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대중의 반역

13. 최대의 위험, 국가

대중은 어떤 운명을 갖고 태어났는가? 오르테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대중은 사회가 질서 있게 움직이면 스스로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대중의 사명이다. 대중은 지도받고, 영향받고, 대표를 보내고, 조직되고, 나아가 대중을 그만두기 위해, 혹은 적어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그 모든 것을 스스로 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대중은 그들의 삶을 뛰어난 소수자로 구성된 상위의 권위에 맡길 필요가 있는 것이다.”

대중의 삶을 책임지는 뛰어난 소수자, 이들이 없다면 인류는 본질적으로 지속할 수 없다는 게 오르테가의 주장이다. 그런데 유럽은 꼬박 한 세기 동안 이 명백하기 짝이 없는 사실을 보지 않으려고 타조처럼 머리를 그 큰 날개 밑으로 들이밀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에 앞서 오르테가는 ‘1 밀집의 사실’에서 “사회는 언제나 소수자와 대중이라는 두 요소로 구성된 역동적 통일체이다”라고 한 바 있다. ‘2 역사 수준의 상승’에서 “나는 지금까지 인간 사회는 원하든 원치 않든 본질이 언제나 귀족주의적이고, 심지어 귀족주의적이면 귀족주의일수록 사회이고, 귀족주의적인 것을 그만두면 사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해왔고, 날이 갈수록 그러한 확신이 더해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오르테가는 “진정한 철학-이것이 유럽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이 다시 유럽을 지배하는 날이 온 날에는 인간이란 본질상 좋든 싫든 자신보다 상위의 권위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임이 다시 한번 인식될 것이다. 만약 그 권위를 자력으로 발견할 수 있다면 이는 뛰어난 인간이고, 만약 자력으로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는 대중이기때문에 뛰어난 인간으로부터 그러한 권위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사회의 질서가 무너지면 대중은 스스로 행동하게 된다. 자신보다 상위의 권위, 심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르테가는 먼저 대중이 독자적인 행동을 시도하는 것이 대중의 반역임을 말한다.

“대중이 독자적인 행동을 시도하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는 일이다. 대중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에 내가 대중의 반역을 말하는 것이다. 진실로 반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거스르는 경우이다.”

그런데 대중이 스스로 행동할 때는 사형(私刑)이라는 단 하나의 방법을 사용하여 행동한다. 그 이유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의 예로 오르테가는 미국의 ‘lynch law’을 든다. 미국은 어떤 의미에서 대중의 천국이기 때문에 사형법(lynch law)이 생겨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lynch law는 미국 버지니아주 피트실바니아의 윌리엄 린치(1742-1820)가 1805-15년 법정을 개설하고 주로 흑인들을 법절차를 지키지 않고 교수형을 집행한 것에서 유래했다. 오르테가는 대중이 승리를 거두고 있는 오늘날 폭력이 개가를 올리고 그것이 유일한 수단(ratio), 유일한 교의가 되고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는 것이다. 그가 폭력의 규범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 벌써 몇 년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냉소적으로 확립된 규범으로서 폭력의 위상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다른 형태일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폭력의 지배를 받을 것이라고 오르테가는 보았다.

그런데 이런 폭력도 위험하지만, 오늘날 유럽 문명을 위험하는 최대의 위험이 있다. 이 위험 역시 문명을 위협하는 다른 위험들과 마찬가지로 이 또한 유럽 문명에서 생겨났다. 심지어 유럽 문명의 영광 중 하나이기도 하다. 즉, 그것은 근대 국가이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유럽에서 국가라는 배는 중세에 시민계급과는 매우 다른, 감탄할 만한 용기와 지도력과 책임감을 지닌 사람들, 즉 귀족들의 손에 의해 건조되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유럽 국가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라는 배’라는 말은 시민계급이 떠올린 비유인데, 그들은 자신들을 폭풍우를 품은 전능한 대양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귀족들은 두뇌가 아니라 심장으로 살았다. 그들은 극히 빈약한 지성밖에 갖지 못하고 감상적이고 본능적이며 직관적이며 요컨대 비합리적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합리화를 필요로 하는 기술을 하나도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들은 화약조차 발명하지 않았다. 이들은 새로운 무기를 발명하지 못해 시민계급이 오리엔트 그 밖의 땅에서 화약을 수입해 이용했고 그로 인해 전쟁터에서 전사 귀족, 기사를 자연스럽게 물리치는 것을 그대로 방치했다.

시민계급, 부르주아지가 공권력을 쉽게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권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국가란 하나의 기술, 사회적 차원에 속하는 통치의 기술이므로 '구체제'는 18세기 말에 이르러 오히려 약체 국가가 되어 모든 부문에 걸쳐 광범위한 반역에 시달렸다. 당시 국가권력과 사회권력의 불균형이 너무나 커서 사를마뉴 대제 시대와 비교하면 18세기 국가는 퇴화한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프랑스혁명과 1848년까지 거듭된 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사회의 힘과 공권력간의 막대한 힘의 격차였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을 통해 부르주아지가 공권력을 장악하면서 공권력이 크게 성장했다. 한 세대가 조금 지난 뒤에는 혁명을 종식시킬 만큼 강력한 국가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1848년, 제2세대 부르주아 정부가 시작된 이후 유럽에는 진정한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혁명의 구실이 없어서가 아니고 그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수준이 사회권력의 수준과 동일해진 것이다. 혁명이여, 영원히 안녕!

이러한 국가가 우리 시대에는 “완벽한 기능을 갖추고 그 수단의 양과 정확성 면에서 놀라운 효율성을 갖춘 경이적인 기계가 되었다”고 오르테가는 본다. 그 영향력도 엄청나다. “국가는 사회의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단추를 한 번 누르기만 하면 거대한 지렛대들이 작동하여 사회의 모든 부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부르주아가 강력하게 해놓은 국가를 대중은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대중은 국가를 바라보며 찬탄한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주는 것으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국가가 일부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며, 과거에는 유효했지만 미래에는 사라질지도 모른 가치와 전제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다른 한편 대중은 국가 속에서 익명의 권력을 본다. 그리고 그 자신도 익명의 보통사람이라고 보기 때문에 국가가 자신의 것이라고 믿는다.”

대중은 국가를 이렇게 보기 때문에 만일 사회생활에서 어려움, 갈등, 문제가 발생한다면 국가가 즉각 개입하여 직접 책임을 지고, 어려움을 거대하고 반론의 여지 없는 수단을 강구하여 해결해줄 것을 요구할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문명을 위협하는 최대의 위험이다”고 오르테가는 경고한다. 즉 삶의 국유화, 국가의 간섭주의, 국가에 의한 모든 사회적 자발성의 흡수이다. 이것을 결국 인간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유지, 양육, 발전시키는 역사적 자발성의 말살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은 ‘나는 국가이다’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틀린 것이다. 현대의 국가와 대중은 오직 익명이라는 점에서만 일치한다. 

그런데 대중은 실제로 자신이 국가라고 믿고 있으며 모든 구실을 다 붙여 국가를 움직여 이용하고, 정치, 사상, 산업, 그 어떤 분야에서든 국가의 기능에 방해가 되는 창조적 소수를 분쇄하려고 한다.

오르테가는 이의 결과는 치명적이라고 본다. 국가의 개입으로 사회적 자발성은 계속 봉쇄될 것이고, 새로운 씨앗은 결코 열매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사회는 국가를 위해 존재하게 되고 인간은 정부라는 기계를 위해 존재하게 된다. 게다가 국가는 자신의 실존과 유지를 생명체에 의존해야 하는 기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 사회의 골수까지 빨아먹은 다음 해골만 앙상한 채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는 생명체의 죽음보다도 더욱 창백한 녹슨 기계의 죽음이다. 이것이 고대 문명의 처참한 운명이었다.

오르테가는 국가 개입주의는 인민을 국가라는 단순한 장치, 기계의 먹이인 고기와 빵으로 변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다. 해골이 자기 주변에 있는 고기를 먹고 건축가가 집의 주인이 된다.

오르테가에 따르는 국가주의는 일종의 규범으로 자리잡은 폭력과 직접행동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형태이다. 대중은 국가라는 익명의 기계를 통해서 또는 그것을 수단으로 하여 자신을 위해 스스로 행동한다.

유럽 국가들은 내부의 난제들과 광장히 심각한 경제, 법, 공공질서의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대중의 지배 아래 국가가 개인과 집단의 독립성을 말살하고 결국 미래를 황폐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사례로 오르테가는 모든 국가에서 경찰력이 엄청나게 증가한 점을 든다. 질서 유지를 위해 경찰력을 증원했지만, 결국은 불가피하게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자신들이 유지해야 할 질서를 스스로 정의하고 결정할 것이다.

1800년 경 산업노동자가 생겨나자 프랑스는 경찰력을 증원했다. 영국은 경찰을 창설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무질서를 자유의 대가라고 생각하고 체념했다. 프랑스에서는 가택수색과 감사, 푸셰의 갖은 음모에 시달렸다. 영국인은 국가를 제한하기를 원한다.

푸세(원명 조지프 푸세Joseph Fouché, 1759?.5.21 ~ 1820.12.25.)는 프랑스 혁명기의 흑막적인 인물이면서 근대 비밀경찰의 창시자라 할 수 있다. 냉혹하고 속을 남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는 권모가(權謀家)로 이름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