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대선의 열기도 지나가고 이제 국민들은 다시금 개인들의 삶의 현장에서 일상의 도전들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2년간 우리는 다른 나라들보다 더 수준 높은 방역체계를 갖추었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했고, BTS와 오징어 게임 등 세계적인 한류 붐으로 높아진 국격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였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한국이 어려움을 덜 겪었다고 할 수는 있어도 많은 국민들이 느낀 사회적, 경제적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지정했다고 하지만 서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질은 향상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가계부채는 작년 1862조라는 사상 최대의 액수를 기록했다. 이는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96.3%에 달하는 상황이며 평균적으로 국민 한 사람당 3593만원의 빚을 지고 사는 셈이다. 

이승헌 총장(글로벌사이버대학교)
이승헌 총장(글로벌사이버대학교)

1980년대 대학생들의 소망은 더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였다. 2022년 현재 대학가에서 정부를 대상으로 선진화된 정치 시스템을 요구하거나 미래를 위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를 하는 이들이 간혹은 있겠지만 젊은 세대들의 가장 큰 관심은 생존이다.

6.25사변 이후 다음 세대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한 이전 세대의 희생과 노력이 무색하게 현세대는 심리적, 물질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어떤 스펙을 쌓아야 더 취직이 잘 되는지, 어떤 직장이 더 안정된 삶을 가져다주는지가 가장 큰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이권 싸움 이상이 되기 힘들며 그것도 가장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성별 간의 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다.

왜 상당수의 20대 남성들이 여성가족부의 폐지를 주장하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20대 남성들 자신들이 사회적 약자이며 정책적으로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20대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자신들 역시 사회적 약자임을 통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강자는 누구인가? 현 세대 국가의 분열은 국민 대부분이 자신들이 사회적 강자라고 여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자는 결정이 되었지만 국민의 분열은 더욱 심해졌다. 이번 대선처럼 미세한 차이로 대통령이 결정된 바는 없었을 뿐 아니라, 진보진영의 단일화가 있었다면 결과가 달랐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절반의 선택만 받은 현 상황에서 정계가 국민통합을 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새 정부가 현 정부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정당정치의 강점은 소수의 권익 대변과 사회갈등의 중재이지 국민통합이 아니다. 전 국민들의 요구나 사회적 시각이 항상 일치하다면 애초 정당이 생길 이유는 없을 것이다. 마치 양날의 검과 같이 정당정치 시스템에서 정부가 국민통합을 주도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극히 낮다. 정부 차원에서 국민 통합을 요구한다는 것은 결국 특정 그룹의 이권을 위해 다른 그룹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정당정치를 택한 국가에서 통합의 주체는 국민이지 정부가 아니다.

또한 통합은 어떤 결과에 대한 현상일 뿐이지 결코 결과나 목표 자체가 될 수 없다. 피를 나눈 형제조차도 항상 의견이 일치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경우는 드물다. 형제가 타인보다 더 화합을 잘하는 이유는 단지 공통된 목표를 세우거나 공동의 관심사를 만들기가 더 수월하기 때문일 뿐이다. 이러한 관심사나 목표 역시 정부가 주관하는 것보다 국민 주도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일제치하에서 3.1 운동을 통한 한국인들의 대단결을 본 일본총독부는 한민족의 분열에 사활을 걸었다. 역사적, 지리적, 사회적 공감대를 없애기 위해 수많은 만행을 저질렀으며, 우리에게 한국인은 태생적으로 화합하지 못하고 서로 다툰다고 믿도록 세뇌를 했다. 하지만 그들이 “정”, “우리”와 같이 반만년 동안 한국인의 DNA에 각인되어 있던 정서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고 우리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우리의 강점인 단결력을 서서히 되찾았다.

필자는 새 대통령이 청와대 이전을 통해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권력자의 시대에서 행정가의 시대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통치권’을 돌려주려 하는 의지와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므로 새 대통령과 새 정부가 국민의 시대를 열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는 기존에 수많은 정치가들이 인기를 얻기 위해 말한 ‘국민의 시대’와는 뜻이 다르다. 하나의 객체처럼 이야기하는 국민은 어떠한 의미도 없다. 국민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큰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누구든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기존의 ‘국민의 시대’가 이야기하는 정치가로부터 권력을 빼는 ‘뺄셈의 시대’가 아닌 국민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덧셈의 시대’를 창조하길 바란다.

민간주도의 정책제안, 민간주도의 지역사회 이슈 참여, 민간주도의 사회복지 활동 참여와 이를 위한 시스템 개발에 더 많은 정책적 자산이 활용되어야 한다. 정치가가 온전히 행정가로 변하기 위해서는 국민통합의 공식을 국민 자체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정치권에서 독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국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줘야 한다. 신문고 같은 민원이나 제안의 수준을 넘어 공개적으로 정부, 기업, 노동자 등 각계의 대표들이 정책을 만들고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정부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국민이 창조의 주체가 되는 국민의 시대가 만들어 지기 위해 현시대에 맞는 한국인의 정체성과 가치관 확립을 위한 민간 활동의 지원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여러 위기 속에서 한국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부상하게 만든 것은 새마을운동이나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국민들의 단합된 의지였으며 그 배경에는 시대를 아우르는 강한 공감대가 있었다.

한번 주권을 빼앗겨 본 경험을 해본 우리 민족에게 국가는 매우 소중한 개념이었으며 막연한 애국심으로도 단합을 이끌 수 있었고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이 시대에 분열로 인한 비극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 언제나 우리 민족이 망국의 위기 때 해왔던 일들을 평시에도 진행해야 한다.

여러 강국들의 침략 때마다 학식이 있고 깨어난 이들은 자발적으로 민족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문화와 역사의식을 일깨우고 공동의 꿈과 이상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는 정부 주도로 특정 역사관을 국민들에게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시각에서 정체성과 가치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정책적으로 장려하는 시도가 요구되는 때이다.

극심한 사회갈등과 빈부격차, 청년들의 사회진출에 대한 좌절감에 대한 진정한 답은 국민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으며 오랜 기간 강한 정부를 표방해 왔던 여러 대통령이 만든 국민을 이끄는 사회적 패러다임에서 국민에게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패러다임으로의 변화가 절실하다.

2020년대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진 때로 기억될 것이다. 새로운 정부의 시작이 청와대 이전에 대한 이슈로 시작이 되었지만 결과는 한국에 전 세계에 모델이 되는 참된 민주국가를 실현한 정부로 마무리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