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우 교수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윷놀이는 상대방의 말을 추격해서 결정적인 한판에 전세를 뒤집는 승부의 변수가 압권이다. 저절로 환성이 터지며 심지어는 벌떡 일어나 춤이 덩실덩실 추어진다. 적게는 둘이서, 많게는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어 탄력적이며 생동감이 넘친다. 이 윷놀이는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민족의 사상과 세계관을 담은 우리 고유의 독특한 도형이었다. 일본강점기 때 우리 민속을 연구했던 무라야마 지준은 “윷은 조선만의 독특한 유희로 그 기원이 오래되고 간소하며 명쾌하고 대중적인 민중오락”이라 했다.  이 윷놀이의 가치를 제일 먼저 알아본 서양학자는 세계적인 민속학자인 스튜어트 컬린(1858∼1929)이었다. 그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놀이의 원형으로 우주적이고 종교적인 철학을 담고 있다.”고 극찬했다.

이렇게 세계 학자들은 윷놀이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지만 정작 그 놀이를 즐기던 조선시대에는 유교 성리학의 이데올로기에 눌려 스스로 그 가치를 폄하했다. 조선시대 송시열(1607-1689)의 ‘계녀서’와 이덕무(1741-1793)의 ‘사소절’에서 윷놀이를 경계해야 할 잡기로 천시했다. 대부분의 조선 유학자들은 우리 것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고 부녀자들의 유희나 도박으로 간주했다. 그럼에도 민간에서 꾸준히 즐겼던 윷놀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은 조선멸망 이후 단군에 대한 관심의 부활과 맥을 같이한다.

명절이면 늘 즐기는 놀이지만 먼 옛날, 짐승의 체구나 빠르기를 고려한 도 개 걸 윷 모의 의미를 안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동물들은 길들여 가축으로 삼은 동물들이다. 사냥 대신 가축을 기르는 것이 인류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고 문명사회로의 진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5가지 동물은 마가 우가 저가 고추가 등 오가(五加)의 단위에서 쓰였으며 공교롭게도 주역에도 자주 등장한다. 신채호는 “윷판이 곧 오가의 출진도(出陣圖)”라고 한 바 있다.

윷판은 고구려 백제 신라 구분없이 널리 유행했다. 옛 고구려 영역인 중국 길림성 집안 현의 인물암각바위부터 남한 전 지역에서 수백 점이 발견되고 있으며 경북 안동시 임동면의 한들 바위 암각화는 청동기시대의 윷판도형이다.

청동기 암각화, 삼국시대의 옛 영역서 윷판 발굴 - 한민족 고유의 오락 입증

김문표(金文豹, 1568∼1608)는 ‘사도설’에서 “윷은 도(道)를 아는 사람의 작품이다. 윷판은 둥근 하늘과 네모진 땅(天元地方)을 본떴다. 북극성과 28수의 뭇별이 들어앉은 작은 우주인 윷판과 윷가락, 말의 모양 숫자 등은 음양오행의 심오한 이치가 담겨 있으며 천시(天時)를 점치고 한 해 농사의 길흉을 보는 것”이라 했다.

그런가 하면 정역(正易)계통에서는 후천시대 새로운 역학의 원리를 표현한 의미로 보았다. 우리 사서인 ‘단군세기’와 ‘북부여기’‘태백일사’에서는 윷놀이가 한역(桓易)사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태백일사’에 “윷놀이를 만들어 한역(桓易)을 강연(講演)하니 신지 혁덕이 문자로 적어놓은 천부경의 남겨진 의미일 것이다.”라고 했다. 즉, 천부경이 나온 이후에 세상 만물의 변화와 그 이치를 풀어낸 한역을 대중을 위해 고안한 윷놀이로 쉽게 이해하도록 한 것이다. ‘단군세기’또한 “신시 시대의 우사(雨師) 복희가 한역을 만들고 같은 시대사람 발귀리 선인의 후손인 자부 선생이 윷놀이를 만들어 한역을 계승 발전시켜 일월의 운행도수를 측정하고 오행의 수리를 미루어 만든 천문 역법을 발달시켰다.”고 했다.

필자는 윷놀이를 천부경 삼일신고의 수리와 더불어 우리 고유 역학의 존재를 확인하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 본다. 또한 윷놀이는 한민족 특유의 손재간뿐 아니라 두뇌싸움과 직관력이 총동원되며 같은 패 간의 협동과 조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나아가 타인을 속여 이득을 취하는 도박적인 요소보다 남과 함께 대동상생(大同相生)하는 홍익인간 이념을 담고 있어 전 세계에 널리 펼 수 있는 인류의 문화유산일 것이다. 앞으로 이를 한국문화를 알리는 중요한 자료이자 세계적인 놀이문화로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