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파람북, 2022)는 조숙의 조각가가 자신의 예술적 지향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예술론이다.

저자의 작품을 관람한 이들 가운데 예술에 열망이 있는 이들은 저자가 작품을 창작하면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어떤 스토리와 사연이 있는지, 작품의 동기 등을 궁금해한다. 이들에게 《숭고》에 일상에서 저자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물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지는 것들이 저자의 작품에 배어들어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조심스럽게 열어보인다.

"근래에 와서 내가 다루고 있는 화선지에 먹물을 사용한 회화 작품은 주로 〈여명(黎明)〉 시리즈이다. 평면의 종이에 빠르고 자연스럽게 번져가는 먹물은 조각작업에서 느낄 수 없었던 회화적 자유로움, 속도와 시간성으로 민감하게 내 안에 스며들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더 영롱해지는 빛, 쉴새없는 움직임들, 탄력에 의한 역동적인 힘, 공백(blankness)은 내면세계의 근원적 원형(原型 Archetype)의 암시적 매개로 표출되어졌다."

저자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 가운데 자녀를 예술가로 키우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전하는 내용도 담았다. 예술가의 앞날에 대하여 길을 묻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조언이다.

예술은 어렵고 모호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녀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하면 겁이 납니다.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겠어요”라고 호소하는 학부모에게 내가 "그들의 의기를 꺾지 마세요"라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다급한 학부모와 자녀, 그 절대적인 관계에서 오는 호혜성(相互性)에 있어서 긴장감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나아가야 할 비전은, 먼저 서로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면서 내 안의 나 자신과 화해의 길을 모색해 가는 여정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드리고 싶었고, 이 과제들을 더 이상 미루거나 지체할 수 없다고 느껴졌다. 이 책은 그 간절한 내 마음을 담은 다양한 기록들이다.

현대인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줄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화려한 기술 문명의 발전도 그 기술 자체만으로는 결코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인간 지성에 바탕을 둔 인문과학도 한계가 있다. 그의 존재가 본래 어디서부터 창조되고 유래했는지 또 궁극적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는 인간 존재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에는 전혀 답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저자는 피상적인 삶에 몰린 현대인에게 우선 ‘고요한 시간’을 가질 것을 제안하며, 누구든지 갈 수 있는 이 고요한 길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숭고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이야기한다.

조숙의 지음 "숭고" 표지. [사진 제공 파람북]
조숙의 지음 "숭고" 표지. [사진 제공 파람북]

저자는 우리 자신이 내면 깊숙이 안고 있는, 이유 없이 당하는 가시와 같은 ‘고통의 문제’에 주목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의 생물학적 구조나 심리상태, 사회생활, 심지어 영혼의 문제까지 진지하고 성실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당하는 고통을 간과한다면 인간의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를 빼놓는 것이다.

이 고통의 문제가 예술작품에서는 매우 중요한 가치로 등장한다. 인류가 사랑한 예술작품에는 반드시 여러 형태의 고통이 아로새겨져 있고 동시에 숭고한 정신을 드높인다. 훌륭한 작가는 그 고통을 잘 표현하는 작가이며, 동시에 숭고한 인간 정신을 드높인다. 이러한 예술작품으로 저자는 1506년 로마의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인근의 포도밭에서 발견된 작자 미상의 대리석 작품 〈라오콘(Laokoon)〉을 소개한다. 이는 인간의 가장 처절한 고통의 순간을 표현한 명작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고통을 당하지 않고, 고통당하는 사람을 보지 않고 사는 것을 모두 원한다. 이에 관해 저자는 "그런 상황은 동시에 인간을 정신적으로 연약하게 하거나 비인간적으로 만든다"고 본다. 인간의 고통이 가지는 그 엄청난 의미와 가치를 생생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기회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많은 현대인을 피상적으로 만들고 비인간적으로 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사랑을 느낀다면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고통은 자신의 희생으로 받아들여서 기꺼이 스스로 자원하거나 거부하지 않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의 재앙과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간 고통을 회피해온 결과에 관해서 깊이 절감하고 있다. 고통이 따르는 희생과 절제는 고귀한 것이다. '절제'란 우리 스스로 자원해서 고통을 나누는 것이며 윤리적 행동의 기본이다. 우리의 작은 절제가 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정의롭게 할 수 있을 것이며, 나 자신과 이웃을 구원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우리는 아무도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통을 당해본 사람들은 그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이 곧 고통의 신비이고 역설이다."

저자는 신비로운 세상을 창조한 인격적인 사랑의 ‘창조주’에 관해서도 주목한다. 인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것’에 대해서도 접근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영혼을 거두어들이거나 정신을 집중시키는 일, 인간 자신 안의 고결하고 고요한 상태에 대해서 이해하고, 그런 것들에 대한 가치 부여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거다.

조숙의 저자는 창작활동과 더불어 20여 년간 교직 생활을 했다. 2015년 한국천주교주교회가 주관하는 ‘가톨릭 미술상 본상’을 수상하고 한국여류조각가회 회장을 역임한 중견 조각가.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인간의 내면에 깃든 신성과 숭고의 미학을 탐구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