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고고학⋅유전학의 교차연구는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기원이 신석기 동북아에서의 기장 경작 시작과 초기 아무르 유전자 풀(gene pool)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전파에는 농경과 유전자의 확산을 반영해주는 두 단계가 있다. ① 1단계는 트랜스유라시아어족 이 최초로 나뉘는 신석기시대 초기∼중기에 아무르계 혈통의 서요하 기장 경 작자들이 인접 지역으로 퍼져나간 것이고, ② 2단계는 후기 신석기와 청동기⋅철기에 갈라져 나온 5개 가지 언어들(daughter branches)의 상호접촉이다. 이들 시기에 아무르혈통 비중이 상당했던 기장 경작자들이 점차적으로 황하와 서유라시아, 조몬인들과 섞이며 농경 패키지에 쌀, 서유라시아의 곡식과 유목이 추가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9000년 전 시작된 서요하에서의 기장 농사는 아무르계 혈통과 상당한 관계가 있으며 시간적⋅공간적으로 트랜스유라시아어 언어공동체 조상과 겹친다.

[자료=김윤숙 번역 제공]
[자료=김윤숙 번역 제공]

 그리고 중국어의 뿌리인 지나-티베트어족은 황하 중상류 신석기시대 농부들에게서 8000년 전 발생하였다. 그러므로 동북아의 기장 농사의 두 중심에서 두 주요 어족이 탄생하였다. 서요하의 트랜스유라시아어족(9000년 전)과 황하의 지나-티베트어족(8000년 전)이다. 원시 트랜스유라시아어와 유전자에 황하의 영향은 없다. 이것은 두 지역의 기장 농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장경작 초기단계인 9000∼7000년 전 이후 인구성장이 이루어져 서요하 지역 인구가 환경적⋅사회적으로 하위집단으로 갈라졌으며, 알타이어 사용자와 한국어-일본어 사용자들 간의 연결도 끊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5500년 전쯤에 서요하 기장 농부들 중 소수가 동쪽으로 서해를 건너 한반도로 이동하면서 한국어를, 북동쪽 연해주로 이동하면서 퉁구스어를 전파하였고, 서요하 지역으로부터 연해주로 아무르혈통을, 아무르와 황하가 섞인 혈통을 한국에 가져왔다.

또한 후기 청동기시대에는 유라시아 스텝을 통하여 광범위한 문화교류가 일어난 결과, 서요하지역과 동부 스텝의 주민이 서유라시아의 유전자 계통과 섞이게 되었다. 언어학적으로 이러한 상호교류는 원시 몽골어와 원시 투르크어 사용자들이 차용한 농경⋅목축 용어들-특히 밀⋅보리 경작, 유목, 낙농, 말(馬)의 이용에 관련된-에 반영되어 있다. 3300년 전쯤에, 요동-산동지역 농부들이 한반도로 이주해 오면서 기장 농경에다 쌀ㆍ보리ㆍ밀을 더 보태었다. 이 이민은 한국의 청동기시대 유전자 샘플 하가점 상층 모델의 유전적 요소와 맞추어지며, 한국어와 일본어 간 초기 차용어들에도 반영되어 있다. 고고학적으로는 꼭 하가점상층 문화와만이 아니라 더 넓은 요동-산동지역의 농경과 연결 지을 수 있다.

그리고 3천 년 전쯤에 이러한 농경 패키지는 큐슈로 전해져서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고 유전자적으로는 조몬에서 야요이 혈통으로 바뀌며, 언어학적으로는 일본어로 변이가 일어난다. 남류큐열도의 나가바카 고유 유전자 샘플을 더함으로써 우리는 농경과 트랜스유라시아 언어가 유라시아의 끝 가장자리까지 퍼져나갔음을 추적하였다. 그러니 조몬혈통이 남쪽 끝 미야코섬까지 뻗어간 것이지 대만에 살던 오스트로네시아 주민(Austronesian populations. 타이완, 동남아시아, 태평양, 마다가스카르 등에 걸쳐 살고 있다)이 북쪽으로 올라온 것이 아니다.

고대 DNA에서 새로운 증거가 나옴에 따라 우리 연구는 한국인과 일본인은 ‘서요하의 혈통’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트랜스유라시아어족과 서로 아무런 유전적 관련이 없다는 지금까지의 주장을 부정하고 있다.

이렇게 세 학문 교차연구는 농경과 언어가 함께 확산되었다는 가설(the farming/language dispersal hypothesis)이 유라시아 인구의 확산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모델임을 확인해주어 트랜스유라시아어의 초기 확산은 유목이 아니라 농경에 의한 것이었다고 결론 내리게 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