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의 젊은 미술가, 각자 선택한 매체를 통해 자신만의 시각언어를 만들다
3인의 젊은 미술가, 각자 선택한 매체를 통해 자신만의 시각언어를 만들다
  • 정유철 기자
  • npns@naver.com
  • 승인 2022-08-05 2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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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지갤러리, 8월 5일 ~27일 "inter-face"전
페리지갤러리 “inter-face”전 전시 모습. [사진 페리지갤러리]
페리지갤러리 “inter-face”전 전시 모습. [사진 페리지갤러리]

 

 “접점” “연결”. 한 자리에 전시된 작가 정영호, 허연화, 홍기하의 작품들이 주는 첫 느낌이다.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 작업을 ‘인터페이스(inter-face)’라는 주제로 묶었는데 ‘접점’이 생겼다. 페리지갤러리(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18 KH바텍 서울사옥 B1)가 8월 5일부터 8월 27일까지 개최하는 “inter-face”전 이야기이다.

페리지갤러리는 2022년부터 새로 시작한 프로그램 ‘Perigee Unfold’의 첫 번째 전시로 정영호, 허연화, 홍기하 작가의 3인전 “inter-face”를 개최한다. ‘Perigee Unfold’는 꾸준히 자신의 작업 세계를 펼쳐 나가고 있는 35세 이하의 젊은 작가들에 주목하는 기획 전시 프로그램이다.

이 “inter-face”는 자신만의 시각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매체의 존재를 의미 있게 느끼는 젊은 미술가들이 서로를 마주 보는 이야기다. 작가가 창작의 매개체를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터페이스’를 설정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페리지갤러리 김명진 큐레이터는 “이 인터페이스는 우리와 실재 사이를 매개하여 세계를 감각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하는 장치이자 틀을 포괄적으로 일컫는다. 이를 미술의 영역에 국한한다면 미술의 매체(medium)가 될 것이다”며 “이번 전시는 이에 더하여 우리가 주변 세계를 감각하는 기반이자 조건인 오늘의 미디어(media)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다루고자 한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홍기하,  Chuncheon, Gypsum, aluminum, graphite, 130×67×75cm, 2022. [사진 페리지갤러리]
홍기하, Chuncheon, Gypsum, aluminum, graphite, 130×67×75cm, 2022. [사진 페리지갤러리]

이번에 선보인 홍기하 작가의 작업들은 모두 석고 조각이며 복제 가능한 에디션이 아니라 직조 방식을 사용한 각기 유일한 작품들이다.

홍기하 작가는 작업하는 과정을 “재료와 대화한다”고 표현했다. 작가는 재료를 자신의 신체와 교류하고 관계를 맺는 상대로 여기며 미리 계획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재료의 물성을 반영할 수 있는 조형을 깎고 붙인다. 그의 신체와 재료가 만났을 때만 나올 수 있는 조형을 추구한다. 그에게 조각은 세상의 물질과 그것들이 가지는 매스와 볼륨에 관한 탐구이기 때문에 자신의 몸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재료를 택한다.

작가는 오늘날 크고 무거운 조각을 제작하고 전시하는 일을 일종의 저항이라고 본다. 동시대성이 주로 데이터를 닮은 평면성이나 가상성으로 설명되는 가운데 조각은 그 반대항인 물질성과 실재하는 공간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적인 조각의 비효율적인 재료와 무게, 제작 방식을 어느 정도 고집하며 그 안에서 동시대적 가능성을 찾아 나간다.

홍기하 작가는 “조각사를 되돌아보며 전통적으로 널리 다뤄왔던 돌이나 석고 같은 재료를 선택하여 이 재료들이 구시대적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아직 발굴되지 않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설치미술로 단절되었던 조형적인 탐구를 다시 이어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시장에서 홍기하 작가의 조각을 볼 때 궁금증이 생긴다. 어디가 정면인가? 그런데 그의 작품에는 ‘정면’이 없다. 전체가 정면이다. 그래서 360도 관람을 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이는 작가의 물리적 노동이 많이 개입된 조각을 감상하는 것 또한 신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활동임을 뜻한다. 이는 시대착오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치열한 시대정신에 기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상공간이 존재하기에 오히려 더 깊게 전개되는 물질과 실존에 관한 고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정영호, 젠더갈등, archival pigment print, 108×162cm, 2022. [사진 페리지갤러리]
정영호, 젠더갈등, archival pigment print, 108×162cm, 2022. [사진 페리지갤러리]

정영호 작가는 스크린의 RGB 픽셀이나 3D 프린트된 개체의 질감 등을 사진의 전면에 드러내며 ‘디지털 물질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해 왔다. 주로 관심을 두고 있는 현상은 애초에 비시각적인 개념들로 온라인 여론장과 인식의 변화이다. 그는 현대의 많은 중요한 소통이나 변화가 비시각적, 비장소적, 가상적인 상태로 바뀐다고 느낀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정치, 종교, 젠더와 같은 민감한 주제는 더 불편해지고 더 익명의 가성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즉 오프란인과 온라인은 그 역할을 분업화하고 온라인이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떠맡게 되는데, 공론장은 광장이 아니라 서버의 하드디스크에 존재하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정영호 작가의 작업은 가상화된 중요한 것을 사진 매체로 다루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중요한 것을 물질화하고 다시 가상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업 과정에서 물질화는 3D프린팅이고 가상화는 그래픽 이미지로서의 연출이다.

작가는 정치적이고 예민한 주제어들의 '키워드 언급량'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데이터의 흐름을 형태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데이터의 그래픽은 3D 프린팅 조형물로 출력한 후 다시 사진으로 촬영한다. 컴퓨터 그래픽을 닮은 정영호의 사진은 결과적으로는 현실 공간에서 실제 조형물을 촬영한 것이다. 복잡한 작업 과정이 납작하게 압축된 한 장의 사진에서, 표면에 드러나는 데이터의 파편들은 명확한 정보로 습득되기 어렵다. 이러한 불명확성의 전략은 물질세계에 발을 딛고 데이터 세계를 바라보는 상황을 의식한 결과로써 간접적 경험의 불투명성을 드러낸다.

허연화, White island, coral, gypsum, epoxy, 36hx26x21cm, 2021. [사진 페리지갤러리]
허연화, White island, coral, gypsum, epoxy, 36hx26x21cm, 2021. [사진 페리지갤러리]

허연화 작가는 다매체 설치를 통해 공간 안에 풍경을 그려내는 작업을 전개한다. 특히 규모가 아주 크거나 다양한 층위에 있는 시공간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작업에 관심을 두며, 그 과정에서 평면과 입체, 데이터와 물질 사이를 오간다. 이는 작가가 조각을 처음 시작하면서 체감했던 물리적인 공간의 유한함을 가상공간의 무한한 속성과 접합하면서 나타난 작업 방식이다. 서로 다른 복수의 공간 이미지들이 담긴 다면체나 주름진 평면은 이러한 사례들이다. 특히 개인전에서는 작업들 간의 유기적인 연결을 통해 전시장 안에 하나의 풍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여 평면과 조각을 경계 없이 사용하였고, 전시에 맞게 제작된 음악을 함께 사용하기도 했다.

페리지갤러리  “inter-face”전 장면. [정유철 기자]
페리지갤러리 “inter-face”전 장면. [정유철 기자]

 또한 작가는 현실 공간에서 경계 없이 흐르는 물질인 물에 주목하여, 투명하고 흘러내리는 물성과 연결의 감각을 탐구하고 있다. 허연화 작가는 전시장에서 “물을 좋아 한다”고 말했다. 흐르는 물은 허연화 작가가 오랫동안 중요하게 여겨온 ‘연결’의 감각과도 관련되며, 이번 전시 작품들을 구성하는 제목인 ‘벼락 맞은 날’에 등장하는 벼락 또한 연결의 비유로 이해할 수 있다. ‘벼락 맞은 날’은 번개와 나뭇가지와 모세혈관의 뻗어나가는 형태가 닮았음을 새삼스레 지각하면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된 어느 날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이는 작가가 각각 다른 시기에 제작한 투명한 오브제와 산호를 그린 그림, 뿔 조각 등을 하나의 공간 안에 구성하는 시도로 이어진다. 이렇게 하여 다른 시공간에서 양립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것들을 연결하여 발생하는 낙차와 생경한 감각이 전면에 드러나게 된다.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들은 조각이라는 단일 매체를 탐구하거나(홍기하),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하나의 사진으로 귀결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거나(정영호), 평면과 입체, 가상과 물질 사이를 횡단하며 자신의 언어를 찾아나간다(허연화).

김명진 큐레이너는 “이번 작가들의 작업에서 매체와 창작의 상관관계는 각기 다른 재료로 만들어진 표면들의 차이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며 디지털과 물질세계가 공존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 반응하는 각자의 방식들에 더 주목해 볼 것을 주문했다.

구체적인 물성은 다르지만 세 작가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가상성보다는) 물질성이며, 여전히 미술의 기반을 이루는 ‘물질’에 대한 감각을 갱신하려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inter-face”전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관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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