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배달국의 ‘선도 천자제후제’와 홍익인간·재세이화

1. 삼원오행형 뇌신 환웅도: 선도 천자제후제의 정치철학, ‘생명→조화→홍익’

앞서 배달국시기 제천의 신격 및 대표 제천시설을 통해 배달국 선도제천문화의 천인합일수행[성통]적 면모를 살펴보았다. 본장에서는 이러한 선도제천문화가 지향했던 정치사회질서[공완]의 면모를 살펴보겠다.

앞서 선도수행의 3단계가 ‘성통(수행) → 공완(사회실천, 홍익인간·재세이화) → 조천(근원의 생명으로의 회귀)’임을 살펴보았다. 선도 전통에서는 성통의 여부는 공완이라는 실천력으로 드러나고 검증된다고 보아 양자를 동일시해왔다. 이러할 때 검증하기가 애매한 성통 보다는 행동과 실천을 통해 검증이 가능한 공완이 더욱 중시될 수 밖에 없다. 한국사속에서 선도가 내적인 수행 보다는 외적인 실천, 곧 홍익인간·재세이화 중심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전통 때문이다. 한국선도의 엄정한 지행합일(知行合一) 기준을 알게 된다.

이처럼 선도수행의 궁극적 목적이 홍익인간·재세이화라고 할 때 홍익인간·재세이화의 실제적 의미를 따져보게 된다. 이러한 탐색은 선도문화의 원형기인 배달국시기 스승왕이 주도한 정치이념과 정치질서를 살피는 데서 시작해보게 된다.

동아시아 상고 선도문화의 종주였던 환국·배달국·단군조선 삼대 중에서 선도문화가 본격적으로 보급·정착된 시기는 배달국이다. 배달국 이후 단군조선에 이르기까지 선도제천문화는 배달국·단군조선의 주강역인 요동·요서·한반도를 넘어 유라시아사회로 널리 전파되었다. 그중에서도 중원지역은 배달국문화가 뻗어나가는 일차 대상 지역이었다. 배달국과 유라시아 여러 지역간의 문화 교류를 살피기 위해서는 고고학을 위시하여 고대 신화학·종교학·철학 방면의 비교 연구가 필요한데, 배달국-중원지역의 경우 한·중 양국에 남아있는 풍부한 자료를 통해 그 교류 형태를 재구성해보게 된다.

배달국의 문화가 주변지역으로 전파되는 방식은 배달국이 맹주가 되어 주변 여러 지역들을 하나의 문화권역으로 연합하는 방식, 곧 배달국의 스승왕이 선도제천문화를 주재하는 천왕(天王) 또는 천자(天子)가 되어 주변의 여러 지역들을 ‘천자국-제후국’의 방식으로 연합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정치제도의 운영 원리는 다름아닌 선도기학적 세계관이었기에 이를 ‘선도 천자제후제’로 명명해 보게 된다.

배달국에 최인접, 인적 물적으로 가장 밀접한 교류가 이루어졌던 곳이 중원지역이었다면 배달국-중원지역간의 선도 천자제후제는 배달국시기 ‘선도정치’의 기본 구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종래 선도의 대사회적 실천 방식으로서의 선도정치에 대해서는 ‘홍익인간·재세이화’ 정도로 기술되어왔고 그 구체적인 실상은 확인이 어려웠다. 이러할 때 배달국-중원지역간의 선도 천자제후제는 홍익인간·재세이화의 구체적인 실상을 보여주는 대단히 중요한 연구주제가 된다.

이에 본장에서는 한·중의 고고학·신화학·종교학·철학 등을 두루 종합, 선도 천자제후제의 정치철학, 선인지도자의 위계 기준을 살펴보고, 선도 천자제후제가 변질된 중원지역의 ‘패권적 천자제후제’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배달국 선도제천문화의 공완 방면, 곧 ‘선도정치’의 실상에 한발짝 다가가게 되기를 기대한다.

먼저 동아시아 일대에 전승되고 있는 ‘삼원오행형 뇌신 환웅도’를 통해 선도 천자제후제의 정치철학에 담긴 ‘생명 → 조화 → 홍익’ 정신을 살펴보겠다. 배달국시기 선도적 세계관인 삼원오행론은 ‘선도 천자제후제’의 기반 이론이기도 했다. 삼원오행 표상의 중심인 일기·삼기(천부)는 근원의 생명력 자체로서 ‘무(無)·공(空), 전체(共)·공(公)’의 속성을 지니며 기·화·수·토로 구성된 현상의 물질세계를 조화(調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배달국과 주변 여러 나라들에 적용해 보면 배달국은 중심점인 일기·삼기, 주변 여러 나라들은 외곽의 4기 또는 8기에 해당한다. 곧 배달국 환웅은 하늘(일기·삼기)의 대변자, 곧 천왕 또는 천자로서 외곽의 4기 또는 8기로 상징되는 주변 여러 나라들을 조화(調和), 홍익인간·재세이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삼원오행적 세계관의 ‘천부조화론(天符調和論)’은 단순히 사상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현실속의 선도정치, 곧 선도 천자제후제의 정치철학으로 원용되고 있었다. 여기에서 선도 천자제후제의 정치철학을 ‘천부조화론’, 좀 더 풀어서 ‘생명(일기·삼기) → 조화 → 홍익’으로 정리해보게 된다.

삼원오행 표상이 선도 천자제후제의 운영원리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표상물로 ‘곰 형상의 뇌신 환웅’의 이미지와 결합된 삼원오행 표상이 있어 주목된다. 환웅은 일기·삼기의 화현인 천왕, 구체적으로는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지상에 강림하는 천둥번개신(뇌신雷神, 천부신天符神)으로 나타난다. 천왕 또는 천둥번개신으로서의 환웅의 형상은 주로 ① 삼원오행형 표상 중앙의 곰 형상, ② 사람머리·용(뱀)몸의 형상, ③북두칠성 수레(천제의 수레)를 타고 풍백·우사·운사의 호위를 받으면서 지상에 강림하는 천제의 형상 3종으로 표현되었다.

3종의 환웅 이미지 중에서 본고에서는 ① 삼원오행 표상속 곰 형상의 뇌신 환웅의 이미지, 곧 ‘삼원오행형 뇌신 환웅도’에 주목해보았다. 이는 곰 형상의 뇌신 환웅이 하늘 중앙에서 원형으로 8개의 하늘북(천고天鼓)을 거느린 모습이다. 삼원오행형 우주 표상의 중심점인 ‘일기·삼기, 하느님·삼신, 천부, 북두칠성, 밝음’ 자리에 곰 형상의 뇌신 환웅이 자리한 것은 뇌신 환웅이 그 화현이기 때문이다. 이때 뇌신 환웅은 사지에 북채(또는 망치)를 들고 8개의 하늘북(천고)을 두드리고 있는데, 이는 ‘일기·삼기’의 ‘무(無)·공(空)’, 또 ‘전체(共)·공(公)’의 속성을 발현하여 4기 또는 8기 차원으로 이루어진 물질세계를 조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삼원오행형 뇌신 환웅도는 한·중·일 삼국에 널리 전해지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 통도사영산전팔상도(通度寺靈山殿八相圖, 1775년) 중의 뇌신 환웅도가 대표적이다. 단군조선 이후 선도의 약화 과정에서 선·불 습합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 과정에서 뇌신은 불교의 호법신중단(護法神衆團)으로 편입해 들게 된다. 그 대표적 일례가 경남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 중의 호법천신(護法天神) 뇌신도이다. 팔상도 중의 여섯번째 그림인 ‘수하항마상(樹下降魔像)’은 보리수 아래에서 부처가 마왕을 항복시키는 그림인데, 상단의 하늘 중앙에서 곰 형상의 뇌신이 사지에 북채(망치)를 들고서 8개의 천고를 울리고 있다. 천손족을 상징하는 날개를 단 곰 형상의 뇌신은 지금 천둥번개를 내어 부처의 항마(降魔)를 돕고 있는 중이다. 상기 뇌신도는 치우천왕(蚩尤天王)의 형상으로 알려져 있다.(<자료6>)

<자료6> ‘삼원오행형 뇌신 환웅도’에 나타난 선도 천자제후제의 정치철학, ‘생명→조화→홍익’

[자료=정경희 교수]
[자료=정경희 교수]

 

이상에서 한·중·일 삼국에 전해지는 삼원오행형 뇌신 환웅도를 통해 선도 천자제후제의 정치철학을 삼원오행적 세계관의 요체인 천부조화론, 곧 ‘생명→ 조화 → 홍익’ 정신으로 정리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