처럼 활용하기 위해 저자는 “그 활용 기반에는 요괴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탐구가 담겨 있어야만 한다. 또한 말초적이고 상업적인 것을 추구하는 데서 벗어나 학계와 대중문화계가 상생할 수 있는 건강한 콘텐츠가 창조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요괴를 학문의 영역에서뿐 아니라 문화산업의 큰 축으로 개발하는 일본의 요괴 산업처럼 한국 고전소설의 요괴 또한 현대적 변용을 통해 새로운 문화 가치를 창출하고 전 세계에 K-콘텐츠로 알릴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