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전 세계인의 사랑과 공감을 받고 있는 K콘텐츠에는 천 겹의 서양과자 ‘밀푀유’처럼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한국의 고유문화와 수많은 역사적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대중과 소통하는 K콘텐츠 속에 담긴 한국 고유의 문화와 정서는 무엇일까요? K스피릿이 한 겹씩 풀어봅니다.

최근 MBC에서는 카리스마 마술사 차차웅과 열혈형사 고슬해 순경의 좌충우돌 코믹수사극 ‘지금부터 쇼타임’이 방영 중이다.

K드라마 '지금부터 쇼타임!'에서 카리스마 마술사 차차웅(박해진 분)은 이승에 머무는 귀신들을 직원으로 부리며 마술을 선보인다. [사진 MBC '지금부터 쇼타임!' 방영 영상 갈무리]
K드라마 '지금부터 쇼타임!'에서 카리스마 마술사 차차웅(박해진 분)은 이승에 머무는 귀신들을 직원으로 부리며 마술을 선보인다. [사진 MBC 드라마 방영 영상 갈무리]

‘꼰대인턴’으로 MBC 연기대상을 수상한 박해진 배우가 2년 만에 차차웅을 맡아 아직 이승에 머무는 귀신들을 직원으로 부리며 그야말로 신출귀몰(神出鬼沒)한 마술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귀엽고 허당 매력의 고슬해 순경은 진기주 배우가 맡았다. 고 순경은 차차웅과 호흡을 맞춰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불의의 사건 속 억울한 영혼의 맺힌 한을 풀어주고 복을 나누며 사건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그밖에 K팝 아이돌 ‘덕질’에 빠진 몸주신 최 검(정준호 분), 택배기사로 일하다 교통사고 사망 후 아내와 딸을 돌보려 차차웅의 매직팩토리 직원이 된 남상군(정석용 분), 조폭 출신 총각귀신으로, 처녀귀신과의 영혼결혼식 성사를 약속받고 취업한 마동철(고규필 분), IT천재 공대생이었으나 게임 길드전 출전과 신작 애니, 미드의 다음 시즌을 보려고 이승에 머무는 강아름(박서연 분) 등 직원 귀신들의 면면도 다채롭다.

이 드라마는 한국인의 삶 속에 오랫동안 깃들어온 문화 중 하나인 무(巫)를 재치있게 다루며 우리 현실의 문제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차차웅’은 신라 2대 남해왕, ‘고슬해’는 고수레 문화에서 유래

예사롭지 않은 남주인공의 이름인 ‘차차웅’은 신라 2대 남해왕에게 붙여진 신라 고유의 왕호에서 비롯되었다. 통일신라 초반 역사가인 김대문은 차차웅이 신라에서 ‘무(巫)’를 일컫는 말이었다고 했다. 이는 신라 초기 왕이 제사장으로서 성격을 겸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남해 차차웅(재위기간 서기 4년~24년)은 혁거세의 적자로, 성격이 침착하고 온후하며 지략이 많았다고 했다. 낙랑과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고, 메뚜기떼로 인해 굶주리는 백성에게 창고를 열어 구제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최근 방영된 '지금부터 쇼타임!'에서는 주인공들의 전생에 특별한 인연으로 얽혀있음이 밝혀진다. [사진 MBC 드라마 방송 영상 갈무리]
최근 방영된 '지금부터 쇼타임!'에서는 주인공들의 전생에 특별한 인연으로 얽혀있음이 밝혀진다. [사진 MBC 드라마 방송 영상 갈무리]

 

여주인공 이름 ‘고슬해’는 고사나 굿, 제사, 그리고 들판에서 음식을 먹기 전 조금 떼어 허공에 던지며 ‘고수레’하고 외치던 데서 따왔다. 농사가 풍년이 들고 재난이 없으며 신이 안전하게 지켜 줄 것을 기원하는 행위이다.

고수레 또는 고시래, 고씨례(高氏禮) 등 다양하게 불리는데, 기원에 관해서는 풍수 대가 도선의 이야기를 비롯해 21개 지역에서 36편의 설화가 전해진다. 그중 고려의 최영년이 지은 《해동죽지(海東竹枝)》상(上)편에 단군 때 고시씨가 농사를 가르쳐준 은공을 잊지 않고, 지금까지 농부가 들에서 밥을 먹을 때 한 술 떼어 던지며 ‘고시래’라며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또한, 《글로벌시대의 음식과 문화》에는 환인 3세인 고시리(古是利) 환인께서 농사법을 발견해 식생활이 풍요해지자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감사 인사를 예로 표시하게 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고수레 밥은 소원을 들어줄 신(神)은 물론 살아있는 동물과 곤충 등이 먹는다. 대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나도 먹고 너도 먹고 우리 함께 살자는 공생의 마음과 생명의 존중 의식이 담겨 있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동식물, 무생물까지 인격체로 대하며 남에게 베풀고 욕심을 덜어내는 정신이 깃든 인간미 넘치는 풍속이다.

유동식 교수 “한국문화의 지핵은 무(巫)”, 부정적 인식 벗어나 고유 문화적 자산 발견해야

그런데 과거 드라마에서 무녀, 무당은 궁중 암투에서 상대를 저주하는 데 동원되거나 사람들의 돈, 권력 등 욕망을 채우는 데 일조하거나 사람들에게 미지의 영역을 담보로 혼란과 두려움을 주는 존재로 많이 소비되었다. 왜일까?

고려 후기부터 조선까지 성리학이 지배하는 문화 속에서 무속은 음사좌도(淫邪左道)라고 하여 배척하고 멸시하는 풍조가 일어났고, 일제 강점기에는 다중집회로 치부되어 탄압당했다. 또한, 해방 후 60년대 말 무속은 미신이라 여겨 타파의 대상이었고, 70년대 새마을운동 때에는 무속을 비롯한 민간신앙뿐 아니라 전통문화 자체가 대한민국의 근대화 발전을 막는 전근대적 유산으로 폄하되었다.

70년대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는 고려 후기 성리학자 안향(安珦, 1243~1306)이 경북 상주의 판관으로 부임하여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여자무당들을 잡아 곤장을 치고 칼을 씌워 혼낸 일화를 실었다. 초등교육 교과서를 통해 무(巫), 무속은 비과학적인 미신이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켰다.

그러나 올해 101세인 종교 및 무속연구의 대가 유동식 연세대 은퇴교수는 “한국문화의 지핵(地核, 중심핵)은 무교(巫敎)”라고 규정하고, “한민족의 행동 양식을 결정할 가치체계와 세계관을 적지 않게 지배하였다”라고 했다. 그는 “무교 문화는 신과 인간이, 하늘과 땅이, 삶과 죽음이, 남성과 여성이 거리도 모순도 없이 ‘하나의 세계’를 이룬 문화”라고 소개했다.

무(巫)는 한자의 생김생김에서 알 수 있듯 하늘과 땅, 사람을 매개하는 행위였고, 고대에서 국가종교였다.

MBC 드라마 '지금부터 쇼타임!'은 무(巫)를 재치있게 다루고 있다. [사진 MBC 드라마 방영 영상 갈무리]
MBC 드라마 '지금부터 쇼타임!'은 무(巫)를 재치있게 다루고 있다. [사진 MBC 드라마 방영 영상 갈무리]

단군(檀君)과 동명(東明), 불구내(不矩內, 박혁거세의 다른 이름), 차차웅(次次雄) 등은 정치적 군장이면서 제사장 역할을 겸해 국가적인 제의(祭儀)를 주관했다. 역사 기록 속 국가적 제의로는 삼한(三韓)의 제천의례,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의 무천(舞天) 등 제천의식이 있다. 집단의 구성원은 이러한 제의를 통해 집단개념을 형성하며 일체감을 갖게 될 뿐 아니라 공동의 목적을 확인했다.

후한서(後漢書)와 삼국지(三國志)에 나타난 한민족의 제천행사는 “연일 크게 모여 마시고 먹으며 노래하고 춤추었다. 밤낮없이 길에 사람이 다니며 노래하기를 좋아해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백성들은 노래와 춤을 좋아하며, 나라 안의 촌락마다 밤이 되면 남녀가 떼지어 모여 서로 노래하며 놀이를 즐긴다. 해마다 10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낮밤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라고 했다.

그야말로 신명나게 서로 어울리며 축제를 즐기는 흥이 넘치는 악가무(樂歌舞)의 문화였다. 이 문화는 한바탕 벌이는 굿판으로, 탈춤 등 연극적 요소를 포함한 문화로 계승되었다. 무(巫)는 희로애락을 즐기고 표출하며 인간의 슬픔과 고뇌를 풀어주고 삶의 현실과 죽음의 공간에서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취업과 결혼, 진학, 이직(移職), 이사, 이장(移葬) 등 인생의 중대사는 물론 공직선거가 있을 때마다 무(巫)의 힘에 의존하면서 대외적으로는 무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제 무(巫)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