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대표적 스테디셀러 가운데 하나인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김춘미 옮김, 2022)이 단행본으로 첫선을 보인다. 《인간 실격》은 2004년 5월 처음 출간된 이후 독자들의 끊임없는 관심에 힘입어 2022년 5월 100쇄를 돌파했다. 단행본 《인간 실격》은 이를 기념한 특별판 양장본이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표지.  [사진 제공 민음사]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표지. [사진 제공 민음사]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1948년 6월부터 8월에 걸쳐 잡지 《전망(展望》에 연재된 소설이다. 소설 연재 중 작가는 6월 13일 다마강 상수원에서 자살하여 큰 충격을 던진다. 패전 후 실의와 도탄에 빠진 일본 독자들에게 절체절명 정신적 지주였던 다자이의 급작스런 자살과 그 과정을 소설 속에서 한 가닥이라도 부여잡거나 유서로라도 읽으려는 심정으로 작가 사후에 연재된 7~8월분 잡지에 독자들이 쇄도했다.

전후(戰後) ‘멸망의 백성’을 자처한 다자이 오사무는 멸망의 노래를 한다는 신조로 작풍을 쇄신함으로써 이른바 데카당스 문학, 무뢰파 문학의 대표 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인간 실격》은 그러한 기조의 정점에 놓인 작품으로서 다자이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은 작가가 자기 생애에서 가장 험난했던 젊은 시절에 겪었던 충격을 원체험으로 하고 있다. 1937년 이른 봄 작가는 아내 하츠요와 자살을 기도하지만 실패, 결국에는 그녀와 헤어지고 소설을 쓰지 않은 채 데카당스 생활에 빠져든다. 작가는 바로 이 시점에서 '인간으로서 자신은 죽었고 여생은 예술가라는 기묘한 동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 진단한다.

《인간 실격》은 화자인 ‘나’가 요조의 사진 세 장에서 받은 인상에 관해 쓴 서문, 요조가 자신의 삶을 독백처럼 써 내려간 수기 세 편, ‘나’가 요조의 노트와 사진을 입수한 경위를 서술한 후기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철들었을 때부터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신뢰할 수 없으며, 광기 어린 비정상적인 ‘인간 공포’를 마음속에 안고 겁에 질려 살고 있다. 술에, 여자에게, 마약에 빠져 주변 인간들도 모두 자신의 불행에 휘말려 점점 떨어져 나가 결국 그는 인간 실격자-폐인이 된다.

요조는 폐인이 된 채 본가에서 마련해 준 변방의 오래된 시골집에서 늙은 식모와 기괴한 동거를 하고 있다. 겨우 스물일곱 살이지만 남들 눈에는 이미 마흔이 넘어 보이는 요조가 마지막 수기를 맺으며 읊조린다.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금까지 제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163]

신의와 신뢰보다 타산과 위선으로 적당히 굴러가는 허위와 가식투성이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가 돋보이는 《인간 실격》에는 실제 다자이 삶의 세부들이 속속들이 녹아 있다. 고리대금업으로 부유해진 집안에서 보낸 유년기, 학생 시절의 갖은 비행과 좌익 단체 활동, 불특정한 여성들과의 분방한 연애 및 수차례의 동반 자살 기도, 알코올과 마약 중독, 정신 병원 수용 경험 등이 주인공 요조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재현된다. 인간 사회에 동화하지 못한 채 현실에서 도피하여 극단적인 일탈과 퇴폐적인 행각으로 자신을 무참히 파괴해 가는 젊은 주인공의 초상은 다자이의 자화상이나 다름없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입체 표지. [사진 제공 민음사]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입체 표지. [사진 제공 민음사]

현재까지 일본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1914)과 더불어 가장 많이 판매된 소설인 《인간 실격》은 저명한 문학 평론가 오쿠노 다케오가 "일본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이렇게까지 추구(追究)한 작품은 달리 없을 것"이라고 극찬한 작품이다. 다자이 오사무 특유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 도저한 비관주의와 자기 파멸적 정서로 2차 세계 대전 패배 후 우울과 절망에 빠진 일본의 수많은 젊은이를 사로잡았으며, 마치 청춘 시절의 통과 의례와도 같은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인간 존재 자체와 인간들이 서로 맺는 관계에 대한 근원적 공포와 회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순수한 젊은이가 겪는 지독한 방황과 타락의 과정을 그린 《인간 실격》은 기만적이고 폭력적인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청년들에게 특히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