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배달국의 ‘선도 천자제후제’와 홍익인간·재세이화

3. 배달국말 치우천왕의 중원 경영과 중원지역의 ‘패권적 천자제후제’

앞서 중원지역의 북두-일월 표상을 통해 선도 천자제후제가 밝음의 위계 기준을 표방하였음을 살펴보았다. 본절에서는 배달국말 치우천왕의 중원 경영을 통해 선도 천자제후제의 실제 운영 모습을 살펴보되 특히 중원지역에서 선도 천자제후제를 변용한 ‘패권적 천자제후제’가 등장, 훗날 오히려 패권적 천자제후제가 동아시아 천자제후제를 대표하게 되었음에 주목해보겠다.

배달국 말기는 선도문화가 ‘교화·사도’의 방식에서 ‘치화·군도’의 방식으로 바뀌어가는 일대 전환기로 스승왕의 사상·종교적 역할 보다는 정치·군사적 역할의 비중이 높아져 가는 때였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중원지역에서 ‘생명 → 조화 → 홍익’이 아닌 ‘힘’의 기준에 따른 패권정치가 시작되어 중원 전체가 일대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에 배달국의 스승왕이 직접 나서서 사태를 해결하게 되니 치우천왕의 중원 경략 사건이 그러하다. 치우천왕의 중원 경략은 흔히 오해되듯이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배달국말 선도문화권의 변화, 더 나아가 선도문화권 경영 방식이 ‘교화·사도’ 방식에서 ‘치화·군도’ 방식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상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치우천왕의 중원 경략 이후 선도문화권은 다시 안정을 찾게 되었으나 이미 시대는 치화·군도의 시대로 흘러 중원 일대의 패권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황제에서 시작된 패권정치의 맹아는 황제계 오제(황제-전욱顓頊-제곡帝嚳-요堯-순舜)를 거치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황제계는 배달국이 주도하는 선도 천자제후제에서 이탈하여 중원을 중심으로 하는 패권적 천자제후제를 만들어내게 된다. 오제 중에서도 이러한 중원적 질서는 완성한 인물은 요이다. 전욱 이후 요에 이르러 황제계의 패권정치가 극성하게 된다. 전욱 이후 황제의 증손자인 제곡(帝嚳) 고신(高辛)이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제곡에게는 방훈(放勳, 요)과 지(摯)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지가 왕위를 물려받았다가 곧 방훈이 즉위하게 되니 곧 요임금이다. 이즈음 배달국은 단군조선으로 승계되어 있었다. 『사기』에서는 요와 순이 사흉(四凶)인 환두(驩兜), 삼묘(三苗), 공공(共工), 곤(鯀)을 변방으로 추방했다고 하였으니 이들을 대표적인 단군조선계 세력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 요는 단군조선계 세력들을 중원에서 몰아내고 황제계가 주도하는 새로운 천자제후 질서를 구축하였다.

요가 곧 관문(關門: 국경 : 필자주) 밖으로 나가 무리를 모아 묘예(苗裔: 삼묘三苗 : 필자주)를 쫓아냈다. 묘예는 황궁씨(黃穹氏)의 후예였으며, 그 땅은 유인씨(有因氏)의 고향이었다(『징심록』「부도지」에서는 배달국 환웅시대 이전을 ‘황궁씨-유인씨-환인씨’ 3대로 나누고 있는데, 시기적으로 환국시대에 배대됨 : 필자주). 후대에 임검씨(壬儉氏 : 단군 왕검 : 필자주)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부도(符都: 천부사상을 간직하고 있는 도읍이라는 뜻으로 단군조선의 수도를 의미 : 필자주)를 비우자 그 비어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습격하니 묘예가 마침내 동·서·북으로 흩어졌다.…요가 곧 9주(九州: 단군조선의 9주를 모방함 : 필자주)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자신이 오중(五中: 삼원오행 표상중 ‘천부’ 중심점을 의미: 필자주)에 사는 제왕이라 칭하고 당도(唐都)를 세워 부도와 대립하였다. (『要正澄心錄衍義』符都誌「堯乃出關聚徒 驅逐苗裔 苗裔者黃穹氏之遺裔 其地有因氏之鄕也 後代壬儉氏率諸人出於符都而不在 故堯乘其虛而襲之 苗裔遂散去東西北之三方 堯乃劃之九州而稱國 自居五中而稱帝 建唐都 對立符都」)

‘부도(符都)’와 ‘당도(唐都)’의 대비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듯이 요는 단군조선계 세력들을 몰아내고 급기야는 선도문화권에서 이탈하여 중원 중심의 새로운 천하관을 주창하였다. 중국적 성군(聖君)의 대명사인 요·순이 실상 선도문화권의 오랜 ‘생명→조화→홍익’ 전통에서 벗어나 패권주의적 천하질서를 구축한 인물이었다는 점은 종래 중국측의 기록에만 의존해왔던 동아시아 상고사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 더욱 주목되는 점은 선도적 시각에서 요를 비판하는 요지이다. 곧 요가 배달국 중심의 정치질서에서 이탈해갔던 점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선도문화의 일대 원칙인 ‘생명→조화→홍익’이 아닌 ‘힘’을 기준으로 하는 패권적 세계관을 주창하고 또 이러한 세계관에 따라 패권적 질서를 만들어낸 점을 비판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선도 전통에서는 상고 이래 선도문화권의 삼원오행론(기·화·수·토·천부론)이 요임금에 이르러 음양오행론(목·화·토·금·수론)으로 바뀌었다고 본다. 선도적 시각에서 요의 음양오행론을 비판하는 요지는 첫째,

소위 오행(목·화·토·금·수 오행론: 필자주)은 천수(天數)의 이치에 없는 것이다.···그 배성지물(配性之物)은 금(金)·토(木)·수(水)·화(火)·토(土) 중에서 왜 금·토를 따로이 구별하는가? 만약 약간의 차이로 구별한다면 기(氣)·풍(風)·초(草)·석(石) 따위는 왜 않는가?…더욱이 물성(物性)을 어떤 이유로 수성(數性)에 짝지우는가?…그러므로 오행의 설은 참으로 황당무계하다. 이로써 인간세상의 증리(證理)를 무혹(誣惑)시켜 하늘의 화를 만드니 어찌 두렵지 않는가?(『要正澄心錄衍義』 符都誌「且其所謂五行者 天數之理 未有是法也···又其配性之物 金木水火土五者之中 金土如何別立乎 以其所以亦將別之則氣風草石之類 豈不共擧耶…尤其物性 由何而配於數性乎…故五行之說 眞是荒唐無稽之言 以此誣惑證理之人世 乃作天禍 豈不可恐哉」)

이다. 기·화·수·토·천부는 수성(數性), 곧 ‘존재의 법칙’ 차원인데, 이를 목·화·토·금·수와 같이 물성(物性), 곧 ‘물질’ 차원으로 대체한 문제를 지적하였다. 둘째,

(요가) 일찍이 제시(祭市 : 배달국·단군조선의 천왕이 제후들을 불러 모아 제천을 행하고 선도 교화를 행하는 모임 : 필자주) 모임에 왕래하고 서쪽 보(堡)의 간(干)으로부터 도를 배웠으나, 수(數)에 부지런하지 못하였다. 스스로 구수오중(九數五中 : 기·화·수·토·천부론, 삼원오행론 : 필자주)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중오(中五 : 삼원오행 표상의 천부 중심점 : 필자주) 이외의 여덟은(삼원오행 표상의 외곽 8기: 필자주) 하나로써 여덟을 통어하며 안(內)으로써 밖(外)을 제어하는 것이라 하여(이내제외以內制外) 오행의 법(목·화·토·금·수론, 음양오행론: 필자주)을 만들어 제왕(帝王)의 도를 주창하니 소부(巢夫)·허유(許由) 등이 꾸짖고 거절하였다.(『要正澄心錄衍義』符都誌「曾來往於祭市之會聞道於西堡之干 然素不謹數 自誤九數五中之理 以爲中五外八者 以一御八以內制外之理 自作五行之法 主唱帝王之道 巢夫許由等甚責以絶之」)

이다. 삼원오행의 중심점 ‘천부’의 실제적 의미인 ‘생명→조화→홍익’이 음양오행에 이르러 ‘힘’으로 왜곡된 문제를 비판한 것이다. 곧 삼원오행의 중심점 ‘천부’는 기·화·수·토를 조화롭게 엮어주는 ‘조화점(調和點)’의 의미인데, 음양오행론에 이르러 중심점 ‘토’는 ‘이내제외(以內制外: 안이 밖을 제압한다는 의미)’, 곧 힘센 중앙의 ‘토’가 외곽의 목·화·금·수를 제압하는 ‘통제점’의 의미로 변질되었음을 비판하였다. 또한 ‘천부 조화점’이 ‘토 통제점’으로 변개되면서 생겨나게 된 현실 문제에 대해서도 극론하였다. 곧

요는 천수(天數)를 몰랐다. 땅을 쪼개서 천지를 제 멋대로 하였다. 기회를 틈타 독단(獨壇: 스스로 천자가 되어 제천하였음을 의미: 필자주)을 만들고, 사사로이 개나 양을 기르기 위해 사람을 몰아낸 후 자칭 제왕이 되어 혼자서 처리하였다. 세상은 토석(土石)이나 초목처럼 말이 없고, 천리(天理)는 거꾸로 흘러 허망에 빠져버렸다. 이것은 거짓으로 천권(天權)을 훔쳐 사욕의 횡포를 자행한 것이다.…부도의 법은 천수의 이치를 명확하게 증명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본무(本務)를 수행하게 하고 그 본복(本福)을 받게 할 따름이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비록 선후는 있으나, 높고 낮음이 없으며, 주는 자와 받는 자는 비록 친숙하고 생소한 것은 있으나, 끌어들이고 몰아내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해가 평등하며 제족(諸族)이 자행(自行)하는 것이다. (『要正澄心錄衍義』符都誌「堯誤天數 割地爲自專天地 制時爲獨壇利機 驅人爲私牧犬羊 自稱帝王而獨斷 人世黙黙爲土石草木 天理逆沒於虛妄 此假窃天權 恣行私慾之暴也…故符都之法 明證天數之理 使人遂其本務而受其本福而已 故言者聞者 雖有先後 無有高卑 與者受者 雖有熟疎 無有牽驅 故四海平等 諸族自行」)

잘못된 사고가 퍼져나가면서 힘센 자가 통제자, 곧 제왕(帝王)이 되어 힘이 약한 자들을 통제하는 권력지배의 이데올로기로 전환하게 된 문제를 지적하였다. 중원지역에서 패권주의 사조가 등장, 배달국의 삼원오행적 세계관을 음양오행적 세계관으로 변개하였고 결국 음양오행론은 패권주의적 세계관을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고착화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음양오행론은 ‘오행(五行)의 화(禍)’로 극론되었다.

요가 선도문화권의 오랜 세계관인 기·화·수·토·천부론을 목·화·토·금·수론으로 변개한 이유, 특히 목·화·토·금·수 중에서도 그 중심을 토로 삼은 이유는 황제 헌원이 갖는 상징성 때문으로 보인다. 곧 치우천왕과의 전쟁을 거치면서 황제는 중원지역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매김되었는데, 황제가 갖는 이러한 상징성으로 인해 토를 중심자리로 밀어 넣고 외곽에 목·화·금·수를 배치하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중원식 오행론, 또 중원식 천자제후제가 고안된 것이다.

‘기·화·수·토·천부론’에 기반한 배달국의 천자제후제에 의할 때 토덕의 황제는 천왕의 제후에 불과하지만, ‘목·화·토·금·수론’에 기반한 중원의 천자제후제에 의할 때 토덕의 황제는 천왕의 지위가 되기 때문이다. 황제는 만년 치우천왕에게 승복하고 선도문화를 수용하였지만 그 후손인 요대에 이르러 중원 중심의 음양오행론적 세계관, 또 중원 중심의 천자제후 제도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요는 선도문화권에서 이탈, 스스로 천자가 되어 중원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패권적 정치질서를 만들어내었다. 이 과정에서 삼원오행론을 음양오행론으로 변개, 패권적 정치질서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활용하였다. 황제에서 전욱을 거쳐 이어진 패권주의적 움직임이 세계관으로, 또 정치질서로 가시화된 것이었다.

정리하자면, 황제에서 시작된 패권정치의 맹아는 황제계 오제를 거치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황제계는 배달국이 주도하는 선도적 세계관과 선도 천자제후제에서 이탈하여 중원이 중심이 되는 패권적 세계관과 패권적 천자제후제를 만들어내었다. 오제 중에서도 이러한 중원적 질서는 완성한 인물은 요이다. 요는 선도문화의 삼원오행적 세계관을 음양오행적 세계관으로 변개하였는데 삼원오행이 음양오행의 세계관으로 바뀌면서 중심점 ‘천부’는 ‘토’로 변개되고 그 의미도 ‘생명→조화→홍익’에서 ‘힘’으로 변개, 황제계가 주도하는 패권정치를 뒷받침하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세계관과 정치질서는 중원지역에 대한 단군조선의 영향력이 강고하였던 단군조선 중기까지는 기왕의 선도적 세계관과 정치질서에 의해 견제되었지만 주대(周代) 이후 서서히 세력을 얻기 시작하여 한대(漢代) 이후부터는 동아시아사회를 대표하는 새로운 세계관과 정치질서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는 19세기 근대사회가 도래하기 전까지 무려 2천여년 간이나 지속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여전한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세계관과 정치질서가 나타나게 된 배경, 그 사상적 입론점 등이 정확하게 인지되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