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 정부의 교과서 날조가 도를 넘는다”라며 ‘일제강제동원시민역사관’건립 필요성을 제기했다.

일본 문부성이 지난달 29일 고교 사회과 교과서 검정결과에서 일본 내 역사인식 왜곡을 부추긴 데 대해 국내 시민단체가 적극적 대응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일본 문부성은 지난달 29일 내년부터 고2 이상 학생이 배울 고교 사회과 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했다. 니노미야서점의 교과서.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일본 문부성은 지난달 29일 내년부터 고2 이상 학생이 배울 고교 사회과 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했다. 니노미야서점의 교과서. [사진=동북아역사재단]

매년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일본 사회과 교과서 검정 문제에서 특히, 올해 교과서 개정에서 드러난 일본 정부의 속내는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할 이유는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나가는 것이 적절할까?

해당 문제를 지난달 30일 동북아역사재단(이하 재단)과 아시아평화와역사연대가 공동으로 개최한 긴급 전문가 세미나에서 나온 우리 학계의 평가와 제안을 통해 살펴본다.

먼저, 개정내용 상 주요쟁점은 ▲일본군‘위안부’와 조선인 노동자 강제연행 ▲독도 ▲고대사 ▲개항기 역사 총 4가지 측면이다.

첫째, 일본군 ‘위안부’와 조선인 강제연행과 관련한 용어를 교체했다. 고노 담화 이후 유지되던 ‘종군위안부’ 또는 ‘일본군 위안부’를 ‘위안부’로, ‘강제연행’은 ‘징용이나 동원, 혹은 보내지다’ 등 일반적인 용어로 수정했다.

한혜인 연구위원(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은 “위안부 문제에 있어 가해자 명시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일본군의 역할을 축소하고, 조선인 노동자 강제연행을 ‘동원’으로 바꿈으로써 불법성, 강제성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동북아역사재단과 아시아평화와역사연대가 지난달 30일 개최한 '2022년 일본 사회과 교과서관련 긴급 전문가 세미나'에서 발표하는 한혜인 연구위원(아시아평화역사연구소). [사진=강나리 기자]
동북아역사재단과 아시아평화와역사연대가 지난달 30일 개최한 '2022년 일본 사회과 교과서관련 긴급 전문가 세미나'에서 발표하는 한혜인 연구위원(아시아평화역사연구소). [사진=강나리 기자]

2021년 일본 각의 결정에 따른 종군위안부, 강제연행 삭제…일본군, 일본정부의 관여 축소, 불법성, 강제성 은폐

한 연구위원은 "일본 교과서는 2014년 학습지도 요령 개정에 따라 ‘통설이 없는 경우 정부의 통일적인 견해를 따른다’라고 되어있다"며, "이번 용어 변경은 2021년 4월 27일 일본 정례각의 결정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각의에서 유신회 바바 노부유키 중의원은 일본군‘위안부’문제와 관련해 고노 담화 계승을 이야기하면서도 “사료에 ‘위안부’와 ‘특수위안부’라는 용어는 있지만 종군위안부라는 용어는 없었다. 군이 강제연행을 했다고 오해할 수 있다”며 종군위안부 용어 폐기를 주장했다.

그는 또한 강제연행 및 강제노동과 관련해 “전쟁시 국가총동원법에 근거해 국민징용령에 의해 징용된 사람은 국제노동기구(ILO)가 금지한 ‘강제노동’에 해당되지 않는다”라며 식민지 조선인에 대해 “강제 연행 또는 연행이 아니고 징용을 이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ILO는 1932년 조약 제10호 ‘강제노동에 관한 조약’ 제2조 강제노동에 관해 “강제노동은 혹자가 처벌의 협위 하에 강요되거나 혹은 혹자가 스스로 임의로 신청하지 않은 일절의 노무”라며 “긴급한 경우 즉 전쟁의 경우(중략)에 있어서 강요된 노무를 포함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 등 전쟁 상대국의 점령지 국민에 대해서는 연행, 강제연행으로, 식민지 국민에 대해서는 징용 또는 동원으로 구분하겠다는 것이다. 즉, 식민지인은 일본국적이므로 전시 국민징용이므로 적법하다는 논리인 셈이다.   

이에 대해 한혜인 연구위원은 “보통 노동자인 경우 경찰의 감시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조선인은 일본 또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을 경우 경찰이라는 행정력이 들어갔다. 조선인 노무자는 경찰이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도망시 경찰이 수배했다”는 점을 들어 ILO가 규정한 '처벌의 협위 하에 강요되거나 스스로 신청하지 않은 강제노동'인 점을 강조했다. 또한, 전시동원법에 규정한 모집도 할당모집이었던 점에서 강제노동이라고 했다.

홍종욱 서울대 교수도 “식민지 시기 한국인은 권리는 없고 의무만 강요되었다는 점에서 온전한 국민이 아니라 예속민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짓쿄實敎출판의 ‘일본사 탐구’교과서를 예시로 “같은 일본 법률이라도 내용이나 적용이 달랐다”라며 첫째, 외지(일본의 식민지) 사람들도 일본 국적이었지만, 내지인과 사이에 호적이동은 금지되었다. 즉, 완전한 일본인으로 인정될 수는 없었다.  둘째, 1925년 남자 보통선거를 도입하면서 여성과 식민지인은 제외되었다는 점을 들었다. 즉, 정치적 ‘권리’는 주지 않고, 치안유지법을 통해 탄압만 가했고, 전시체제기에 이르면 심지어 징병, 징용 등 의무만 강요한 점을 강조했다.

홍종욱 서울대 교수는
홍종욱 서울대 교수는 "식민지 시기 한국인은 권리는 없고 의무만 강요되었다는 점에서 국민이 아니라 예속민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사진=세미나 영상 갈무리]

일본의 강제연행, 징용, 동원 VS 한국의 강제동원…명확한 개념정리 필요

특히, 이번 세미나에서 쟁점이 된 것은 조선인 노동자 강제노동에 대한 용어정의 문제였다. 그동안 일본 학계와 시민단체는 ‘강제연행’이라는 용어를 주로 써왔고, 한국정부는 강제동원진상규명특별법 등 ‘강제동원’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한편, 한국 언론에서는 ‘징용’이라는 용어를 관행적으로 쓰기도 했는데, 이는 전시 국가총동원법에 근거한 노무란 의미를 갖고 있어 써서는 안 되는 용어인 것이다.

이에 대해 한혜인 연구위원은 “한국정부가 쓰는 ‘강제동원’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요구하는 ‘동원’ 또는 ‘강제동원’과 좀 더 명확한 개념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한국정부가 말하는 ‘강제동원’은 합법을 가장한 방식으로 스스로의 의지와 관계없이, 법률과 관계없이 동원되었다, 모집되었다는 점에서 써왔다. 합법만이 아니라 불법, 편법을 포함한 형태로서 ‘강제동원’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신철 소장(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은 종합토론에서 “강제동원 용어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한국 학계 내에서 연구가 진척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단순한 용어 문제가 아니다. 한·일 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 그리고 국제적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일본 군함도 강제동원 왜곡에 대한 후속조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사도광산 문제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개정 교과서 검토과정에서 한 가지 긍정적으로 평가된 점은 일부 출판사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와 조선인 노동자 강제동원과 관련해 ‘일본 정부의 통일적 견해(2021년 4월 각의결정)’를 위배하지 않으면서도 집필진들이 본질적 사실에 가깝게 표현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 짓쿄출판사 ‘일본사 탐구’교과서에서는 ‘위안부’라 기술했지만, 주註에서 “성의 상대를 강요당했다”라고 강제성을 표시하고, 군의 관여 내용을 기술해 일본군에 의한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도록 했다. 야마카와山川 출판사는 ‘강제되기도 하고, 속아서 연행되기도 했던 예도 있다’라고 기술했다.

조선인 노무동원과 관해서 다이이치第一학습사 ‘일본사 탐구’ 교과서는 “2021년 4월 일본정부는 전시 중의 조선반도에서 노동자가 온 경위는 여러 가지로, ‘강제연행’이라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각의 결정을 했지만, 실질적으로 강제연행에 해당하는 사례도 많다는 연구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2편 "日교과서, 독도 영유권 주장 강화, 임나일본부설 주장은 일부 축소"에서 계속]

[3편 "日교과서 문제, 20세기 식민주의 청산‧21세기 국제질서 확립 문제로 접근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