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 인터넷판에 2021년 11월 10일 “세 학문의 교차 연구는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농경에 의한 확산을 지지한다(Triangulation supports agricultural spread of the Transeurasian languages)”라는 논문이 게재되었다. 이 논문은 한국어를 포함하여 98개 언어가 속해 있는 트랜스유라시아어족(Transeurasian languages) 언어 기원지가 ‘9000년 전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기장 농업 지역’임을 밝힌 것이다. 이 논문을 번역하고 해제를 덧붙여 소개한다. 《유라시아문화》 제6권에 게재한 글에서는 각주를 추가하였으나, 이 글에서는 각주를 본문에 반영하거나 생략하였다. 

이 논문은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 마르티너 로베이츠(Martine Robbeets, 벨기에 출신 언어학자. 알타이어족의 역사를 연구한다) 박사 주도로 한국을 포함 뉴질랜드, 러시아, 중국, 일본, 영국, 미국, 체코슬로바키아, 네덜란드, 프랑스 10개국 35개 연구기관에서 언어학⋅ 고고학⋅유전학 전공자로 구성된 41명의 연구진이 동참한 대규모 공동연구의 결과이다. 한국에서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이성하 교수와 안규동 박사, 한서대학교 안덕임 교수, 동아대학교 김재현 교수, 서울대학교의 매튜 콘테 연구원이 함께 하였다.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은 드넓은 유라시아대륙에 걸쳐 사용되는 대규모 언어그룹을 말한다. 한국어·일본어·몽골어·퉁구스어·투르크어 5개 언어그룹으로 이루어져 있다.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대표적인 특징은 ① ‘주어-목적어-동사’의 어순 ② 접속사나 관계대명사가 없는 점 ③ 모음조화 ④ 두음법칙 ⑤ 문법적 성별 구분이 없는 점 등이다.

[자료=김윤숙 번역 제공]
[자료=김윤숙 번역 제공]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은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방대한 언어집단이지만 기원과 확산 과정이 불명확해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지금까지는 트랜스유라시아어가 4000년 전 중앙아시아 동 스텝지대 유목민에게서 기원하며 이들이 동서로 이동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넓은 범위에 걸쳐 언어를 퍼뜨렸을 것이라는 이른바 ‘유목민가설(pastoral hypothesis)’이 전통적으로 인정되어왔다.

그러나 이 논문은 논쟁이 되는 문제의 핵심을 언어의 확산과 농업의 전파 그리고 인구이동 간의 상관관계로 보고, 언어학⋅고고학⋅유전학 세 학문의 교차 연구로 해결하였다. ‘triangulation(삼각측량법)’이란 어떤 한 점의 좌표와 거리를 삼각형의 성질을 이용한 삼각함수를 통해 알아내는 방법으로, 언어학⋅고고학⋅유전학 세 학문의 교차연구를 통하여 트랜스유라시아 언어들의 확산 이유와 경로, 그리고 트랜스유라시아 문화벨트와 그 시원 등을 밝히고 있음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농업과 목축에 대한 트랜스유라시아어의 기본 어휘들[언어학]과 동북아의 신석기에서 청동기에 이르는 255개 유적의 고고학적 데이터[고고학]와 한국과 류큐 열도, 일본 초기 곡식 경작자들의 고대 유전자들을 수집하고, 이전 발표된 동아시아 게놈들을 보완하여[유전학] 이러한 세 분야의 학문적 연구 결과에서 얻은 광범위한 데이터를 토대로 교차 검증⋅분석한 결과,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뿌리는 초기 신석기시대인 약 9000년 전 서요하 일대에서 기장 농사를 짓던 경작자들의 언어였음을 밝혀냈다.

기장경작 초기인 9000∼7000년 전 인구가 늘어나면서 인구의 분산을 유발했고 이들의 이동과 함께 농경의 전파와 언어의 확산이 일어났으나, 청동기시대 이후의 광범위한 문화교류로 인해 이러한 사실들이 가려져 왔다는 것이다. 하여 이 논문은 트랜스유라시아어의 초기 확산이 이제까지 믿어 왔던 ‘유목민가설’-유목민들의 이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농경의 확산에 의한 것 (farming/ language dispersal hypothesis)’임을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고대 DNA 배열(sequencing)에 관한 최근의 연구 성과는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인구이동과 언어와 문화 전파 사이의 연관성을 새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하지만, 서유라시아에 비해 동유라시아, 특히 내몽고, 황하⋅요하⋅ 아무르강 유역, 러시아 극동지역,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아우르는 광대한 지역인 동북아에 관한 연구와 이해가 아직 많이 부족하고 학제 간의 연구접근이 거의 없음도 지적하였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로베이츠 박사는 “오늘날의 국경을 넘어서는 언어와 문화의 기원을 받아들이면 정체성을 재정립할 수 있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과 반대로 현재의 국경을 상고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착된 국경인 양 역사를 새로 만들어나가는 중국과, 현재의 국경에 집착하여 한반도 밖 선조의 역사를 무시한 채 유교사관과 식민사관이 만든 역사를 고수하고 있는 한국의 일부 역사학자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아닐까 한다. 또한 이 연구는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빚어지고 있는 한국과의 상고사 갈등에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중국은 1978년 개방 이후 급속한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소수민족의 이탈을 막기 위해 현 국경 내 소수민족의 역사문화를 중원의 역사문화 속으로 포함하기 위한 역사공정작업을 시작했다. 그중 제일 중심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어 2015년 완결된 동북공정이었다. 현재의 중국 영토 내에서 확인된 상고문화 중 세계 최고 수준의 후기 신석기∼동석병용기 문화로 세계사의 신기원을 열었던 요서지역 홍산문화(서기 전 4500∼서기전 3000년 경)를 중국문명의 원형이자 기원으로 삼아 중국사를 재편하였고 나아가 세계사도 새롭게 써나 가고 있다. 종래 동이족의 근거지로 알려져 있던 곳으로 중국의 역사기록 그 어디에도 없던 관심 밖의 지역이 빛나는 고고학적 발굴로 인해 하루아침에 중국 역사의 시원으로 둔갑하게 되었다.

그러나 홍산문화는 중원이 아니라 동북방 지역에서 시작된 문화일 뿐이었으므로, 중국은 이 문화가 중원지역으로 흘러들어 은상문화로 만개했다는 점을 강조해야 했다. 그래서 홍산문화의 주된 흐름을 ‘(흥륭와 문화)→홍산문화→하가점하층문화→은상문화’로 바라보며, ‘홍산문화’의 본원을 계승한 은상왕조가 동북 방면으로도 이주하여(기자조선) 은상문화를 요동⋅한반도 내지까지 깊숙이 전파시켰다는 요하문명론과 장백산문화론을 만들어 한국사를 말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를 기반으로 최근에는 역사뿐 아니라 온갖 한국 고유의 문화도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며 비상식적⋅비양심적 행태를 남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논문은 트랜스유라시아어족과 신석기∼청동기 문화벨트, 그리고 고대 유전자에 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하여 중원과의 연관성을 끊어냄으로써 동북공정의 기반을 통째로 흔들고 있는 것이다. ① 언어학에서는 트랜스유라시아어가 그보다 천여 년 쯤 뒤늦게 황하(중원)에서 발생한 중국어 뿌리인 지나-티베트어족(Sino-Tibetan)과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② 고고학적으로 서요하의 문명을 신석기시대에는 한국의 빗살무늬토기문명과, 청동기시대에는 한국의 무문토기문명과 엮고 있지만 그 문화벨트에 중원은 연결되어 있지 않다. ③ 유전학적으로도 트랜스유라시아 언어 사용자 모두에게 아무르계 혈통이 공통된 시원의 유전적 요소로 보면서, 원 트랜스유라시아어와 유전자에 황하의 영향이 없음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더하여 로베이츠 박사는 요하 유역의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조상과 황하 지역의 지나-티베트어족의 조상은 같은 시기에 서로 다른 종의 기장을 재배하였으며, 이로 인해 서로 다른 언어 확산 경로를 밟아가게 되었다고 언급함으로써, 중국문명의 기원은 황하문명이며 요하문명과는 언어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이질적이고 독자적인 문명권이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이 논문에서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시원으로 삼고 있는 9000년 전의 서요하 지역은 중국 이 자기네 시원문명으로 삼는 요하문명의 시발점인 신석기시대 最古의 소하서문화(서기전 7000∼서기전 6500)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그 시원부터가 요하문명과 중국의 황제족과 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황하(중원)쪽과 섞임이 일어나는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이 논문으로 동북아 역사⋅문화 연구에서 이제까지의 중국 중심, 중국 주도의 연구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각에서 문화의 내용과 시원 등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이 논문이 그러한 연구의 촉발제가 될 것이다. [계속]