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진과 이혜인 작가가 ‘밤’이라는 공통적인 주제로 작업을 했다. 두 작가는 밤을 작업 대상으로 삼았지만, 이들이 밤을 마주하고 작품으로 풀어낸 과정이 매우 다르다

스페이스 이수(Space ISU)는 2022년 두 번째 전시로 5월 11일부터 7월 31일까지 박세진, 이혜인 작가가 참여한 〈밤의 풍경〉 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들이 각자 밤을 사유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조명한다.

이혜인, 베를린 여름밤 자정, Oil on canvas, 40x50cm, 2012. [사진 스페이스 이수 제공]
이혜인, 베를린 여름밤 자정, Oil on canvas, 40x50cm, 2012. [사진 스페이스 이수 제공]

 

이혜인은 눈앞의 풍경과 소통하며 베를린을 기록했다. 작가는 어떤 장소를 찾아가 실제로 눈앞에 있는 대상을 바라보며 현장에서 그림을 그린다. 작가는 야외 사생(寫生)을 하며 신체를 통해 상황을 감응하고, 예상치 못한 사건이나 인물들을 마주치며 발생하는 순간순간을 기록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이혜인의 〈베를린 여름밤 자정〉(2012) 시리즈는 작가가 2012년 베를린에 체류하며 야외에서 그린 15점의 밤 풍경 그림들이다. 작가는 어느 여름밤 자정 무렵, 베를린의 플라누퍼 강 부근으로 향하여 그곳에 자리를 잡고 눈에 보이는 풍경들을 바로바로 캔버스에 옮겨 그렸다. 밤이라는 시간에서 발현된 작품 속 여러 윤곽과 색감에는 작가가 현장에서 온몸으로 마주한 시간과 풍경이 존재하고, 그를 통해 우리는 어렴풋하면서도 생생한 베를린의 어느 여름밤을 만나보게 된다.

이혜인, 베를린 여름밤 자정, Oil on canvas, 30x24cm(b), 2012. [사진 스페이스 이수 제공]
이혜인, 베를린 여름밤 자정, Oil on canvas, 30x24cm(b), 2012. [사진 스페이스 이수 제공]

 

박세진 작가는 풍경을 그리기에 앞서 지나온 과거와 기억을 통해 자신의 내면 속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시작한다. 그 과정이 더디고 느릴지라도 작가가 마주했던 풍경들과 그때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캔버스 위로 가지고 와 그리고 또 그려낸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박세진의 〈밤〉(2005)은 가로 길이가 각 3미터에 이르는 두 폭의 대형 유화 작품으로 작가는 캔버스 위에 여러 겹의 붓질과 색을 켜켜이 쌓아 빛의 조건에 따라 다양한 밤의 모습이 보이도록 표현하였다. 이렇듯 박세진의 작업은 때때로 정지된 회화가 끊임없이 다른 모습을 발현하며 시간 속에 흐를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박세진, 밤 Night, Oil on canvas, 220x300cm each, 2pieces(2), 2005. [사진 스페이스 이수 제공]
박세진, 밤 Night, Oil on canvas, 220x300cm each, 2pieces(2), 2005. [사진 스페이스 이수 제공]

박세진은 빛의 변화가 가장 풍부한 밤의 시간을 포착한다. 작가는 어둠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혼재된 작고 무수히 많은 삶의 노동을 밤의 풍경 속에 중첩하고, 다채롭고 깊은 색의 흔적을 통해 시간성과 관계성을 탐구한다. 박세진은 《풍경의 빗면》(누크갤러리, 2018), 《박세진》(두산갤러리 서울, 2013), 《망토》(사루비아다방, 2006)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언젠가 누구에게나》(남서울미술관, 2020), 《팥쥐들의 행진》(한가람미술관, 1999) 등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프로젝트로는 박홍열 촬영감독, 황다은 작가와 함께 〈영화인에게 고함: 날 좀 봐〉를 기획하였고, 《무인전시: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슬슬가, 2021)에 작가로 참여하였다.

박세진, 밤 Night, Oil on canvas, 220x300cm each, 2pieces(1), 2005. [사진 스페이스 이수 제공]
박세진, 밤 Night, Oil on canvas, 220x300cm each, 2pieces(1), 2005. [사진 스페이스 이수 제공]

이혜인은 개인의 신체가 주어진 환경 조건을 즉각적으로 지각하는 방식으로서의 그리기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 태도는 동시대 회화에서 다루어지는 회화의 공간, 회화의 장소, 작가의 신체성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제시한다. 이혜인은 《어느 날, 날씨를 밟으며》(갤러리 기체, 2020), 《Sync》(신도문화공간, 2018), 《완벽한 날들》(대구미술관, 2013) 등의 개인전을 열었다. 《재난과 치유》(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21), 《밤이 낮으로 변할 때》(아트선재센터, 2019), 《Will you be there?》(Project Fulfill Art Space, Taipei, 2018), 《아티스트 파일 2015: 동행》(국립현대미술관, 도쿄국립신미술관, 2015)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베를린 쿤스틀러하우스베타니엔(2012), 금천예술공장(2014), 두산갤러리 뉴욕 레지던시 프로그램(2015) 등에는 입주작가로 참여하였다.

이번 전시 〈밤의 풍경〉은 우리의 삶에서 하루의 일부일 뿐일 ‘밤’을 주제로 한 풍경화를 감상하며 밤이라는 시간이 주는 특별함과 풍경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같은 밤을 그리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박세진과 이혜인의 작업을 통해 어둠이 내려앉은 밤 그림 속 새로운 풍경과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 보는 기회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스페이스 이수(Space ISU)는, 2020년 이수그룹이 본사 사옥의 로비로 사용하던 150여 평의 공간을 현대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예술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개관한 전시 공간이다. ‘일상을 큐레이팅하는 공간’을 모티브로 하는 스페이스 이수는 예술과 일상을 연결하는 다채로운 콘텐츠를 기획하여 평범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제시한다.  또한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밤의 풍경〉 전은 매주 월, 화요일 및 공휴일을 제외한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전시는 7월 3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