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제천신격의 변화로 본 선도제천문화의 민속·무속화(종교화)

1. 신격 중심의 변화: 마고삼신→삼성→단군

배달국의 개창 이래 단군조선이 와해되기까지 약 4천여년간 동아시아사회의 맹주는 요동·요서·한반도 일대를 주무대로 활동하던 맥족이었고 맥족의 선도제천문화는 중원지역을 넘어 유라시아 일대로까지 널리 전파되었다. B.C.3세기 무렵 거대 연맹국가 단군조선의 연맹 체제가 와해되면서 중원지역의 화하족(華夏族)이 동아시아사회의 새로운 맹주가 되었다. 기왕의 동북아-맥족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는 중원-화하족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되었고 이러한 동아시아 질서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려 2천여년이 넘게 지속되어오고 있다.

중원-화하족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는 사상·문화적으로 중국의 삼교(도교·유교·불교) 문화에 기반하였다. 단군조선 이후 맥족사회 내에서도 삼교의 영향력이 높아져가면서 선도제천문화의 위상은 갈수록 약화되었고 선도제천문화의 본령인 천인합일 수행[성통]이나 홍익인간·재세이화의 정치사회 질서[공완]는 차츰 잊혀져갔다.

그럼에도 고려시대까지는 선도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이어지고 있었다 할 수 있다. 태조 왕건이 훈요10조에서 국풍을 중시할 것을 유시하였던 것과 같이 고려사회는 외적으로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를 수용하면서도 내적으로는 천자국으로서 독자적 천하관을 유지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선도는 선·불 습합의 방식으로 유지되었다.

고려말 몽고간섭기를 거치면서 한국사회는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 속으로 온전히 편입, 전형적인 유교국가로 바뀌어가게 된다. 유교성리학을 국시(國是)로 건국된 조선에 이르러 선·불은 이단시되었고 이 과정에서 선도 전통은 민속·무속화하여 한국 기층사회로 가라앉게 되었다. 이렇게 긴 안목으로 바라볼 때 현재 우리가 민속·무속 등으로 인지하는 많은 부분은 선도제천문화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변모된 모습임을 알게 된다.

선도제천문화의 민속·무속화 과정이란 선도제천문화의 본령인 천인합일 수행[성통] 및 홍익인간·재세이화적 실천[공완] 양대 요소가 사라지는 것인데, 그 시금석은 선도의 신격인 ‘마고삼신-삼성’이 ‘근원의 생명력-스승왕’에서 ‘인격신’으로 변모되어 종교적 신앙이나 기복의 대상으로 화하는 것이다. 인격신을 대상화하고 기복하는 것은 선도 본연의 수행[성통]-실천[공완]과는 거리가 먼 종교의 속성이다. 선도의 민속·무속화는 ‘종교화’ 현상에 다름아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마고삼신-삼성’은 인격신으로 변질되는 차원을 넘어 양자의 관계까지도 모호해져 버렸다. 배달국시대 고고학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바, ‘제천 신격과 제천 집전자’, 곧 ‘근원의 생명력-스승왕’의 관계가 잊혀졌으며 양자의 지위가 역전되었고 종내는 마고삼신이나 삼성 할 것없이 다양한 인격신으로 나타나 신격 체계를 종잡을 수 없게 되었다.

선도제천문화의 요체인 신격 면에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 원인과 결과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은 선도제천문화의 민속·무속화(종교화) 문제를 이해하는 관건이 된다. 이에 본절에서는 우선적으로 ‘마고삼신-삼성’의 관계가 모호해지면서 지위가 역전, 신격의 중심이 점차 ‘마고삼신→삼성→단군’으로 바뀌어갔던 면모를 살펴보았다. 이를 선도제천문화의 민속·무속화(종교화) 과정의 주요 표지로 바라보았다.

앞서 배달국시기 마고모신상 외에 남신상(거발환 환웅상)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마고삼신-삼성’이라는 양대 신격 체계가 정립되었으며 그 의미는 ‘제천의 신격인 근원의 생명력 - 제천 집전자인 스승왕’의 의미였음을 살펴보았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마고삼신과 삼성의 위상이 역전되는 현상이 생겨났다. 마고모신상 계통의 유적·유물이 배달국시기에 정점을 찍은 이후 청동기문화가 본격화하는 단군조선시기가 되면서 서서히 퇴조되어갔던 점에서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확인해보게 된다. 청동기시대 전쟁이 잦아지고 사회질서가 점차 수직화·서열화되어 가면서 여성의 지위가 낮아지고 남성의 지위가 높아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보이지 않는(실체가 없는) 생명신이자 여성으로 표현된’ 마고삼신의 위상이 낮아지고 ‘구체적인 역사 인물이자 실제로 남성이었던’ 삼성의 위상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마고삼신과 삼성의 지위가 역전되었을 뿐아니라 차츰 삼성 내에서 단군만이 남아 삼성을 대신하게 되는 현상도 생겨났다. 얼핏보아 이는 오래된 신이 이른 바 퇴거신(退去神)으로 밀려나고 후대의 신이 중심자리를 차지하게 현상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본질적으로는 중국의 유교적 역사인식이 한국사회로 수용되면서 단군조선 이전의 역사가 사라졌던 이유가 컸다.

한국사회에서는 고려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비록 선·불 습합의 형식이기는 했지만 선도가 민족사상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였고 무엇보다도 선·불 세력이 민족세력으로 정치세력화되어 있었다. 반면 고려말 몽고간섭기를 거치면서 민족세력인 선·불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었고 새롭게 등장한 조선왕조는 사대노선에 따라 중국 중심의 중화주의적 동아시아 질서를 전적으로 수용하였다. 유교성리학이 국시가 되면서 민족세력인 선·불 세력은 정치적으로 거세되었고 선·불 사상은 이단사상으로 금압되었다. 역사인식 면에서도 유교적 역사인식이 공식화되면서 유교적 역사인식과 배치되는 선도적 역사인식이 엄격하게 금압되었다.

유교적 역사인식에서는 한민족사의 본격적 시작을 기자조선으로부터 바라본다. 애초 단군조선이 있었지만 문화수준이 매우 낮았고, 중국 은나라의 유민 기자 집단이 이주하여 기자조선을 세우면서부터 비로소 문명이 개화되었다고 보았다. 이러한 역사인식에 따라 단군조선 이전의 환국사·배달국사가 사라지게 되었다. 환국사·배달국사가 사라지니 삼성중 환인·환웅은 허구적인 존재가 되어 존립의 근거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단군만이 남아 민족시조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특히 이때의 단군은 선도의 스승왕적인 존재가 아닌, (중국에 미치지 못하는) 소박한 원시문화를 이끈 민족시조 정도로 인식되었다.

유교적 역사인식의 수용으로 삼성중 단군만이 남게 되었다면, 유교례(儒敎禮)의 수용으로 단군은 스승왕이자 제천의 신격이었던 기왕의 위상을 잃어버리고 역대시조의 일위로 그 위상이 크게 낮아졌다. 유교례는 앞서 살펴온 중화주의에 기반한 패권주의적 천자제후 질서를 동아시아 차원으로 확장한 정치질서 체계였다. 주변국이 이를 수용하게 될 경우 천자국 중국에 대해 제후국으로 국격을 낮추어야 했는데 조선의 경우 여타 주변국들에 비해 사정이 달랐던 것이, 상고 이래 동아시아 제천문화의 종주였던 배달국 맥족의 직접적 계후 국가가 조선이었다는 사정이 있었다. 곧 배달국 이래 맥족의 선도제천문화를 중원식으로 변질시킨 유교제천문화를 수용함으로써 선도제천문화의 종주국에서 선도제천문화를 포기해버리게 되는 사정이다.

실제로 조선왕실은 고려시대까지 지속되어왔던 국중대회(國中大會) 형식의 국중제천을 포기하였을 뿐아니라 전국 곳곳의 명산대천에 자리한 소도제천지에서의 제천을 유교식 산천제, 곧 유교식 지제(地祭)로 변개하였다. 선도 제천이 유교식 지제로 격하된 것이다. 유교식 지제의 신격은 마고삼신-삼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산·천일 뿐이었다. 이렇게 선도제천이 폐기되면서 선도제천의 신격인 마고삼신-삼성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또한 새롭게 민족시조로 자리매김된 단군은 공식적으로 제천과 아무 관계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유교례에서 단군은 역대시조제(歷代始祖祭)의 일대상이었는데, 이는 천제가 아닌 인제(人祭)일 뿐이었다.

이렇게 배달국 이래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제천 신격의 중심이 서서히 ‘마고삼신→삼성→단군’, 곧 ‘근원의 생명력(마고삼신) → 환국·배달국·단군조선 시기의 스승왕(삼성) → 단군조선 시기의 스승왕(단군)’으로 달라져갔다. 이는 근원의 생명력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어간 것이며 또 스승왕에 대한 인식도 약화되어간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근원의 생명력(마고삼신)과 스승왕의 의미나 관계가 모호해지고 오로지 단군만이 남게 되었는데, 그나마도 제천 전통이 포기된 시대상황 하에서 단군이 과거 스승왕으로서 제천의 신격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고 단지 민족시조로 표방할 뿐이었다. 이러한 변화가 선도제천문화가 민속·무속화(종교화)해가는 주요 배경적 요인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